[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공동체 대한 미래 비전이 없는 ‘대권’이란?

[라포르시안] 2022년 3월 9일이 대통령 선거일이라고 하니 거의 매일 ‘대권’이라는 말을 듣는다. 앞으로 8개월 남짓, 우리 모두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결정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선거는 중요하다. 아무리 냉소하고 회의해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 마찬가지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일이 되어 가는 모양이 무언가 새로운 희망을 품기에는 영 불안하다. 사회적으로는 온갖 문제가 봇물 터지듯 나오는 때, 코로나19라는 ‘재난’까지 보태졌으나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뽑는 과정은 구태의연하다.

“이 한 몸 바쳐서 나라를 구하겠다”라는 선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언론 ‘플레이’와 이미지 만들기, 온갖 연고로 뭉친 ‘캠프’ 구성, 이런저런 정치 세력의 이합집산. 과거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겉모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대로는 곤란한 결정적 ‘구태’는 이 나라와 정치공동체가 나아갈 길에 대한 미래 구상과 비전이 희미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모든 대선이 다 그랬다고 하겠지만, 그 때문에도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구상과 비전이란 어디다 공항을 새로 짓고 어떤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도가 아니다. 무슨 수당이니 보험이니 하는 정책 공약 수준을 넘는, 20~30년 앞을 내다보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한다는 ‘방향 잡기’이자 ‘희망 품기’여야 한다.

5년 단임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 것이 우리 정치의 한계이자 불행이 아닌가 싶다. 방향과 희망은 말하자면 나침반이며, 대통령은 그것을 제시하고 모든 구성원이 그것을 알게 하며 논의해 힘을 모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말과 이념과 정신으로 일하는 것, 그것을 말하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이 바로 ‘대권(大權)’의 실체가 아닌가.     

온갖 화려한(그러나 용두사미가 될 것 같은) 약속보다 먼저, 그 권한을 가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다음 몇 가지 시대 정신과 역사적 과제에 대한 비전을 밝히기 바란다. 이를 정리하고 사회적으로 공유하며 논의하는 것이 우리가 정치와 선거 과정에 참여하는 가치이자 의미이다.

첫째, 점점 심해지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나 동의하듯이, 온갖 축의 불평등은 한국 사회에서(세계적으로도) 더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위험이며 도전이다. 단언컨대, 앞으로 정권이 어떻게 유지되고 바뀌어도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정권(들)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가 실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두 가지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체제’의 문제, 그리하여 이는 한 사회의 구상과 비전으로 모든 힘을 결집해야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는 시대적 과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마땅히 (남이 써주는 것 말고) 이에 대해 자신의 ‘사상’이라 할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인류가 당면한 초미의 과제,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통령 선거에 기후위기가 이렇게 중요한가? 혹시 이 문제를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대통령 선거에 나설 자격이 없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니, 당장 외교(흔히 ‘국익’이라 이해한다)에 무능한 대통령이 될 것이 뻔하다.

국경을 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는 높은 수준의 국내, 국제 정치력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그 대응에 대한 구상과 비전은 세계를 향한 국내 정치의 토대로, 그런 점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어려운 정치적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셋째, 포스트 코로나 ‘체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신종감염병 대응이나 백신 개발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그 체제를 수출이나 일자리 회복 정도로 이해하면 영 가망이 없다. 세계적으로 이미 시작된 포스트 코로나 체제로의 전환, 그것은 국내와 국제 보건체계부터 교역과 국제관계까지, 나아가 세계화와 국제 거버넌스까지 걸쳐 있다.

포스트 코로나 체제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년 이상 국제 정치경제의 틀로 작동하고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에도(!) 다들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할 텐데, 포스트 코로나 체제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구상이 없으면 좁은 의미의 경제조차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핵심 세 가지만 말했으나, 왜 이것뿐이랴. 중요한 것은 어떤 항목이나 주제라기보다 인류가 당면한 조건 속에서 한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하고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희망’이다. 대선은 그 비전을 만들고 논의할 유일한 기회다.

대선에 나서겠다는 정치인들에게 비전과 구상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압박할 책임은 우리의 것이다. 언론이 제구실을 못 하는 한, ‘공화국’의 시민이 일차로 책임을 져야 한다. 방법이야 그사이 축적된 온갖 대안적 수단이 있지 않은가.

※ 2021년 7월부터 <서리풀 논평> 꼭지명이 <시민건강논평>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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