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표준지침에 스프라이셀·타시그나 등 치료결과 추가돼
"임상서 글리벡보다 효과 높고 부작용 덜한 것으로 나타나"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 대한 정부의 약가 인하 조치가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무산되면서 환자의 부담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은 지난 3일 글리벡 제조사인 한국노바티스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보험약가 인하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고시된 글리벡 상한금액이 처음부터 불합리하게 정해졌다고 볼 수 없다”며 “약제 상한금액을 인하한 처분은 정당한 조정사유 없이 이뤄진 것으로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나 위법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글리벡 약가인하 소송에서 한국노바티스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글리벡의 대안으로 2세대 백혈병 치료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가 백혈병 연구·교육재단인 ‘유럽백혈병네트워크(ELN)’의 국제표준지침에 국내 만성 골수성 백혈병 연구자료를 추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ELN 표준지침은 전 세계 70% 이상의 병원과 의료진이 진료와 연구 시 참고하며 암 분야 국제학술지에 500회 이상 인용될 정도로 권위가 있는 기준지침이다.

국제표준지침에 추가된 국내 연구 자료에는 서울성모병원에서 조사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의 장기치료 효과가 담겼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개정된 국제표준지침에 2세대 표적항암제인 '스프라이셀'과 '타시그나'의 치료결과가 추가됐다는 점과 첫 치료 후 3개월부터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치료 결과를 평가하도록 하는 지침이 신설됐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에 나온 항암제인 '이클루시그', '보술립', '오마세탁신'과 한국에서 개발된 차세대 백혈병 치료제로 불리는 '슈펙트'<사진>의 치료 효과도 언급됐다.

연구를 담당한 김동욱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허가를 받았지만 약가가 싸고 환자에게 치료효과가 더 높은 약물이 있다”며 “그동안 국제표준지침에 따라 이러한 약을 무시한 채 비싼 약을 추천하는 꼴이 돼버렸다”고 연구 결과에 2세대 신약의 치료 효과를 실은 이유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의 합병증을 줄이면서 생존율을 높이는 완치법을 찾기 위해서는 국제표준치료지침의 개정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며 “글리벡 이외의 다른 약의 치료 효과 연구자료가 국제표준치료지침에 포함됐으므로 아시아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게다가 슈펙트의 경우 신약임에도 불구하고 글리벡 보다 약값이 싸다”며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중에는 글리벡이 아닌 슈펙트 처방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7월 김 교수는 글리벡 대신 ▲스프라이셀(성분명 다사티닙) ▲타시그나(성분명 닐로티닙)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 등 2세대 표적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서를 환자 수백명과 함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원을 낸 적도 있다.

당시 김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과 환자들은 “이들 약물은 글리벡의 뒤를 이을 제품으로 개발됐으며 임상시험에서 글리벡보다 효과가 강력하고 부작용은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현행 건강보험 적용 기준 때문에 환자들은 효과가 덜하고 비싼 약을 쓰도록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쏟아진 글리벡 제네릭 제품…시장 전망은 불투명

지난 6월 글리벡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제네릭 의약품이 속속 출시됐다. 이미 CJ제일제당을 비롯해 부광약품, 종근당, 한미약품, 일동제약 등 10개가 넘는 제약사에서 글리벡 제네릭 제품에 대한 보험약가 등재를 마치고 제품을 발매했다.

CJ와 부광은 제네릭 제품 100mg 1정당 글리벡(2만1281원)의 20% 수준에 불과한 가격으로 보험약가를 책정해 시장 선점에 나섰다. 하지만 글리벡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진입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서울성모병원 김동욱 교수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2세대 표적항암제를 포함해 글리벡 제네릭의 처방이 활성화 될 것으로 본다”며 “하지만 제네릭 의약품의 경우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리벡 제네릭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이유로 ▲오리지널과 다른 화학식 구조 ▲임상시험 부재 ▲가격 경쟁력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글리벡 제네릭의 경우 오리지널 글리벡의 1차 화학구조는 같지만 3차 구조는 다르다”며 “제네릭의 경우 생동성실험을 통해 허가를 받았지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부작용이나 효과를 검증하지 않아 오리지널과 같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글리벡 필름코팅정 100mg이 이달 1일부터 2만1281원에서 1만4897원으로 약 30% 인하되면서  제네릭의 가격졍쟁력도 떨어지게 됐다. 김 교수는 “제네릭 약가가 오리지널에 비해 가격면에서 크게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며 “10년 넘게 글리벡을 복용하고 적응해왔던 환자들이 제네릭이 출시됐다고 해서 한 달에 3~4만원 차이로 복용 패턴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환자들도 글리벡에 비해 제네릭에 대한 신뢰가 낮은 편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제네릭이 오리지널과 같은 효능을 낼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혹시라도 생길 문제에 대한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한 달에 5~6만원 정도 차이로 환자들이 굳이 입증되지 않은 제네릭으로 바꾸진 않는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의료진 입장에서도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내성이 생기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등 위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선뜻 처방패턴을 바꾸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제네릭이 오리지널과 비교했을 때 치료 효과가 같다는 신뢰를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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