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디지털헬스기기TF, 90개 품목 신설…불면증 등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확대
강영규 팀장 “합리적 규제와 전문심사로 신속한 제품 개발·상용화 견인”

[라포르시안]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란 PC·모바일·스마트워치 등 범용 하드웨어에 설치해 사용하는 독립적인 소프트웨어 형태 의료기기를 가리킨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진단보조SW, 모바일 의료용 앱,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프로그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통적인 개념의 하드웨어 의료기기와 달리 개발부터 임상·제조 공정·품질관리 등 무형의 형태로 이뤄지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그 특성상 기존 허가심사·인허가·사후관리와 같은 규제프레임을 적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이렇다.

프로그램 기반 소프트웨어는 의료기기 안전성에 해당하는 안전관리를 위해 단순 기능시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개발·제조과정 전반을 확인하는 것이 국제적인 요구사항이다.

그렇다면 무형의 프로그램 개발·제조과정은 어떻게 시험을 할 수 있을까. 더욱이 인체에 이식하거나 접촉하지도 않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임상시험을 어떻게 적용할까. 의료기기처럼 피험자를 모집해 시행해야할까, 아니면 기존 데이터를 활용한 후향적 연구(Retrospective Study)로 가능할까.

뿐만 아니라 업데이트가 자주 발생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변경허가와 외국기업의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은 경우 수입통관 절차는 어떻게 적용할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품 회수는 또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 따져보면 기존 하드웨어 형태 의료기기에 적용하는 규제프레임으론 해석이 불가능하다. 

앞서 미국 독일 캐나다와 같은 국가들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특성에 맞는 임상·허가심사·인허가· 시설 및 품질관리·사후관리 등 새로운 규제체계를 마련하고 전담조직을 신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디지털헬스기기TF’에 주어진 미션이다.

의료기기심사부는 2020년 4월 6일 첨단의료기기과 내 해당 TF를 꾸리고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특화된 전문심사 규제와 가이드라인 수립을 위한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식약처의 디지털헬스기기TF 신설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가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기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며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하면서 제품 개발이 활발해지고 허가신청 또한 급증하고 있는 추세에 발맞춰 시기적절한 결정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점은 디지털헬스기기TF가 생긴 지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식약처 정식 직제에 따른 ‘전담과’가 아닌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TF팀이라는 ‘태생적 한계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식 전담과가 아닐뿐더러 인력 또한 부족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대한 전문성을 담보한 합리적인 규제를 새롭게 만들거나 업체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은 제한적으로 수행하되 당장의 허가심사 업무에만 불가피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라포르시안은 디지털헬스기기TF 신설 배경부터 그간의 성과는 물론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규제 방향과 현 상황에서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강영규 식약처 의료기기심사부 디지털헬스기기TF 팀장으로부터 들어봤다.

강영규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디지털헬스기기TF 팀장
강영규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디지털헬스기기TF 팀장

식약처내 디지털헬스기기TF 신설 이유는?

디지털헬스기기TF 신설은 본격적인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등장과 맞물려 논의되기 시작했다.

강영규 디지털헬스기기TF 팀장은 “4차 산업혁명시대 정보통신기술(ICT)과 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질병에 대한 진단·예방·관리·예측과 함께 치료 목적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식약처는 지난해 5월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이 시행되면서 혁신의료기기 중에서도 소프트웨어 의료기기가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이 높고 시급성이 요구되는 만큼 AI, VR·AR, 디지털 치료기기, 모바일 앱 등에 대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제공해 업체들이 신속하게 제품화할 수 있도록 디지털헬스기기TF를 꾸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디지털헬스기기TF는 약 1년 2개월 동안 어떠한 성과를 냈을까. TF팀이라는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대한 임상시험 계획 승인·허가심사 가이드라인(민원인안내서) 제정 등 전문심사를 담당하는 전담조직에 걸 맞는 품목분류 업무를 수행했다.

강영규 팀장은 “지난해 10월 28일로 기억하는데 제대로 된 명명이 없었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하나의 품목군으로 분류하고 90개 품목을 신설했다”며 “정확한 품목군 및 품목 분류는 향후 보험급여와도 연계되기 때문에 매우 유의미한 작업이었다”고 강조했다.

치료 목적의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발간한 것도 주요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치료 작용기전에 대한 과학적 임상적 근거를 바탕으로 질병의 예방·관리·치료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고 의료기기의 사용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을 갖는 독립적 형태의 소프트웨어만으로 이뤄진 의료기기로 약물중독이나 우울증 등 정신·신경계질환뿐 아니라 천식·당뇨 등 다양한 질환 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 또 전임상 단계가 없는 등 기존 신약 개발에 비해 비용이나 시간이 적게 소요되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헬스기기TF는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치료기기의 허가심사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의료기기업체의 연구개발과 제품 상용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강 팀장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가운데 디지털 치료기기는 웰니스 제품·공산품과 혼돈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명확한 구분기준과 디지털 치료기기로 인정되는 실제사례를 제시한 것은 물론 기술문서·성능 및 유효성 검증 등 허가심사에 필요한 서류·자료와 임상시험에 필요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에 따라 혁신의료기기 제품을 지정하는데, 지금까지 지정된 총 11개 중 8개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해당한다”며 “디지털헬스기기TF는 혁신의료기기 제조기업 인증·혁신의료기기 지정에 참여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허가 시 제출자료 면제 등 고시 개정에 필요한 의견을 냈다”고 덧붙였다.

특히 디지털헬스기기TF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인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이미 수행 중이다.

앞서 지난해 8월 발간한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품 범위·정의 ▲판단 기준 및 제품 예시 ▲기술문서 작성·첨부 자료 등 기본 내용을 소개한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임상시험 기준을 제시해 관련 제품 상용화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목적에서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디지털헬스기기TF’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특화된 전문심사 규제와 가이드라인 수립을 위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2020년 4월 6일 신설됐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디지털헬스기기TF’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특화된 전문심사 규제와 가이드라인 수립을 위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2020년 4월 6일 신설됐다.

강영규 팀장은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업체 입장에서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탐색·확증임상시험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지 여부”라며 “설령 외부 컨설팅을 맡기더라도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스타트업이나 규모가 작은 업체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불면증’과 ‘알코올·니코틴 중독’을 적응증으로 하는 디지털 치료기기 2종에 대한 성능평가·임상시험 가이드라인 개발을 진행 중”이라며 “업체들이 추후 이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면 개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신속한 제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불면증 및 알코올·니코틴 중독을 시작으로 디지털헬스기기TF의 치료 목적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그 적응증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부처별 디지털 치료기기 관련 연구개발 과제가 올해 이미 시작됐거나 내년에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

강 팀장은 “지금은 디지털 치료기기 가운데 가장 시급한 불면증 및 알코올·니코틴 중독을 적응증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향후 우울증, 재활, 게임 및 약물중독, 재활까지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디지털헬스기기TF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각 적응증에 부합하는 성능평가나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이며 지속적으로 발굴해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W 의료기기, 중요성·적시성·합리성 기반 규제 만들어져야"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과 AI 기술을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최적의 인프라를 구축해 세계시장 선점에 유리한 입장이다.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에 대한 범부처 차원의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 팀장은 강조했다. 기존 의료기기·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또한 인허가 다음 단계의 보험급여 여부가 제품 상용화 및 산업 활성화와 직결되기 때문에서다.

강 팀장은 “올해 초 식약처와 복지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시장 진출 촉진을 위해 범부처 협의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며 "이들 기관은 인허가, 신의료기술, 보험급여, 산업 진흥 등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개발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에 걸쳐 업체들의 애로사항을 파악해 선제적으로 지원하고자 머리를 맞대고 개선안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인허가부터 신의료기술평가까지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복지부는 식약처와 협의해 업체가 필요한 경우 연구개발을 통해 임상시험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러한 지원책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개발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기기는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또한 안전성·유효성 확보를 위한 각종 규제를 적용받는다. 한때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뽑아야 할 ‘전봇대’, ‘손톱 밑 가시’로 평가 절하됐던 규제가 이제는 제품 상용화 가능성과 시장예측성을 담보하는 길이자 이정표가 되고 있다.

중요한 건 그 '길'을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시장 활성화와 산업화 성패가 달려있다는 점이다. 지방도로보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목적지까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되는지 예측 가능할뿐더러 더 빨리 안전하게 갈수 있는 것처럼.

강영규 팀장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중요성·적시성·합리성을 기반으로 규제가 만들어져야 환자의 안전성·유효성을 확보하고 제품 개발과정에서의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며 “디지털헬스기기TF는 규제라는 고속도로를 잘 만들어 업체들이 그 길을 따라 신속한 제품 개발과 상용화를 이뤄낼 수 있도록 전문심사를 수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