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을 경영하라 / 로사 전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2011년

저는 병원에서 하고 있는 환자치료에 관한 전반적 수준을 평가하는 일을 자문하고 있습니다. 의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환자를 진료하는 대부분의 과정이 옛날과는 달리 아주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평가는 크게 구조, 과정, 결과의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구조영역에서는 시설, 인력 그리고 장비 부문이 진료에 적정한 수준으로 갖추어져 있는지를 평가하고, 과정부문에서는 평가대상이 되는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행위들이 적절하게 제공되고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결과부문은 치료의 결과, 예를 들면, 부작용 발생률이라거나, 사망률, 그리고 비용이나 재원기간 등을 평가하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모든 평가지표가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들 지표의 중요도를 고려하여 가중치를 두어 최종결과라고 할 종합점수를 내게 됩니다.

평가의 결과는 관련분야의 보건의료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대상질환의 의료수준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일반국민들이 병원을 선택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자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평가를 통하여 개별 병원들의 진료수준을 타 병원들과 비교할 수 있게 됨에 따라서 이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촉발시켜,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 전체의 의료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는 평가점수에 따라 전체 병원을 줄세우기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있습니다만, 종합점수를 적절한 구간으로 나누어 등급으로 나타내 일반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진료행위가 의사의 고유한 업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병원과 진료수준을 평가하는 작업이 참으로 어렵게 발전해왔습니다만, 이제는 평가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의료영역에까지 평가가 도입된 것은 국민의 권리확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평가가 일반화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의료영역에서는 평가결과에 따라서 병원들의 순위를 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다른 영역의 평가는 순위를 정하여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는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도 현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업실적에 따라서 기업들의 상대적 순위를 발표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업이 단순하게 이익을 내는 것 이외에도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업은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들과 시장에서 피를 말리는 경쟁을 통하여 살아남을 수 있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인식이 중요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에 대리점을 마치 노예취급했다는 모 유제품회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고, 대기업 총수 일가족의 비리가 확산되면서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유제품 회사의 불매운동이 확산될 무렵 <시사저널>에서 개최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회사(Healthy and Sustainable Company)”를 주제로 한 <2013 굿컴퍼니 컨퍼런스>에 초대받았습니다. 어떤 회사를 착한 회사라고 할 수 있는지, 왜 착한 경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많은 전문가들이 발표를 들었습니다만, 특히 <굿 컴퍼니, 착한 회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으로 알려진 맥바시&컴퍼니의 CEO 로리 바시, 그리고 <평판을 경영하라>로 알려진 로사 전교수님의 강의가 좋았습니다.

로리 바시는 ‘직원, 소비자, 이웃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착한 회사가 세상을 살만하게 바꿀 것’이라 주장하고, 상호주의, 연결지향성, 투명성, 균형, 그리고 용기 등 다섯 가지 요소를 판단기준으로 착한 회사를 가려낼 수 있다고 하였고,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이런 회사의 제품을 소비하고 투자함으로써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착한 회사를 가려낼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사회적 기대가 커진 ‘사회적 가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가치는 다양한 덕목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익을 내는 것이 비즈니스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밀튼 프리드먼의 주장에 더하여, 지속가능성에 대한 비전과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는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직원과 고객, 지역사회와 환경 등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로리 바시 지음, 굿 컴퍼니, 착한 회사가 세상을 바꾼다).

로리 바시는 ‘선함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주장했습니다만, 로사 전교수님은 착한 회사가 꼭 정답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외부 평가가 재무성과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선정된 기업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지속성장 가능성과 경쟁력을 가지려면 외부평가에 매달리기 보다는 고객, 직원, 파트너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평판을 전략적으로 경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로사 전교수님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그녀의 <평판을 경영하라>를 읽었습니다. 기업 평판과 브랜드, 윤리 경영의 전문가인 로사 전 교수는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세계적 명문, 스위스 IMD 경영대학원의 교수로 근무하면서 각국에서 최고 경영자 과정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개인도 단체도, 그리고 국가도 평판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5쪽)”고 잘라 말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기업경영을 관심대상으로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평판경영을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기업’의 자리에 개인 혹은 조직으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을 놓아도 충분히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평판경영’을 “다중 이해관계자들이 회사나 기업에 대해 경험을 통해 인지하는 총체적인 느낌, 즉 감성적인 연상”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의에 들어가 있는 핵심키워드가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즉, 머리로 인지하는 요소보다는 우리의 감성적 세포에 어필하는 요소가 평판관리에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모두 5부로 구성된 내용을 보면, 커리어 혹은 이미지 관리 정도로, 평판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점들을 먼저 설명하고, 이어서 평판의 측정, 진단, 변혁 그리고 예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부 용어는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담기에 적절치 않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평판경영을 위한 조직진단의 원리를 “선(善), 흥(興), 능(能), 격(格), 권(權)”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나타내고 있는데, 우리말로 표현하니 간략하고 느낌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을 외국어로 옮겼을 때 ‘(외국)독자들이 그 느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공연한 걱정을 해봅니다. 요약하면, 선은 위기의 대항마이며, 흥은 충성팬을 열광하게 하는 히든카드이고, 능은 성장을 약속하며, 격은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인데, 권은 과하면 낙하산 행이 될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 평가측정이 끝나면 평가결과를 분석하여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을 하게 됩니다. 기업의 경우는 평판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이해당사자인 소비자, 직원 그리고 리더와 관련된 사항을 중심으로 조직의 평판을 측정하고 진단이 이루어집니다. 문제점이 도출되면 맞춤처방을 통하여 치료를 해야 하겠지요. 이 과정을 ‘변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전략은 역시 조직을 구성하는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여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중역이나 임원들만이 참여하는 대책회의에서 진단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좋은 평판을 만들어내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닫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따라서 좋은 평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끌어올리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방’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의미는 알겠는데 꼭 맞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지속평판경영’이라는 설명도 그렇습니다. 어떻든 저자는 6가지의 비결을 내놓고 있습니다. 1. 직원들의 복수를 두려워하라, 2. 아직도 ‘묻지마’ 경영을 하는가?, 3. 초스피드 추락을 불러오는 초스피드 성장의 함정을 조심하라, 4. 구관이 명관이라는 안이함에서 벗어나라, 5. 자아도취는 금물, 변화에 민첩하라, 6. 삼위일체 평판경영을 하라, 등입니다.

저자가 평판측정에 사용하는 구체적 평가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평가작업이란 것이 대부분 전문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다보면 독자를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략적 평판경영’ 여부를 가늠하는 다섯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가? 2. 영감을 주는 변혁형 리더가 있는가? 3. 인적자원과 마케팅 사이에서 적절한 가치 배분을 하고 있는가? 4. 아래로부터 소통을 하고 있는가? 5. 비전과 우수한 내부 평판이 받쳐주는 우수한 외부(고객)평판을 보유하고 있는가? 등입니다.

앞서 착한 기업이 기업경영의 해답이 아닐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착함’이 여러 가지 해답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에둘러 말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선(善), 흥(興), 능(能), 격(格), 권(權)”의 다섯 가지 키워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도 그럴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만, 다섯 가지 키워드 가운데 핵심 키워드를 하나 고르라고 하면 저는 흥(興)을 고르겠습니다. 저자는 흥(興)이라는 요소에는 얼마나 모던한가, 얼마나 신명나는가 그리고 얼마나 대담한가의 세 가지 측면에서 측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흥이 충만한 조직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저절로 누구나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로라 바시 역시 좋은 고용주의 항목의 하나로 ‘직원이 헌신할 수 있는 가치창조적 조직’을 들고 있습니다. “가치창조적 조직을 위한 최고의 요소는 직원의 장기적 헌신에 있다”고 했는데, “직원이 사업 목표 당성에 필요한 역량을 스스로 갖추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쉽게 찾아내면, 직원의 성과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인정하여 직업적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다.(191쪽)”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조직의 내부평판을 끌어올리는 소극적 접근방식에 불과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직원에게 헌신하는 조직만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직원들을 유지할 수 있어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부서의 책임자로 일할 때 부서원들에게 “아침에 일어나면 기쁜 마음으로 출근하는 사무실”을 만들겠다고 강조하곤 했습니다. 부서원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발견하여 해결하고, 적절한 기회를 만들어 같이 즐기고, 부서 전체가 추진하는 사업은 물론 부서원 개인의 희망사항을 모두 같이 빌어주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직원들의 헌신은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잠시 제가 하고 있는 업무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제는 전국에 천개가 넘는 요양병원이 있습니다만, 요양병원의 평가항목 가운데 간호사 이직률이 있습니다. 이 지표를 적용할 때 관련 단체에서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습니다만, 환자입장에서는 돌봐주는 간호인력이 자주 바뀌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점을 들어 이해시켰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설명을 이 책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기업에서 직원이 자주 바뀐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새 직원을 뽑고 연수시키고 업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는 데 발생하는 비용이 모이고 모이면 엄청나다. 돈이 문제가 안 되는 기업일 경우에도, 소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항상 직원이 바뀌는 기업은 직원과 소비자와의 관계가 중요한 서비스업종에서는 더욱 좋지 않은 모습이다.(130쪽)”

정리를 해보면, 저자는 조직의 미래경쟁력은 내부평판과 외부평판 사이의 갭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능력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화내빈이면 결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평판경영은 내부평판을 끌어올리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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