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 불법의료 실태 알려지면서 해법 모색 공론화
서울대병원 PA 제도화 추진에 논란
"의사인력 확충 안하면 근본적 해결책 될 수 없어"

[라포르시안] "우리는 전산이나 기록, 차트 어디에도 남지 않는 사람이다. 병원이 기록을 남기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병원은 불법인 걸 알면서도 일을 시키기 위해 법을 피하고자 한 것이다”

지난 12일 전국건의료노조가 불법의료행위 문제를 제기하는 현장 좌담회에 참석한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 간호사가 증언한 내용이다.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참석한 상황이 국내 의료시스템 속에서 PA 간호사가 어떤 존재인지 짐작하게 한다.

PA 간호사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상에 모호하게 발을 걸치고 있다. PA는 법적으로 병원 내에 존재할 수 없는 직종이다. 실제론 국내 대부분 국립대와 사립대병원에서 1000명이 넘는 PA가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이 없으면 병원 내 외과쪽 일부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기 힘든 구조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입사 10년 넘었지만 병원에 내 이름으로 일한 기록 없다"는 PA 간호사>

한참 전부터 의료계 내에서 PA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다 2016년 말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전공의법'이 시행에 들어가면서 더는 감출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전공의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병원은 의사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의사 인건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전공의 등 의사가 해야할 업무를 간호사에게 맡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보건의료노조가 전국 50여개 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PA 불법의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PA가 수행하는 불법의료는 ▲대리 처방 ▲동의서·의무기록 대리 작성 ▲대리 처치·시술 ▲대리 수술 ▲대리 조제 등 다양했다.

외과 PA로 근무하는 간호사는 집도의가 바빠 수술실에 늦게 들어오면 PA 간호사가 먼저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PA 간호사가 처방 업무를 수행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오히려 이를 거부하면 보복성 업무지시까지 겪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PA 불법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PA를 아예 제도화해 병원내 정식 의료인력으로 양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원이 적정 의사인력을 확충하게끔 제도개선을 하고 PA를 근절하는 방법이다. <관련 기사: 복지부 "간호사 수술 부위 봉합은 위법"...PA 존재 불인정>

병원계 내에서도 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다. 병원 경영진은 PA 제도화를 선호한다. 반면 전공의를 비롯한 의사들은 PA 제도화에 강하게 반발한다. <관련 기사: 모순적인, 너무나 모순적인 한국 의료인력 구조>

이런 가운데 최근 서울대병원이 PA 간호사를 양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PA 간호사 소속을 간호본부가 아닌 진료과로 변경하고, '임상전담간호사'로 명칭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의 이런 방침은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은 "PA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는 질의에 "정부가 적극 양성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을 해 주목받은 바 있다.

당장 서울대병원의 PA 제도화 추진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서울대병원은 불법적인 PA 합법화 시도를 즉각 철회하고, 국민과 의료계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병의협은 "불법 PA 의료행위는 의료인 면허체계의 붕괴, 의료의 질 저하, 의료분쟁 발생 시 법적 책임의 문제, 전공의 수련 기회 박탈, 봉직의사의 일자리 감소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높기에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그러나 상급종합병원 및 대형병원들은 불법 PA 의료행위를 지속할 생각일 뿐만 아니라 불법을 합법화시키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단체는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사퇴와 함께 대한의사협회가 김 병원장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PA 업무가 명백한 불법이기 때문에 근절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대전협 22기 집행부 연구팀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에 걸쳐 전공의 15,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 자료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공개하면서 PA 운영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서도 파악했다.

대전협 연구팀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근무하는 수련기관이 법보조인력(PA)을 운용한다고 응답한 전공의가 70%를 넘었다. PA로 인해 교육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비중이 2018년에는 약 25%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근거로 PA로 인한 전공의 교육기회 박탈, 더 열악해지는 육성지원과목의 부실수련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2021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지난 12일 열린 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에 PA 간호사 2명과 중환자실 간호사 2명이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참가해 병원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의료 실태를 증언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2021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지난 12일 열린 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에 PA 간호사 2명과 중환자실 간호사 2명이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참가해 병원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의료 실태를 증언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최근 PA 불법의료행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보건의료노조는 이 문제를 의료계 전체에서 공론화하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입장이다.

보건의료노조는 18일 성명을 내고 "서울대병원이 PA 문제 해결방안으로 PA를 ‘임상전담간호사’로 용어를 변경하고 공식 인정하겠다고 나선 건 내부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는 사실상 본질적 해결책 없는 의사 부족으로 인한 의료기관 불법행위와 간호사, 의료기사 등에 대한 불법행위 강요를 공식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대리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법적인 재정비 없이 서울대병원이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관련 기사: [편집국에서] 한국의료를 관통하는 깊고도 단단한 '착취구조'>

보건의료노조는 "(서울대병원의) PA 공식화 선언은 그 의도가 불분명하며 특히 지난해 의사 집단 진료 거부 시 동조했던 대형병원의 병원장들 행태를 볼 때 더더욱 의사인력 확대 반대 등 의사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하나의 방편은 아닌지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의사인력 확충 없는 개별 병원의 PA 공식화는 실질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복지부는 서울대병원의 논의를 중단시키고 PA 현황과 업무 행위 등에 대한 실태조사와 해법 마련을 위한 논의를 즉각 시작해야 한다"며 "의사협회, 병원협회, 전공의협의회, 간호협회 등 전 의료계도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문제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할 것"을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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