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대신해 수술·시술·투약 처치·처방까지 하는 PA
대학병원서 1천명 넘는 PA 인력 유령처럼 활동
"의사 부족으로 PA에 더 많은 의사업무 전가...적정 의사인력 확충 시급"

[라포르시안] "PA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제도이다" <보건복지부>

2018년, 국립대병원인 강원대병원이 정형외과 수술에서 간호사가 수술 분위를 봉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 불법의료가 논란이 되자 보건복지부가 밝힌 공식 입장이다.

앞서부터 복지부는 PA 불법의료 논란이 일 때마다 비슷한 입장을 취해왔다. 문제는 제도상 존재하지도 않는 PA가 수술부위를 봉합하거나 심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가 병원에서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PA 불법의료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작년 국감 때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국회 교육위원회)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국 16개 국립대병원에서 모두 PA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전공의법이 시행된 2016년 말 기준으로 총 770명에서 2020년에는 1020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간호사가 대부분인 이들은 병원 내에서 공식적으로는 '유령' 같은 존재로 치부한다. 진료실과 수술실 등에서 의사가 해야할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런 역할 자체가 외부로 공개되는 게 금기사항이다. <관련 기사: 병원의 유령 같은 존재 PA...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2021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지난 12일 열린 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에 PA 간호사 2명과 중환자실 간호사 2명이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참가해 병원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의료 실태를 증언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2021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지난 12일 열린 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에 PA 간호사 2명과 중환자실 간호사 2명이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참가해 병원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의료 실태를 증언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지난 12일 현장 좌담회를 열고 전국 50여 개 병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PA 불법의료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한 조사결과는 대학병원에서 PA가 얼마나 환자 처치와 시술, 처방, 심지어 수술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의사 역할을 대신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26개 국립대병원·사립대병원에서만 간호사 1,680여 명이 PA로 일하고 있다. 26개 병원 중 PA 간호사가 100명 이상 일하고 있는 병원이 15.4% 달했다. 조사 대상에 포함된 절반 이상 병원에서 50명 이상 99명 미만 간호사가 PA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불법의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가장 많이 벌어지는 5대 불법의료로 ▲대리 처방 ▲동의서·의무기록 대리 작성 ▲대리 처치·시술 ▲대리 수술 ▲대리 조제를 지목했다.

의사 업무를 전담하는 PA 간호사 외에도 병동과 외래,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일반 간호사 역시 대리 처치와 시술, 처방 등 불법의료를 대부분 경험하고 있었다. PA 간호사는 전체 근무시간 대비 의사 업무 비중이 68%라고 답했는데, 일반 병동 간호사도 근무 시간 중 37% 동안 의사 업무를 대리한다고 답했다. <관련 기사: 불법과 합법 '회색지대' 놓인 PA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우리는 전산이나 기록, 차트 어디에도 남지 않는 사람이다” 

현장 좌담회에는 PA 간호사 2명과 중환자실 간호사 2명이 직접 참석해 병원 현장에서 겪거나 본 불법의료 실태를 증언했다.

가면을 쓰고 참석한 모 대학병원 중환자실 근무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먼저 의사 아이디로 처방 내는 방법을 가르쳤다"며 "반면 인턴 의사, 전공의는 처방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결국 환자 처방은 모두 간호사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고발했다.

동료 간호사가 의사의 “늘 주던대로 줘”라는 말을 듣고 고위험 약물을 처방했던 사례도 소개하며, “이렇듯 처방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의사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과 PA로 근무하는 A 간호사는 집도의가 바빠 수술실에 늦게 들어오면 PA 간호사가 집도의가 오기 전까지 대신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증언도 했다.

A 간호사는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네가 거기 있으니 네가 좀 하라’고 지시해 충수돌기(맹장), 담낭, 위장 절제까지 하곤 했다”며 “사실상 전공의(수련 레지던트)를 넘어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전임의 수준으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신규 간호사때부터 PA 업무를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문제를 인식하고‘불법의료행위를 못 하겠다’며 의사-간호사 간 업무 분담을 요청하자 '일 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며 “PA 간호사로 경력은 있지만 일반 간호사 일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받아 줄 부서는 없고, 당시 나는 한 번 쓰고 닳으면 쉽게 바꾸는 소모품이 된 것 같아 상실감을 느꼈다”고 호소했다.

“모든 일을 의사 명의로 했기에 10년 넘게 병원에서 일했어도 입사 뒤 내가 일한 기록은 아무것도 없다”며 A 간호사는 자신이 병원 내에서 정말로 유령같은 존재였다고 전했다.

PA로 일하고 있는 C 간호사는 “우리는 전산이나 기록, 차트 어디에도 남지 않는 사람”이라며 “병원이 기록을 남기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병원은 불법인 걸 알면서도 일을 시키기 위해 법을 피하고자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공의 정원은 줄고, 전공의 근무 시간은 줄어드는데 의사 인력은 늘리지 않아 PA 종사자가 늘고 있다”며 “아무런 법적 보호와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쉽게 쓰이고 버릴 수 있는 대체재”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불법의료를 지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업무상 불이익을 줬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B 간호사는 “다른 병동에선 알아서 환자를 처리하고 치료하는데 왜 너희 병동은 그렇게 안 하냐며 알아서 처방 낼 것을 강요받았다”며 “거부할 시 필요하지 않은 일들까지 요구하며 퇴근할 수 없도록 하는 보복성 업무 지시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처럼 PA 불법의료가 성행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병원에 의사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인구 1000명당 의사인력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의 인구 1000명 당 활동의사 수는 2017년 기준 2.3명(한의사 0.4명 포함)으로 OECD 평균(3.5명)의 65.7% 수준이다. 인구 10만 명 당 의과대학 졸업자 수도 7.6명으로 OECD 평균(13.1명)과 비교해 58% 수준에 그친다.

이대로 가면 시간이 지날수록 의사 수가 더 부족해질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게다가 빠른 인구 고령화를 감안하면 급증할 의료서비스 수요에 대비해 의사인력을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해 나오고 있다. <관련 기사: 지방 대학병원 병동은 전공의 퇴근 후엔 '무의촌' 같다고 한다>

지방 사립대병원 한 관계자는 "의사인력 부족 문제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역의 의사인력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며 "전공의법 시행 이후 전공의 퇴근시간이 지나면 지방의 상급종합병원은 병동에 의사가 없는 ‘무의촌 상황’으로, 야간 응급실 내원 환자가 의사가 없어 적절한 치료 및 응급수술 등을 받을 수 없으며, 각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간 연락으로 응급실 투어를 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문제 심각성을 전했다.

그동안 국내 대형병원은 주당 8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며 저임금을 받는 전공의들의 노동력을 쥐어짜 지탱해온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전공의법이 시행되면서 이마저도 힘들어졌다.

전공의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대학병원의 교수 근무시간이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전공의법을 제정한 가장 중요한 목적이 적정 근무시간을 보장해 환자안전을 높이자는 취지인데, 이제는 병원 내 교수들이 번아웃(소진, Burnout) 될 지경에 처해 환자안전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럼에도 병원들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의사인력 확충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근본적인 대책은 병원이 규모에 맞게 적정 의사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의료시스템을 재편하는 거다. 동시에 적정 의인력 확보를 위해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의사인력 부족 문제 해소를 위해 정부는 2022년부터 10년간 한시적으로 연간 400명씩 의대 입학정원을 확대하고 증원된 의사인력 중 300명을 의료취약지 병원에서 의무 근무하는 '지역의사'로 양성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의료계 반발로 접었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의사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환자 치료와 안전에 직결된 업무가 PA와 일반 병동 간호사들에게 점점 더 많이 전가되고 있다”며 “PA와 간호사가 하는 의사 대리 업무는 정규 교육과정이나 자격조건을 갖춘 행위가 아니기에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음은 물론, 의료사고 등 발생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행위자(PA 및 간호사)를 보호할 법적 장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간호사들이 불법의료에 내몰리고 있고, 환자는 속고 있다.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복지부가 나서지 않으면 불법의료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인의 양심을 가지고 환자를 속이지 않는 안전한 의료 현장을 만들자”며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전공의협의회에도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불법의료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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