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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대답...학술지에 등장한 ‘알기 쉬운 요약’'보건사회연구' 올해 발간물부터 비전문가 위한 별도 연구결과 요약 제공
신영전 편집위원장 "학술연구서 민주적 공공성 확대하려는 시도"

[라포르시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가 올해 발간호부터 논문 전문과 함께 '알기 쉬운 요약'을 별도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알기 쉬운 요약’은 게재된 논문 내용을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게 요약한 것으로, 국내 학술지 중 처음으로 시도하는 방식이다.

알기 쉬운 요약 서비스 관련 '보건사회연구' 편집위원장인 신영전 한양대 교수가 최근에 발간된 제41권 제1호에 '연구는 누구의 것인가?: ‘알기 쉬운 요약’을 시작하며'라는 에디토리얼(editorial)로 그 취지를 소개했다. 

신 교수는 '알기 쉬운 요약'을 추가한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 이유는 연구 성과를 사회정책부문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과 공유해 전문가의 지식 독점문제를 완화해 보자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두 번째로 연구 내용과 결과를 비전문가나 대중매체가 잘못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것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이고, 세 번째로 많은 시간과 노력, 경비를 들여 일궈낸 연구결과를 사회에 널리 알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2020년 보건사회연구 편집위원회에서는 2차례에 걸쳐 ‘알기 쉬운 요약’ 도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만장일치로 시행을 결의했다"며 "그 후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2~3차례 회의를 거쳐 초안을 만들었다. 기존 일반인을 위한 요약(lay summary)을 수록하는 국외 학술지들 예와 작성지침을 수합하고 검토했고 국내실정에 맞는 작성지침 개발과 기존 우리 학술지에 출간됐던 논문을 이용해 ’알기 쉬운 요약’ 예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알기 쉬운 요약은 게재가 확정된 논문에 한해 저자들에게 요청하고, 이 요약이 동료심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한 책임은 저자들에게 있다는 명시를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보건사회연구 편집위원회가 마련한 ‘알기 쉬운 요약’ 작성지침은 다음과 같다. 

◼ 간결하고 평이한 한글(필요시 영어)로 작성하십시오. 15-18세 청소년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 가급적 짧은 문장을 사용해 주십시오.
◼ 이 연구를 왜 수행했고, 무엇이 새로운 내용과 의의인지를 포함시켜 주십시오.
◼ 가급적 1인칭 능동태를 사용해 주십시오.
◼ 가급적 부정문이 아니라 긍정문을 사용해 주십시오.
◼ 꼭 필요시 핵심 표나 그림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 분량은 5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십시오.
◼ 최종 요약문이 준비되면, 비전문가에게 읽고 이해가 되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보건사회연구는 또 2020년부터 발간물을 100% 전자 출간 방식으로 전환하고, 올해부터 판형을 A4 크기로 키우고 2단 편집형태로 발간하기로 했다. 

신 교수는 "이는 일차적으로 경비절감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논문 인쇄 시 쪽수를 줄여 종이 사용도 줄여보려는 의도도 있었다"며 "전자 출간을 통해 장애를 가진 이들이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보다 쉽게 논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러한 전환을 한 이유"라고 했다. 

표 출처: <보건사회연구> 제41권 제1호

알기 쉬운 요약을 제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구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신 교수는 "한 연구물의 탄생은 무엇보다 그 연구자의 헌신과 노력의 결과이며, 그 연구물에 대한 권리의 중요한 부분은 연구자에게 있다. 이러한 연구자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며 "그러나 연구자의 교육, 훈련, 연구비, 연구장비와 시설 등은 전적으로 연구자로부터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연구의 대상, 연구에 사용된 인구학적, 생물학적, 설문 정보 등을 제공한 시민, 환자들, 그 대상을 더 확장하면 연구에 사용된 동식물이 없었다면 이러한 연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완성된 연구결과물에 담긴 주요 내용과 그 함의를 비전문가들이 이해하는 것이 많은 경우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과 그러한 연구결과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와 비전문가 간 차별을 겪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신 교수는 "전문적인 연구 결과를 이해하는 이들은 그 결과를 활용해서 자신의 사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반면, 비전문가는 정보접근과 활용에서 차별을 겪게 된다"며 "거대한 재력과 공권력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전문가를 확보하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연구를 진행하는데 유리하며 큰 돈이 드는 거대 규모의 과학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이용하는 데도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연구결과물에 대한 정보접근과 이해, 활용의 불평등은 연구 주제와 진행에서도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 하지 않는 연구)'와 같은 불평등 문제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왜 어떤 의학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의학적 도그마 강화하는 '언던 사이언스'>

'정부, 산업, 사회운동의 제도적 매트릭스 속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 채 생산되지 않은 지식'인 언던 사이언스는 주로 사회적인 취약층과 같은 집단에 집중되고, 이로 인해 이들을 위한 효과적인 개입 근거를 갖지 못하게 만들어 사회 구조적인 편견과 차별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행해지지 않는 ‘언던 사이언스'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결과적으로 연구의 주된 주제가 고소득국가에 관한 것, 거대 권력과 자본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러한 불평등은 과학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우려했다. 

연구 주제 선정과 수행에서 이른바 ‘국가-기업-전문가’가 이루는 ‘철의 삼각’이 생겨나고, 이에 대해 일반 시민과 시민사회는 더 위축되면서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전문적인 용어와 지식은 일반 시민들의 과학정책에 대한 감시, 견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연구 과제 선정, 평가 등의 과정에 일반인이나 환자 당사자가 참여하는 기전은 거의 전무하다"며 "과학이 시민을 떠날 때, 흔히 이는 무기로 둔갑한다. 학술연구에서 민주적 공공성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문의 전문화, 세분화가 가속화될수록 시민의 입장에서 연구의 기획, 시행, 평가, 활용을 책임질 조직적 움직임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라며 "보건사회연구가 시작하는 ‘알기 쉬운 요약’은 모든 학술연구의 민주적 공공성을 확대해 나가는 의미 있는 시도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뜻을 같이 하는 많은 학술관계자와 학술단체의 동참을 고대한다"고 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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