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의료기관 등 권고 수준에 그쳐
만성 인력부족 병원에선 '그림의 떡' 불과
"근본적으로 유급병가·상병수당 제도화 서둘러야"

[라포르시안] 정부가 오는 4월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백신 휴가'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높다. 

앞서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예방접종을 할 수 있도록 4월부터 백신 휴가 활성화 방안이 마련해 4월 1일부터 추진하기로 했다. 

백신 휴가는 이상 반응이 나타나 휴가를 신청한 접종자를 대상으로 하고, 의사 소견서 등을 요구하지 않고 접종자의 신청만으로 휴가를 부여한다. 접종 당일의 접종에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는 공가, 유급 휴가 등을 적용할 것을 권고하는 방식이다.

백신 접종 후 10~12시간 이내 이상 반응이 시작되는 점을 고려해 접종 다음 날 1일을 부여하고, 이상 반응이 있는 경우 추가로 1일 더 사용할 수 있어 총 이틀에 걸쳐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4월 첫째 주부터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접종이 시작되면 각 사업 및 시설 여건에 따라 병가·유급휴가·업무배제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4월 첫째 주부터 보건교사, 6월부터 경찰, 소방 군인 등 사회필수인력에 대해 접종이 예정돼 있어 인사처, 행안부 등의 복무규정 해석을 통해 병가를 적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기업 등 민간 부문에 대해서도 백신 휴가는 임금 손실이 없도록 별도 유급휴가를 부여하거나, 병가 제도가 있으면 병가를 활용하도록 권고·지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에서는 사업장 대응지침을 배포하고, 지방고용노동관서에서 관내 사업장을 적극 지도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간기업이나 의료기관 등에는 강제할 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보건대학원 정혜선 교수팀이 최근 ‘직장인의 코로나19 3차 유행 및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인식도 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에서 코로나19 확진이나 자가격리로 근무를 못하게 될 때 유급휴가를 지급하는 경우는 49.3%였다. 나머지 50.7%는 개인연차사용, 무급휴가, 결근처리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 증상이 의심돼 출근을 못할 때도 유급휴가를 지급하는 경우는 42%에 그쳤다. 58%는 개인연차사용, 무급휴가, 결근처리 등을 하는 것으로 확인돼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지원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관련 기사: 직장인 50%, 확진·자가격리 시 연차·결근처리...아프면 쉴 권리는?

코로나19 때문에 직장에서 불이익을 경험한 사례도 많았다. 연차사용을 강요(13.9%)하거나 무급휴업 강요(9.4%), 사직권고(2.2%) 등이 많았다. 임금삭감 및 임금체불(7.1%)까지 포함해 32.6%가 생계와 관련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 휴가가 도입되더라도 정부 권고에 그치는 만큼 관련 기업, 기관의 시혜적인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관련 기사: 접종 후 고열·통증 버티며 근무하는 의료진..."휴식·휴가 등 보호지침 필요">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9일 성명을 내고 "지금과 같은 ‘권고’의 방식이라면 휴가 등 쉴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5인미만 사업장과 일용직 노동자, 중소상공인 등 취약계층 등에게 백신휴가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며 "때문에 유급휴가를 보장하지 않고는 취약계층 등에서 백신접종을 기피할 가능성마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 대책에도 '이미 접종이 진행 중인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은 관련 협회와 협의'하거나 '5월에 접종이 예정된 항공승무원에 대해서는 항공사 등의 협의를 통해 휴가 사용'을 적극 권고하겠다고 수준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결국 민간기업, 기관등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백신 휴가는 권고·지도할 계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부도 스스로도 모르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감염병예방법의 개정을 통해 백신 접종 이후 휴가 부여가 가능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것처럼, 민간영역까지 제도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법률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촉구했다. 

감염병 전담병원인 서울의료원(의료원장 송관영)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감염병 전담병원인 서울의료원(의료원장 송관영)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의료기관에서는 백신접종에 따른 휴가를 사용하려면 실제 환자진료 등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데, 이러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인력운영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상황을 겪고 있는 의료기관에서 신규 입원환자를 줄이는 등 후속 조치가 따르지 않을 경우 백신 휴가 부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백신 휴가 계획이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향후 정부의 후속적 보완조치가 더욱 중요하다"며 "무엇보다도 백신휴가 제도화를 위한 관련 입법 조치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백신 예방접종에 따른 면역반응, 이상반응에 따른 코로나19 검사 등 의료기관 이용에 대한 세부적인 대책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는 지난해부터 제기되어온 유급병가 및 상병수당 제도 도입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유급병가·상병수당 제도화야 말로 뉴노멀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자 효과적인 대책"이라며 "발표만 해 놓고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의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백신휴가의 제도화 및 유급병가·상병수당 논의 등 각별한 후속조치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도 같은날 성명을 내고 "의료연대본부 산하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한 민간병원에서는 노동조합이 정부 권고안에 따른 접종 휴가를 요구하자 민간에서는 의무사항이 아니기에 권고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정부는 백신 접종을 호소만 하기 전에, 병원 인력 확보 계획과 함께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유급 병가 제도, 즉 상병수당을 즉각 도입해 제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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