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개. 지난해 5월 30일 제19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 이래 이달 5일 현재까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된 법안의 건수다. 19대 국회가 시작된지 1년 2개월밖에 안 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잖은 숫자다.

사실 복지위는 상임위 특성상 접수되는 의안(법률안, 결의안, 건의안 등)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전체 상임위 가운데 복지위는 의안 접수 건수가 총 1,611건으로 행정안전위원회(1,670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복지위에 접수된 의안 가운데 법률안만 1,424건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처리된 법률안은 575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미처리된 1,036건은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미처리된 1,036건 중 의원발의가 986건에 달했다. 법안이 처리되지 못한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국회의원들의 입법발의 남발이란 비난도 가능하다. 실제로 법안발의 실적을 쌓기 위해 충분한 법률 검토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발의된 듯한 법안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다.

의원 입법발의든 정부 입법발의든 상임위에 상정된 후 계류하다가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된 법안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법리적으로 쟁점의 소지가 있거나 혹은 법안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강력한 반대 등으로 법안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지위에 상정되는 법안들은 보건의료 및 복지와 관련된 것으로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이나 권리에 민감한 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 법안을 둘러싸고 이해단체간 첨예한 의견충돌이 벌어질 때도 많다. 그만큼 법안 발의가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복지위에 상정된 일부 법안을 보면 과연 입법발의 전에 충분한 사전검토와 의견수렴이 이뤄졌는지 의심스럽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6월 국회에 제출돼 복지위로 넘어온 의료법 개정안이다. 민주통합당 김성주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수술 전에 의사가 환자에게 위험성과 부작용 등의 사전설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의 취지는 의사에게 수술 등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할 의무를 부여해 환자의 안전과 선택권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의사에게 있어서 ‘설명의무’는 원칙과 직업윤리에 관한 것으로, 법규정을 통해 강제적으로 의무를 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점이다. 이 법안은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는 도덕규범에 관한 사항을 법제화하고 어기면 처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이미 의사가 설명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상황에서 행정규제까지 더하는 과잉규제다. 무엇보다 이 법안을 발의하기에 앞서 의사가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업게끔 만든 국내 의료환경과 제도상의 문제점을 살펴봤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설명의무 법제화에 앞서 근본적으로 진료환경 개선을 위한 조치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했을 것이다.

설명의무 법제화 법안과 마찬가지로 요양기관에 건강보험증 본인 확인 절차를 의무화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국회에 제출된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발의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법규정의 초점이 맞지 않아 법개정에 따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최동익 의원은 건강보험 수급자 자격을 상실하거나 정지된 이후에도 급여 혜택을 받거나 타인의 건강보험증을 대여·무단 도용하는 등의 부정수급자를 막아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는 것이 입법발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개정안에 요양기관이 건강보험증 또는 신분증명서를 제출한 수급자의 본인 여부를 확인토록 의무화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건강보험 부정수급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유형은 보험자격 상실 후 수급과 보험자격 정지 중 수급이었다. 이러한 유형이 전체 부정수급의 90% 가까이 차지했고, 이로 인한 재정 누수가 상당했다.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부정수급으로 지급된 급여비는 총 112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자격상실 후, 자격정지 중 부정·부당수급으로 지급된 급여비가 104억여원에 달했다. 건강보험증 대여·무단도용으로 인한 부정수급에 지급된 급여비는 8억원이 조금 넘었다.     

최 의원이 건보법 개정을 통해 건강보험 부정수급으로 인한 재정 누수를 막고자 한다면 건강보험증 본인확인을 의무화해선 효과가 없다. 본인확인 의무화는 건강보험증 대여·무단도용을 막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자격상실 후, 또는 자격정지 중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는 것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건강보험 수진자 자격확인과 건강보험증 본인확인을 동일 사안으로 착각한 게 아닌가 하는 짐작이 간다. 

지난 5월부터 건강보험증을 대여·무단도용하는 등 부정사용하다 적발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란 형사처벌까지 가하는 개정 건보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건강보험증 부정사용자에게 과태료만 부과하던 것에서 처벌 강도를 엄청나게 높인 것이다. 이 법규정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건강보험증 부정사용을 막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의료기관에 건강보험증 본인확인 의무를 지우는 것은 좀 더 심사숙고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덧붙이자면, 국회에서 건강보험 부정수급을 방지하는 것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나 경제적 사정으로 건강보험 자격이 정지된 수급자 등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방안도 고민해 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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