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혁, 봉달희, 안중근, 최강국, 이은성, 최인혁…'. 그동안 방송된 의학 드라마에 등장한 주인공들이다. 주인공은 대부분 외과 전문의다. '독수리의 눈, 사자의 심장' 같은 외과의사에 대한 환상이 작용한 탓이다. 영상매체의 특성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 의학 드라마의 꽃으로 불리는 수술장면을 보여주기에 외과만큼 적합한 과도 없다. 사실적인 수술장면은 의학 드라마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오는 10월쯤 한 공중파 방송에서 새로운 의학 드라마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알려진 제목은 ‘메디컬 탑팀’이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들이 팀을 이뤄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그린 의학 드라마로 소개돼 있다. 얼핏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의 의학 드라마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모티브로 삼은 게 아닐까 싶다. 

메디컬 탑팀이란 드라마의 주인공은 남자 외과의사다. 대략 드라마 소개를 보니 주인공은 ’정의로운 외과의사로서 거침없는 실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또다른 주요 인물로는 '강인한 카리스마와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흉부외과 전문의와 '꿈과 패기로 가득한' 흉부외과 전문의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는 '독수리의 눈, 사자의 심장, 그리고 여자의 손'을 지닌 완벽한 외과의사가 등장하는 셈이다. 성급한 짐작이지만 이 드라마의 이야기 얼개가 대충 감이 온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 캐릭터는 너무 익숙하다. 멜로드라마 속 여주인공에게 닥치는 진부한 ‘불치병 클리셰(Cliche)’처럼. 오직 환자만을 생각하는 의사. 병원의 규정이나 관련 법규정, 때로는 동료의사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캐릭터. 당연히(?) 병원 경영진도, 동료 의사들도 주인공을 마땅찮아 하고 시기할 것이다. 주인공에 대적하는 동료의사가 등장해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야기할 것이 분명하다. 

때로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고 막장 의사 캐릭터도 등장시킨다. 자신의 의료과오를 숨기기 위해 진료기록을 조작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행위를 제공하지 않는다. 결혼 상대방에게 과다한 혼수를 요구하거나 때론 불륜에 빠져 있다. 시청자들은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의사를 딱 두 부류로 인식한다.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거나 혹은 비윤리적이거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학 드라마 속 주인공이나 주변인물은 비현실적이다. 단언컨대 그런 단편적인 인물은 없다. 의사가 아닌 다른 직종에서도 존재하기 힘들다. 사실 직장 내에 의학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캐릭터가 있다면 피곤하다. 정해진 업무 프로세스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주인공의 손길이 닿으면 이상하게 비비 꼬인다. 그로 인해 주변 인물들은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 때문에 주위 동료가 나쁜 캐릭터나 무능한 인물로 평가절하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도나 환경이 잘못 됐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모든 문제를 개인의 의지로 극복한다.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숱한 의학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한다. 주인공 한 사람이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의료환경이 아니라고. 제도가, 정책이, 시스템이 따라줘야 한다. 문제는 제도다. 잘못된 제도가 ‘나쁜 의사’를 양산한다. 백혈병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행위를 제공하기 위해 허가된 범위를 벗어나 의약품을 사용했지만 제도는 의사에게 불법의 굴레를 씌운다. 반대로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따라 처방을 하면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불법의 굴레가 씌어지진 않는다. 법에서 정해진 대로 노인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받았지만 진료비 바가지를 씌었다고 욕을 먹는다. 규정이 잘못됐다고 설명해도 환자에겐 만날 수도 없는 정부보다 당장 눈앞의 의사가 원망스럽다. 이런 현실에 아랑곳없이 드라마 속  의사는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극복한다. ‘너무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는 의사’가 의학 드라마에 그만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들의 심리는 여기서 비롯된다. 

비대해진 심장을 잘라 작게 만드는 바티스타 수술. '성공률 100%'를 자랑하던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에 드리운 음습한 그림자는 다름 아닌 의료제도의 허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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