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센터장)

최근 보건복지부가 2013년도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기관 공모결과를 발표했다. 모두 4곳이 선정됐다. 울산대병원(울산), 을지대병원(대전), 전남대병원(광주), 그리고 아주대병원(경기 남부권) 등이다. 선정된 4곳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은 병원은 아주대병원이다. 이 병원은 작년에도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기관에 공모했으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아주대병원은 지난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쥬얼리호 선원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이국종 교수가 소속된 곳이다. 이 교수의 숱한 문제 제기를 통해 국가 차원의 중증외상센터 설립 지원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당연히 병원 안팎에서는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길병원에 밀려 탈락했다. 이 교수 본인의 실망감은 누구보다 컸다. 당시 이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할 말이 없다. 지쳤다”는 말로 심정을 대신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늦은 밤, 이 교수와 전화통화를 통해 권역외상센터 선정 결과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아주대병원이 두번의 도전 끝에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기관에 선정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난해 공모에서 탈락했을 때는 많이 힘들었다. 그것 때문에 팀원들도 많이 떠났다. 만일 올해도 선정되지 않았다면 더 이상 외상센터를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아마 정리에 들어갔을 것 같다. 다행히 올해는 선정됐다. 그러나 의무와 책임이 많이 따르기 때문에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지금은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뚫고 나갈 것이다” <본지 관련 기사 : 아주대병원 ‘골든타임’ 악몽 오버랩…이국종 교수 “지쳤다…” >

- 아주대병원이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인가.

“복지부가 마지막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난해 아주대병원이 권역외상센터로 지정을 받지 못한 이유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 솔직히 일년 만에 얼마나 많이 나아졌겠는가. 그런데도 복지부가 아주대병원을 권역외상센터로 지정한 것은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권역외상센터에 선정된 의료기관은 앞으로 몇 년간 좋은 실적을 보이겠지만 오류도 범할 것이다. 그런 경험과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우리나라 국가 안전망에 인프라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부담도 있지만 이런 노력에 동참할 수 있게 돼 개인적으로 기쁘다”

- 이번 공모에서 아주대병원이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복지부에서 신경을 많이 써줬다. 아주대병원은 지난해 세부 평가항목조차 모른 채 공모에 참여했다가 탈락했다. 그러나 올해는 복지부에서 권역외상센터 공모에 지원하려는 의료기관에 가이드라인과 마찬가지인 ‘임무(Mission)’와 ‘성과평가지표’ 등을 미리 알려줬다. 복지부가 문제지를 줬으니 모범답안을 작성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을 받고서 지원을 포기한 의료기관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 경기도에서도 권역외상센터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복지부가 지원해주는 예산만으로 경기남부권의 중증외상환자들을 커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도 차원에서도 의료예산을 투입해 권역외상센터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복지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권역외상센터는 중환자실 20병상을 갖춰야 한다. 아주대병원은 복지부와 도의 지원금을 통해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 규모를 기준 병상의 두배인 40병상으로 갖출 계획이다”

- 권역외상센터에 선정된 기관들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점이라면.

“일단 국제적 표준에 근접한 외상센터를 최대한 빨리 만들어 복지부가 대한민국에는 이런 외상센터가 있다고 표본으로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진료실적과 환자처리능력을 갖춰야 한다. 권역외상센터가 방향을 잡고 가고 있는 단계다. 권역외상센터는 지난해 5개가 선정됐고 올해 4개까지 총 9개가 선정됐다. 선정된 기관들은 가이드라인과 제안서에 맞게 최대한 조속하게 중환자실을 열고 중증외상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 헤매다 생명을 잃는 일이 없게끔 진료해야 한다.”

- 국내 중증외상환자 이송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일선 소방대원들이 중증외상환자를 대학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아는 병원으로 데려간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잘 못 알고 있다. 일부 그런 측면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방대원들은 중증외상환자를 현장에서 분류하기 위한 환자분류표를 가지고 다닌다. ‘Field Triage Decision Scheme’이라는 것인데 미국외과학회의 외상위원회에서 만들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채택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표로 조금만 교육하면 어느 환자가 중증외상센터로 가야 하는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중증외상센터가 확보돼 있지 않아 우왕좌왕 했던 것이다. 권역외상센터들이 이런 점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중증외상환자 이송과 관련된 인프라 형성은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 의료진과 현장구급대원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의사가 현장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헬기이송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닥터헬리는 일본 모델을 가져온 것이고 일본은 런던의 HEMS(Helicopter Emergency Medical Service)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독자적인 것만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해외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을 때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중증외상시스템만큼은 이미 체계를 갖춘 선진국의 시스템을 현장에 적용할 때라고 생각한다.”

 

▲ <사진 출처 : 아주대병원 홈페이지>

- 아주대병원은 권역외상센터 선정 이전부터 중증외상특성화센터를 운영해 왔다. 자부심도 상당할 것 같다.

“팀원들의 자부심이 상당하다. 복지부의 닥터헬리 사업을 지원받지 않으면서도 헬기 이송체계를 구축해 왔다. 외상치료 쪽은 외과의사들이 일반적으로 2년을 못 채우고 전공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는 외상쪽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 석해균 선장 사건 이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조금은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나는 말단 엔지니어나 마찬가지다. 외상 쪽 일을 10년간 했지만 석 선장 사건 이전에는 외상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석 선장을 치료하게된 것을 계기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됐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는 것을 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일을 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다. 무엇보다 나는 단지 지방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일 뿐인데 언론에서 너무 잘 봐줬다. 이제는 말보다 환자를 많이 보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고,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