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쿄와하코기린, 9월부터 공급 중단키로…"작년 약가인하 후 더는 수익성 없어"
안과서 라섹수술 등에 오프라벨 사용… "각막혼탁 예방 효과"

이르면 오는 9월 이후부터 안과에서 라섹수술시 근시퇴행이나 각막혼탁 등의 부작용 예방목적으로 '마이토마이신'을 더는 사용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이 제품을 독점 공급해오던 제약사가 공급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24일 한국쿄와하코기린에 따르면 항암제인 ‘마이토마이신(제품명 미토마이신-씨 교와주 10mg)’이 오는 9월까지만 국내에 공급된다.

마이토마이신은 세포효소계 및 핵산대사를 저해함으로써 세포핵의 분열을 억제해 악성종양세포의 증식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어 만성림프성백혈병, 만성골수성백혈병, 위암, 장암, 직장암, 폐암, 췌장암, 간암, 방광종양 등에 사용되는 항암제로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이 제품의 중단으로 직격탄을 맞게 된 곳은 암 환자 치료 쪽이 아니라 녹내장과 라섹수술을 하는 안과 쪽이다.

그동안 안과에서는 녹내장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고 라섹수술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마이토마이신을 항암제로 허가된 용도 이외인 ‘오프라벨(Off-Label)’로 사용해왔다.

마이토마이신의 공급이 중단될 경우 항암제 분야에서는 ‘아드리안마이신’이라는 대체 의약품이 있지만 녹내장과 라섹수술의 경우 대체 의약품이 없다.

이 의약품을 국내 독점 공급해오던 한국쿄와하코기린이 공급 중단을 선언하게 된 배경에는 약가인하가 있다.

지난해 실시된 일괄약가인하에 따라 마이토마이신은 기존 2만 4,000원에서 1만 5,000원으로 약 40% 가까이 약가가 떨어졌다.

한국쿄와하코기린 관계자는 “마이토마이신의 국내 약가가 원가보다 낮게 책정되면서 더는 이미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돼 버렸다”고 토로했다.

이런 이유로 쿄와하코기린 본사는 마이토마이신이 한국에서 시장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쿄와하코기린 관계자는 “마이토마이신은 그동안 매출이 늘어나는 품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산공장 증설을 안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최근 전세계적으로 마이토마이신의 수요량이 급증했다”며 “이런 이유로 공급량 조절이 필요했는데 한국의 경우 약가가 낮아 손해보면서 공급을 해왔기 때문에 공급 중단 1순위에 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쿄와하코기린에 따르면 현재 마이토마이신의 국내 재고물량은 바닥을 드러낸 상태며 오는 9월 마지막 수입분을 출하할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에도 재고가 거의 없고 도매상에 약간의 물량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현재 안과쪽이 공급부족 상태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음달에 마지막 수입분 2,500병을 들여와 9월에 출하할 예정”이라며 “그러나 그 이후가 더욱 문제”라고 말했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안과 개원가, 마이토마이신 사재기까지 등장독성 우려해 사용하지 않는 안과도 있어

마이토마이신 공급 중단 조치로 안과 쪽은 비상이 걸렸다.

현재 대한안과학회와 대한녹내장학회는 한국쿄와하코기린에 마이토마이신 추가공급 협조 요청을 한 상태다.

그러나 마이토마이신을 녹내장과 라섹 수술에 사용하는 것은 적응증 외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식 수입이 쉽지않을 것이라는 게 한국쿄와하코기린의 설명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적응증 외 용도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토마이신을 희귀의약품으로 등재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희귀의약품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적응증 내에 들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역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약가조정도 고려되고 있는 것 같지만 약가를 인상한다고 하더라도 본사의 공급량 조절 방침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토마이신 공급 중단 방침이 알려지자 안과는 개원가를 중심으로 마이토마이신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다.

경기도 A안과의원 L원장은 “어렵게 마이토마이신 30 바이알을 구했는데 확보하지 못한 안과도 많다”며 “보험으로 정해진 약값이 선진국의 40% 수준이라 수지가 맞지 않아 수입제약사가 공급을 중단키로 했다. 이 약이 없으면 관련 수술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제약사의 판매마진을 감안하지 않은 약가인하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B안과의원 K원장은 “정부가 판매 마진을 감안하지 않은 채 약가를 책정해 제약사가 갑자기 공급을 중단하자 뒤늦게 난리가 난 것이다”며 “사태를 뒤늦게 파악한 정부가 이제서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토마이신 확보에 성공한 안과의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뒤늦게 공급중단 소식을 접한 일부 안과의원은 사재기에 밀려 마이토마이신을 확보하지 못하고 한국희귀의약품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강남의 모 안과의원 원장 B씨는 마이토마이신을 구하지 못해 희귀의약품센터 게시판에 “약재를 구하기 어렵다. 가능한 많은 양을 구매하고 싶다”고 문의했다.

이에 희귀의약품센터로부터 “한국쿄와하코기린과 녹내장 학회가 일본으로부터 도입방법을 협의중”이라며 “센터에서 공급할 수 있게 되면 연락하겠다”고 답변을 받았다.

안과의사회도 마이토마이신 공급중단에 따른 안과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안과의사회 김대근 회장은 “강남 등 일부 지역 의원들은 이미 마이토마이신을  확보해놓은 상태지만 뒤늦게 공급 중단을 알게 된 의료기관은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9월에 마지막 물량이 공급되면 사재기하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마이토마이신의 공급 중단으로 환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했다.

김 회장은 “가장 큰 피해는 녹내장보다 라섹수술 환자”라며 “마이토마이신은 라섹수술에 따른 근시퇴행과 각막혼탁을 막아주는데 약을 못쓰게 되면 환자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마이토마이신이 항암제 외 용도로 오프라벨 처방되고 있지만 안과수술에 효과가 입증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회장은 “마이토마이신을 라섹수술과 녹내장 수술에 사용했을 때 효과적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학술지 등을 통해 입증됐다”며 “오프라벨로 사용하고 있지만 비윤리적인 약물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식약처는 대처방법을 논의 중이라며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식약처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한국쿄와하코기린의 공급 중단 계획에 따른 대처방법을 논의하고 있다”며 “지금은 대처방안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한편 라섹수술 등에 마이토마이신을 사용하는 것에 우려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한 안과 전문의는 "라섹 수술을 하면서 각막 표면을 좀 더 많이 깍으려 하다보니 마이토마이신을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마이토마이신의 독성을 우려해 라섹수술시 이를 사용하지 않는 안과도 있다"고 말했다.

또 라섹수술 중 마이토마이신의 사용하면서 지나치게 고농도를 사용해 되레 각막 혼탁의 부작용이 발생한 증례보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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