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 대의원회, 시범사업 협의 TF 구성…'시범사업 반대' 내걸고 당선된 현 집행부와 대립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치료용 첩약 급여화 한시적 시범사업(이하, 첩약급여 시범사업)’을 두고 한의계의 내부 갈등이 또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최근 대한한의사협회 대의원회가 한약조제약사와 한약사를 포함한 첩약급여 시범사업 참여를 결정하자 한의협 집행부가 이를 결정한 임시대의원총회 자체가 원천 무효라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한의협 대의원회는 지난 22일 협회 1층 로비에서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협의를 위한 TFT’ 발대식을 가졌다.

이날 발대식에서 TFT 임장신 위원장(중앙경희한의원 원장)은 담화문을 통해 “연간 4,000억원, 3년간 1조2,000억원 규모의 첩약건강보험 시범사업은 한의계에 새로운 기회”라며 “한의사가 국가 필수의료시장에 진입하게 되는 만큼 실손보험 시장에 참여할 가능성도 높아질뿐더러 전문 의료인으로서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TFT는 시범사업 추진에 있어 ▲첩약 의약분업 원천적 배제 ▲최종 협상안에 대한 전 회원 의견수렴 절차 진행 ▲한의계에 최대한 이익이 될 수 있는 합의안 관철 ▲한약조제약사 및 한약사 임의진단 배제를 위한 실질적 대안 관철 ▲관행수가에 근접한 수가와 포괄수가방식 관철 등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임 위원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전 회원들의 절박한 마음과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한의계의 모든 역량을 모아 최고의 협상안을 만들겠다”며 “다음 주부터 지부 공청회를 시작으로 복지부와 실질적인 논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TFT는 다음 달 말까지 ▲시범사업 모형 한의계 초안 개발 ▲협상팀 구성 및 협의안 확정 등을 진행하고 오는 10월 말까지 첩약급여 시범사업 시행준비를 완료할 계획이다.

첩약급여 시범사업은 지난해 10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한 차례 논의된 바 있다.

당시 건정심에서는 보장성 확대를 목적으로 건보재정 2,000억원을 투입해 올해 10월부터 3년 동안 노인, 여성 및 아동 등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질환이나 수족냉증 등 대표상병에 대해 한시적으로 보험급여를 적용토록 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한약조제약사 및 한약사까지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구상을 제시하자 한의계 내부적으로 시범사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약 4,000여명의 한의사들이 첩약 급여화 전면 거부를 요구하며 회관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250여명의 대의원들은 2차 임시총회를 열어 김정곤 전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의 탄핵안을 놓고 투표까지 진행했다.   

▲ 지난해 11월 일부 한의사들이 첩약급여 시범사업 추진에 반발하며 한의협 회관에서 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런데 첩약급여 시범사업을 맹렬히 반대했던 한의사들이 돌연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TFT는 당시 첩약급여 시범사업 추진을 놓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반발이 컸다고 설명한다.

TFT 임장신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김정곤 전 회장의 횡령 의혹 및 40대 집행부 탄핵 안건이 맞물리면서 첩약급여 시범사업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부족했다”며 “첩약급여 시범사업 논의가 중단된 이후 이에 관심을 갖고 참여를 원하는 회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TFT를 구성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위원장은 “지부 회의를 통해 회원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결과, 많은 회원들이 첩약급여 시범사업을 긍정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방향으로 돌아섰다”며 “회원들의 마음이 바뀌면 회장단을 비롯한 집행부의 정책 추진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협 집행부 "TFT 구성 절차적 문제 있어"한의협 집행부는 TFT 구성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며 첩약급여 시범사업 참여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의협 김태호 홍보이사는 “한의협 집행부는 한약조제약사와 한약사가 포함된 첩약급여 시범사업은 반대”라며 “현 집행부는 첩약급여 시범사업 반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55%가 넘는 회원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지지해준 회원들의 표심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TFT 구성과 시범사업 참여를 의결한 임시총회의 절차적 문제점도 지적했다.

이번에 구성된 TFT는 집행부의 인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독단적으로 구성됐으며, 시범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체 회원의 의견 수렴과 임시총회의 유효성 검증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집행부의 입장이다.

김 이사는 “지난해 상당수의 회원들은 첩약급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맹렬히 반대했다”며 “대의원회가 회원들의 총의를 모으는 과정 없이 시범사업 참여 결정을 내린 것은 절차적으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한 대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의원 자격을 상실한 상태”라며 “협회 정관에 따르면 대의원총회에서 TFT를 구성해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 의견 조율 없이 외부와의 논의를 먼저 하는 것은 이차적 문제를 발생시킬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복지부는 첩약급여 시범사업이 당장 논의되기에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한의약정책과 박요균 주무관은 “내부적으로 첩약급여 시범사업 논의는 사실당 답보 상태”라며 “언제 다시 논의가 시작될지 불확실할뿐더러 당장 논의가 시행될 가능성도 없다”고 일축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