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또 하나의 공공병원, 카프병원 되살리기

지난 5월 말 남성 병동이 문을 닫는 것으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KARF, 이하 카프병원)가 사실상 폐원했다. 2010년 후반기부터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운영비 지원을 중단한 것이 끝내 병원 폐쇄로 결말이 난 것이다.

병원이 출범한 이후 폐원에 이르게 된 경과는 이미 보도된 대로다(라포르시안 관련 기사 http://goo.gl/ZuB3b). 당장은 운영을 책임진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주역 노릇을 한 ‘주범’이다. 술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매기는 것을 피할 양으로 시작했다가 당장의 일을 모면한 이후에는 발을 뺀 것이다. 

사실 기업의 이런 행태는 친숙하다. 공분의 대상이 될 성 싶으면 갑자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떠벌이기 시작한다. 크고 작고가 없이 어찌 그리 같을까. 기억도 새롭지만, 삼성이 그랬고 현대자동차가 그랬다. 그 바람에 한국에서 ‘공익사업’이나 ‘사회공헌’은 다르게 읽힌다. 최근의 에스케이나 씨제이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카프병원의 출발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하려고 하자,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자체적인 주류 소비자 사업을 하겠다면서 방패를 만든 것이다. 연구와 예방, 전문병원 설립, 사회복귀 시설 설립 등을 같이 약속했으니 꽤 그럴 듯했다.

그러나 15년 이상 시간이 가면서 주류 업계는 자신감(?)을 키운 듯하다. 한국 사회의 여론이란 냄비 끓듯 한다고 곧 잊히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술에 건강증진 부담금이 생길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17, 18대 국회에서도 부담금을 물리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여론의 반대 때문에 무산되었다. 그 때마다 서민의 애환을 모른 채 하는 주머니 털기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여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정치권과 정부, 주류 업계가 한 통속이 되어 몰고 간 것이다. 주류 업계가 자신감을 가지게도 생겼다.

주류 업계의 ‘활약’은 카프 병원이 없어지게 만든 한 가지 이유일 뿐이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장민희 연구원이 지적한 대로(관련 기사 http://tinyurl.com/jw4f9v2), 모든 국면에 골고루 그리고 ‘구조적’으로 이윤과 시장 논리가 작동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선, 주류산업협회가 병원을 닫는 이유로 내세운 것 중에 ‘수익성 저하’가 있다. 스스로 공익과 사회공헌을 내세우고도 까맣게 잊은 꼴이지만, 알코올 중독 치료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수익성을 내세울 만큼 이들은 떳떳하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보았듯, 공공병원조차 수익과 이윤의 논리는 신성불가침이다. 물론 경영의 효율성이나 성과, 국민의 혈세라는 말로 겉을 꾸민다. 그러나 공공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는 반의 반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당연히 투자도 안 한다).

이윤과 시장 논리는 주류 산업을 보는 눈도 다르게 만든다. 보기에 따라서는 술 산업도 국민소득과 일자리의 원천이다. 담배와 무기 산업과 다를 바 없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의 믿음 체계는 이런 종류의 가치 판단조차 무디게 한다.

주류 산업의 경제적 비중은 크다. 하이트진로 한 회사의 2012년 순이익이 1천 3백억원을 넘을 정도다. 이들 기업은 이미 신성화된 지위를 가진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소득을 만들어내며 일자리를 준다. 그 바람에 이들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는 다들 둔감하다. 알코올 의존이라는 부정적 가치와 주류 산업을 연결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차단된다(주류산업협회가 카프병원에서 손을 떼려는 중요한 이유가 이것일 수도 있다). 

한편, 시장 논리는 알코올 전문병원을 둘러싼 논란에도 반영되어 있다. 카프병원이 문을 닫는 또 다른 핑계는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다른 민간 병원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몇 개나 있는지, 시설이 모자라는지 남는지는 역기서 따지지 않는다. 수많은 민간기관이 있으니 마땅히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 

아마도 보건복지부, 그리고 간접적으로 이 일에 개입하고 있을 기획재정부도 시장에 동의할 것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라고 무엇이 다를까. 많은 민간 병원이 있고 치료 시설이 있는데, 시장 기전이 작동한다고 믿을 게 틀림없다. 정부 실패, 경쟁과 인센티브, 대체재 같은 경제학적 용어가 좋은 설명틀이 될 터.

더 근본적으로는 알코올 중독을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압도적 경향성도 무관하지 않다. “술을 마시는 것도,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것도, 모두 개인의 책임이고 선택이다.” “사회와 공공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만 보면 술 회사도 무슨 죄가 있으랴. 선택은 모두 개인이 한 것이거늘. 대처 총리의 말대로 술을 마시게 하는 또는 술을 마셔야 하는 “사회 따위는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

일이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제대로 된 국가 알코올 정책을 수립할 것. 크게 보면 카프병원은 알코올 중독 대책의 큰 틀 안에 있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은 더 큰 국가 알코올 정책의 틀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그 필요성은 수도 없이 제기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알코올 문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국가 정책이 얼마나 시급한지 분명하다. 아직 그런 것도 제대로 없나 싶지만,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알코올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국가 정책은 없다(!).

알코올 정책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에다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것을 보태야 한다. 맨날 캠페인에 교육을 이야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격 정책을 포함하여 술 덜 먹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하다. 예방과 치료, 재활의 기본 방침도 당연히 포함한다.

둘째는 술에 건강증진 부담금을 부과하는 일. 술과 담배 할 것 없이 건강증진 부담금은 시비가 많고 토론거리도 많다. 담배의 예를 보건대, 꼭 잘 운영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부담금을 부과한다고 모든 일이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알코올 문제를 줄이는 데에는 사람보다 상품 그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다시 말해, 단속이니 계몽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규제해야 한다. 술 가격 정책과 건강증진 부담금이 필요한 일차적 이유이다. 

셋째, 알코올 의존 환자를 치료하는 공공병원을 되살려야 한다. 카프병원은 이미 운영이 중단되었고, 주류산업협회는 더 이상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카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다시 살려야 한다. 

알코올 의존환자들 중 음주 문제를 상담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1.9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알코올 중독 전문병원은 전국에 여섯  곳뿐인데다, 그나마 모두 민간이다. 환자 대부분이 전문적 치료와 재활서비스를 받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공공병원이 필요한 첫째 이유는 상당수 환자가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이다. 알코올 전문병원의 한 달 치료비가 100만원 내외에 이른다. 저소득층이 이 수준의 치료비를 감당하기는 매우 어렵다. 공공의료가 필요한 근거로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카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많다. 구체적인 방방은 보건복지부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만 가지고는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힘세고 시장을 좋아하는 경제 부처가 어떤 형식이든 강하게 반대할 게 뻔하다(국가 예산을 쓰지 않는 일도 – 심지어 주류산업협회도 - 기획재정부의 갖가지 ‘통제’를 받는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공병원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는 말을 믿고 싶다. 그리고 적자가 난다고 그 일을 소홀하게 할 수 없다는 말도 백 퍼센트 동의한다.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은 곧 공공병원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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