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복(대한외상학회장, 국립중앙의료원 비뇨기과 과장)

지난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태와 이듬해 1월 석해균 선장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중증외상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전국 어디서나 1시간 이내에 중증외상환자의 진료가 가능토록 권역외상센터를 5대 대권역, 17개 권역으로 구분 배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복지부가 중증외상치료체계의 하드웨어를 담당하고 있다면 대한외상학회는 외상 전문의 양성 및 치료시스템 구축 등 소프트웨어를 맡고 있다. 지난 6월 취임한 외상학회 이종복 신임 회장(국립중앙의료원 비뇨기과 과장)을 만나 국내 외상치료체계의 현 주소와 외상학회의 역할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비뇨기과 전문의로서 외상학회장을 맡고 있다는 게 의외다.

“외과나 흉부외과 의사가 아닌 비뇨기과 의사가 외상학회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비뇨기과 전공의를 마치고 지난 1993년부터 길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교통사고 환자가 많았다. 수없이 많은 외상환자를 보면서 생명을 살리는 것에 보람을 느끼게 됐다. 그런데 예전에는 외상환자가 들어오면 당직 전문의나 전공의가 수술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외상환자에게 죄짓는 기분이 들었고 조금 더 발전적이고 전문적인 수술을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특히 외상환자를 치료하다보니 좀 더 진일보한 의학적 지식을 갖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 미국에서 외상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유명한 의사에게 메일 등을 통해 문의를 하다가 직접 배우고 싶다는 욕심에 한달간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비뇨기과 전문의이기 때문에 외상치료에 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지난 1995년부터 외상학회에 참여하게 됐다.”

- 국내에서 외상치료체계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불과 1~2년 밖에 되지 않았다. 국내 외상치료체계의 현 주소는.

“솔직히 걸음마 단계다. 연평도 사건이나 석해균 선장 사건 등이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면서 외상치료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앞서 2010년도부터 외상학회는 대한의학회의 승인을 받아 외상외과 세부전문의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외과에서 맡아야 하긴 했으나 인력부족 등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외상학회가 나서게 됐다. 이처럼 외상학회가 외상치료시스템을 구축된 상태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다보니 복지부에서 준비가 돼 있던 외상학회와 함께 외상치료체계 구축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의 적극적 외상치료체계 지원 정책에 힘 입어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중요한 변혁의 시기다. 그러나 미국의 외상치료시스템과 비교할 때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많다.”

- 연평도 포격사태처럼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외상치료체계 확립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정전상태다. 만일 전쟁이 일어날 경우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이 다치고 사망할 것이다. 그렇게 다친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올 때 이들을 제대로 치료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때 국민은 얼마나 불안해하고 혼란에 빠질 것인가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외상학회차원에서 군과 합동으로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조만간 의무사령관을 만나 만일의 사태에 직면했을 때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표준진료지침을 가지고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들기 위해 논의할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외상치료의 표준진료지침이 중요할 것 같은데.

“미국의 표준진료지침을 그대로 써도 되지만 한국형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표준진료지침을 숙지하고 몸에 익히는 훈련과정이다. 학회 차원에서 표준외상진료지침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상치료체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이송과 환자분류로 요약할 수 있다. 외상환자를 골든타임 내에 외상센터로 이송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누구부터 치료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 없으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외상환자가 들어오면 색깔별로 환자 분류부터 시작한다. 빨간색으로 분류된 환자는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이고, 노랑은 위급한 상황이라 집중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의미한다. 녹색은 치료가 필요하기는 하나 위급하지 않은 환자, 회색은 관찰만 해도 되는 환자이다. 미국의 시스템과 같이 환자분류체계를 정리하는 작업이 시급하고 임기 중 이를 추진해나갈 것이다.”

- 외상치료 전문인력 양성은 어떻게.

“복지부가 권역외상센터를 지정하고 지원하는 하드웨어적인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교육이나 진료지침 수립과 같은 소프트웨어적 역할은 할 수 없다. 대신 학회가 인력양성과 진료체계 향상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담당할 것이다. 복지부도 외상치료체계 구축은 건물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학회에 지원할테니 교육기능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력양성의 일환으로 학회는 국립중앙의료원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교육기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 최근 전공의 모집 등을 보면 외과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도 인력이 없으면 소용없지 않나.

“외상치료체계가 구축되면 24시간 근무체제로 들어갈 것이다. 이때 근무하는 의사에게는 사기진작 차원에서 임금을 더 줄 필요가 있고, 임금을 더 주기 위해서는 수가를 올려야 한다. 외상치료체계를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대우를 잘해줘야 한다. 젊었을 때는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근무강도를 낮추기 위한 인력 충원과 임금인상 등의 근무조건 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해 8월 권역외상센터 지정을 받았다. 전국 권역외상센터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지동 이전 문제로 아직 답보상태다.

“경인을 비롯해 전라, 경상, 강원, 충청 등 거점별 권역외상센터가 구축됐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서울의 외상치료를 담당해야 하는데 비어있는 상태다. 그러나 원지동 이전은 복지부와 서울시의 문제라 국립중앙의료원의 영역 밖의 일이다. 의료원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이전이 빨리 진행돼 서울에도 외상치료 서비스를 개시해야 하는데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다행히 외상팀은 구성돼 있기 때문에 조만간 소규모로 외상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비용과 장소 등 구체적 계획도 수립된 상태다.”

- 외상치료체계 확립을 위한 향후 계획은.

“학회의 역할은 유사시와 평상시로 구분해 나눌 수 있다. 유사시를 대비해 민․군 합동 외상치료체계를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군 의무사와 합동으로 외상치료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이런 일은 학회가 아닌 정부에서 할 일이지만 정부에 외상과 관련된 전문가가가 없다보니 이런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결국 학회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평상시 외상치료를 위해서는 적절한 이송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외상센터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보니 119나 구급차가 곧바로 외상센터로 오지 않고 돌아다니다 오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다보면 환자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돼 생명을 잃기도 한다. 따라서 중증외상환자를(Right patient) 제 시간에(in right time) 정확한 외상센터(to right place)로 이송하게 하는 ‘3R’이 자리잡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 소방청, 지역센터 소방대, 복지부 등과 함께 외상환자 이송체계 구축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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