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 대응방식,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경남도·복지부 대응과 대조적"

▲ NHS 실태조사 보고서 문제를 지적한 BBC 뉴스 홈페이지 화면 캡쳐

탄탄한 공공의료시스템을 바탕으로 무상의료체계를 고수해오던 영국이 NHS(National Health Service) 산하 공공병원의 질 낮은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인해 지난 5년 간 1만명 이상의 환자가 사망했다는 결과가 나와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16일 영국 NHS는 14개 파운데이션 트러스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의료의 질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파운데이션 트러스트는 영국 보건부로부터 높은 평가의 등급을 받은 병원들이다.

NHS가 이 병원들에 대한 질 평가에 나선 배경은 올해 2월 영국 스태포드병원(파운드 트러스트) 감사보고서 때문이다.

보고서는 스태포드병원은 경영진과 의료진의 직무유기 때문에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최대 1200명의 환자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스태포드병원 사태 이후 영국 정부는 NHS에 환자 사망률이 높은 병원 14곳의 실사를 요청했다.

14개 병원의 의료의 질 평가▲mortality(사망률) ▲patient experience(환자경험) ▲safety(안전) ▲workforce(인력) ▲clinical and operational effectiveness ▲leadership and governance 등 총 6가지 요소로 구분해 조사했다. 

조사 결과, 14개 병원의 환자 사망률이 높은 수치를 보였다. NHS 산하 모든 병원의 사망률이 지난 10년 간 30% 감소했다는 기존 보고서와 상반된 결과인 셈이다.

질 평가 작업을 총괄한 Bruce Keogh 교수(NHS 메디컬 디렉터)는 SHMI(summary hospital-level morality indicator)와 HSMR(hospital standard morality ratio) 두가지 지표를 적용해 초과 사망자 즉, 피할 수 있는 사망자를 추정한 결과 1만3,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무엇보다 14개 병원은 지역적으로 고립돼 있다 보니 간호사 등 인력 수급이 어렵고, 이에 따른 업무부하가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지적됐다.  

실제로 병원 인력 상황을 살펴보니 간호사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의 질병으로 인한 결근이 잦았고 이직률도 심각했다.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영국 현지에서는 NHS 기반의 무상의료 체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거나 이번 기회에 부분적으로 진료비를 유료화하거나 민간의료체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영국 NHS가 발표한 14 산하병원 질 평가를 진행하고 보고서 내용 중 병원인력 상황을 분석한 표(붉은색은 경고 표시).

"공공의료 문제에 있어서 영국과 한국 정부의 대응방식 달라"국내 의료 전문가들은 NHS의 공공병원 실태 보고서 내용을 접하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먼저 질 평가에 적용된 지표의 허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이었다.

인하대의대 예방의학교실 황승식 교수는 “기본적으로 HSMR이나 SHMI는 개별 병원이 영국 평균에 비해 높은 지 낮은 지를 평가할 수 있는 단순 지표”라며 “1만3000명이 초과 사망했다거나 전임 노동당 정부의 책임이라는 등의 발언은 정치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NHS가 작성한 보고서 초반부에도 HSMR이나 SHMI 지표로 실제 초과 사망자 수를 계량화하는 일은 임상적으로 무의미하고, 학문적으로 터무니없다고 명시해 놓았다.

영국 가디언지도 비슷한 점을 지적했다. 이 신문은 지난 16일자 보도를 통해 "조사팀 관계자는  HSMR이나 SHMI 지표가 복잡한 요인이 많은 초과 사망자(피할 수 있는 사망자)를 분석하는데 상당히 효과적이지 못한 도구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공공의료 질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개선하는 노력은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 노팅험 대학교 보건정책학 박사과정을 밟았던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김용수 책임연구원은 “우리는 민간병원이 대부분이라 질 평가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며 "영국처럼 병원 상황을 드러내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공공병원의 개선 방향을 찾기 위한 벤치마킹 사례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부산대의학전문대학원 윤태호 교수는 "이 보고서는 이미 알려진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며 "이러한 점에 비춰볼 때 한국에서 논란의 핵심에 있는 진주의료원에 대한 경남도와 보건복지부의 대응과 대별되는 좋은 사례"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들 14개 병원의 높은 사망률 원인이 ▲입원환자 대비 병원 인력 취약 ▲질 향상을 위한 병원의 조직적 노력 미흡 ▲NHS 개혁에 따른 병원 인수합병과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상당한 정도의 비용절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윤 교수는 "병원 의료진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조직적 수준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라며 "이는 상당히 영국스러운 접근이며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도출할 때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는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의료계에서는 국내 의료 현실과 동떨어진 영국의 공공의료 실태를 우리와 비교해 확대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이번 조사에서 피할 수 있는 사망자라는 정의가 분명치 않다. 더군다나 영국과 한국의 의료시설, 인적 구조 등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단순 비교해 의료제도가 잘못됐고 의료인의 과실이 많다는 분위기로 몰아가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다만 NHS의 관 주도 의료제도가 한계에 봉착한 것만은 사실"이라며 "이에 영국 정부가 P4P를 도입하고 질 평가를 통해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경쟁을 유도하는 등의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NHS 보고서는 영국 정부의 '공공의료 개혁안'(Health and Social Care Act)의 연장선 상에 있다. 

영국 정부는 2015년까지 보건의료예산 중 200억 파운드(약 36조원)을 감축하기 위해 한해 14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NHS 몸집을 줄여 예산 절감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김용수 책임연구원은 “영국은 공공병원에 대한 구조조정과 기능전환, 의료 현실에 맞게 민간재원의 병원을 늘려 보건의료 예산을 절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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