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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⑫] 일터의 약자들이 아프면 3~4일 쉴 수 있으려면오진호(노동건강연대 회원,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
[라포르시안]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15살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숨진 산재사망 사건을 돌이켜볼 때,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던진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은 노동환경 개선의 시작을 여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병원을 찾은 노동자에게 주로 하는 업무와 사용하는 물질을 의료인이 묻는다면 보다 적정한 진료를 할 수 있고, 다친 이후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진료실에서 환자의 직업력을 묻는 의료전문가의 질문은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정책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장의 의료전문가가 적합한 치료와 재활 및 예방을 위해 환자의 직업을 묻고, 직업이 건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격주로 연속기고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주>

“콜센터에서 일합니다. 매달 연차 신청을 하는데, 하루에 가능한 인원이 한 명이라 원하는 날에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제 원하는 날에 연차를 사용하려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겨야 겨우 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겨도, 회사가 요구하면 나와야하고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업무상 결근으로 처리해 패널티를 준다고 합니다.” (2020년 7월 제보)

직장인들이 겪는 갑질에 관한 제보를 받고 상담을 하는 민간 공익 단체 직장갑질119로 들어온 제보사례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과 이메일로 상담을 받는 직장갑질119에는 한 달에 대략 2,000건 정도의 상담이 들어온다. 이 중 휴가와 관련된 제보는 대략 6%(한 달 120건). ‘회사에서 휴가를 못 쓰게 한다’, ‘아파서 병가를 냈더니 해고되었다’, ‘보건휴가를 쓴다고 했더니 일주일치 일당을 깎겠다고 한다’ 등 천태만상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병원과 의료현장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고와 희생,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한마디 한마디를 지키기 위한 노력 등이 최악의 상황을 막는 최후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선의와 희생만으로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막아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긴급대책과 법제도 개선 등 시스템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여러 영역에서의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직장 방역 대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직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방역지침 첫 번째인 ‘아프면 3~4일 집에서 쉰다’가 무색하게 아파도 쉬지 못 하게 하는 직장 분위기는 코로나19 예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9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직장생활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회사에서 자유롭게 연차휴가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물었더니 직장인 열 명 중 4명이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일터의 약자일수록 연차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비정규직(50.0%)이 정규직(33.2%)에 비해 1.5배, 프리랜서/특수고용(53.3%)은 정규직에 비해 1.6배, 서비스직(48.5%)이 사무직(32.0%)에 비해 1.5배, 노동조합이 없는 직장인(45.2%)이 노동조합 조합원(19.6%)에 비해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비율이 2.3배 높았다.

연차휴가는 근로기준법에 보장되어 있는 직장인의 권리다. 사용자는 노동자가 연차휴가를 원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연차휴가를 사용하게 하여야 하며(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만일 사용자가 이를 위반한다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근로기준법 제110조). 법에 보장되어 있고 위반시 처벌조항까지 있지만, 일터의 약자에게는 아득히 멀리 있는 권리. 직장인들은 오늘도 연차휴가를 쓰기 위해 모욕을 감내한다.

“우리 회사는 연차를 자유롭게 쓰지 못합니다. 한 직원이 몸살감기로 연차를 냈는데, 사장이 다른 직원들 앞에서 “덩치도 있는 애가 뭐가 아프다고 안 나온대? 뚱뚱해도 감기에 걸릴 수 있나?”라며 흉을 봤습니다. 다음날 출근한 직원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 외에도 근무시간도 지켜지지 않았고,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을 주지 않았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도 심해 결국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2020년 8월 제보)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감염병 관리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증세가 나타나서 진단받기까지의 시간이 짧고, 만나는 사람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이를 사회 제도적으로 표현하면 아프면 쉬고 병원에 갈 수 있는가를 뜻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직장인들에게는 일반적으로 1년에 15개 내외의 연차유급휴가가 부여된다. 그러나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 위해서는 15개의 연차휴가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근로기준법에는 별도의 병가 규정이 없기에 직장인들은 아파도 참는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2.0%가 유급병가 제도가 없다고 답했는데, 비정규직(77.5%)이 정규직(51.7%)에 비해 1.5배, 프리랜서/특수고용(85.5%)는 정규직에 비해 1.7배, 서비스직(73.7%)이 사무직(55.0%)에 비해 1.3배 높았다. 5인 미만사업장(79.1%)이 300인 이상 사업장(41.0%)에 비해 1.9배, 월 150만원 미만 소득자(79.1%)가 월 500만원 이상 소득자(38.5%)에 비해 2.1배 높았다. “아프면 3~4일 집에서 쉰다”는 정부의 코로나 생활방역 행동수칙이 무급(월급 차감)일 경우 ‘집에서 쉰다’는 응답은 53.6%로 절반에 불과했다.

“휴가를 쓰기 너무 눈치 보여요. 어머니 수술을 받아 휴가를 써야한다고 하니 꼭 니가 가야하냐며 눈치를 엄청 주더라고요. 아버지 기일이라 고향에 가야 하는데도 휴가를 쓰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도 너무 심합니다. 반말, 폭언이 일상입니다.” (2020년 8월 제보)

휴식할 시간과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제도도 없고, 1년에 15개 남짓한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 쓰는 상황에서 직장인들에게 “생활 방역을 이행하라”는 것은 “소득감소, 해고 위험을 감내해라”와 같은 말이다. 노동조합이 있다거나, 고용이 안정적인 이들은 그나마 낫다. 노동조합이 없는 직장인들, 비정규직・프리랜서 등 일터의 약자들은 불안한 고용 형태 때문에 휴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급 병가제도나 상병수당 제도 도입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OECD 36개국 중 유급병가제도와 상병수당 제도 두 가지 모두 없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그나마 미국은 13개 주와 20여개 도시에서는 유급병가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코로나 방역은 1등인데, 정작 제도개선은 꼴등인 국가가 한국인 셈이다.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아무리 현장에서 노력하고, 고생한다 해도 정책과 제도가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면 공염불이다. 직장인들이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정부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유급으로 병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8개월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31.3%가 실직을 경험했고, 59.0%가 소득이 줄었다.(같은 설문조사) 이들에게 “몇 년 내로 상병수당을 도입할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 없다. ‘직장발 집단감염’이 내일 당장 벌어질지 모르는 시급한 상황. 일터의 약자들이 아프면 쉴 수 있게 하는 긴급대책이 절실하다.

노동건강연대는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옹호하고 이를 위한 활동을 하는 사회운동단체이다. 계약직, 파견, 외주하청,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조합을 조직하기조차 힘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활동을 펴고 있다.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을 받지 않고, 단체 활동을 지지하는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노동건강연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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