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
임신 24주까지 제한적 허용·낙태유도제 도입 근거 마련

[라포르시안]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1년 6개월여 만에 정부가 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앞서 헌재는 작년 4월 11일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임신한 여성의 승낙을 받아 낙태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1항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020년 12월 31일까지 일정기간 내에서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조항을 개정할 것을 주문했다.

헌재 주문에 따른 후속 조치로 정부는 7일 인공임신중절(낙태)과 관련한 '모자보건법'과 '형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그간 모자보건법과 형법 개정안 마련을 위해 법조계·의료계·여성계·종교계 등 각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법무부, 여가부 등 관계부처 협의를 진행했다. 

이번에 마련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헌재 결정 취지를 존중해 형법에서 확대된 인공임신중절 허용범위 안에서 여성건강 보호를 위한 ’안전한 인공임신중절‘ 제공환경과 원치 않는 임신 등 ’위기갈등상황 임신‘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여건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인공임신중절 허용기간·사유 차등 규정 ▲자연유산 유도약물 도입 근거 마련 ▲위기갈등상황의 임신에 대한 사회적 상담 지원 ▲ 세부적 시술 절차 마련 ▲원치 않는 임신 예방 등 지원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및 형법 적용 배제 조항 삭제 등이다. 

개정안은 우선 임신한 여성의 임신유지·출산여부에 관한 결정가능기간을 ‘임신 24주 이내’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임신 14주・24주로 구분해 허용요건을 차등 규정했다. 

헌재 결정 취지를 반영해 임신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 요건 없이 임신한 여성 본인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임신 15∼24주 이내에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사유 및 헌재 결정에서 명시한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가 가능하도록 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한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는 사유는 ▲임부나 배우자의 우생학적ㆍ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ㆍ준강간에 의한 임신 ▲근친관계 간 임신 ▲임부 건강 위험 등이다. 여기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추가했다. 

개정안은 또 낙태 시술 방법으로 수술만을 허용하는 현행 인공임신중절 정의 규정을 약물이나 수술 등 의학적 방법으로 구체화해 시술 방법 선택권을 확대했다. 

위기갈등상황 임신에 대한 사회적 상담을 지원하기 위해  '중앙 임신·출산 지원기관 설치 및 운영' 조항을 신설하고, 원치 않은 임신의 인지 등 임신·출산 관련 위기상황에 신속한 초기대응을 할 수 있도록 긴급전화 및 온라인 상담을 제공하도록 했다. 

중앙 임신·출산 지원기관의 업무를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또는 모자보건법 규정에 따른 인구보건복지협회에 위탁해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세부적안 낙태 시술 절차도 마련했다. 

개정안은 여성의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의학적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고 반복적인 인공임신중절 예방을 위해, 시술 방법, 후유증, 시술 전·후 준수사항, 피임방법, 계획 임신 등에 관해 시술 전 의사의 충분한 설명 의무를 두고, 자기 결정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임을 확인하는 서면동의 규정을 담았다. 의사가 인공임신중절 관련 의학적 설명을 하지 않거나 서면 본인 동의를 받지 않은 경우 3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심신장애의 경우 법정대리인 동의로 갈음할 수 있으며,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의 대신 상담 사실 확인서 등으로 시술할 수 있도록 제3자 동의 규정도 마련했다. 

만 16세 이상 미성년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받기를 거부하는 등 불가피한 경우 상담 사실 확인서만으로 시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만 16세 미만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 부재 또는 법정대리인에 의한 폭행·협박 등 학대로 동의를 받을 수 없는 경우 이를 입증할 공적 자료와 임신·출산 종합 상담 기관의 상담 사실 확인서 등으로 시술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인공임신중절 요청에 대해 의사의 개인적 신념에 따른 진료 거부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의사는 시술 요청을 거부하는 즉시 임신의 유지·종결 정보를 제공하는 임신·출산 상담 기관을 안내해야 한다.  

원치 않는 임신 예방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피임 교육 및 홍보, 임신·출산 등에 관한 정보제공 및 상담, 인공임신중절 관련 실태조사 및 연구, 국민의 생식 건강 증진 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 조항도 포함됐다. 

복지부는 이달 20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을 두고 국민 의견을 수렴한 후 개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2020년 4월 10일 국회의원회관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주년 기자회견 #응답하라0411'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2020년 4월 10일 국회의원회관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주년 기자회견 #응답하라0411'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편 여성계는 정부가 마련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새로운 ‘낙태죄’ 법안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여성단체와 진보적 보건의료단체 등으로 구성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는 7일 성명을 내고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보건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제약해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모낙폐는 "형법 270조의2를 신설해 낙태 허용 요건을 제시했다고는 하나 그에 앞서 처벌이 전제됨으로써 여성의 건강권과 평등권, 자기결정권은 온전한 헌법상의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하는 요건이 구성된다"며 " 정부의 입법예고안대로라면 여성의 권리는 국가 허락에 의한 ‘조건부’의 권리가 된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처벌을 끝내 유지하며 권리 자격을 심사하겠다는 정부의 태도에 강한 분노를 표한다"고 했다.

낙태 허용 주수의 구분도 법의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모낙폐는 "임신 주수에 따른 허용 시기 구분이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을 뿐더러 법의 명확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점을 계속해서 주장해왔다"며 "14주, 24주 등의 주수에 따른 제한 요건을 둔 것은 단지 처벌 조항을 유지하기 위한 억지 기준에 불과하다. 주수를 고려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방향은 ‘언제부터,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가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어떤 시기에, 무엇을 보장할 것이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임신 주수에 따른 허용 조항을 삭제하고 임신 기간에 따라 안전한 임신중지와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과 보건의료 인프라 마련 방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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