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서 극심한 혼란 초래...소청과 "고위험군 어린이·임산부 접종할 백신마저 공급부족 현상"

[라포르시안] 여야 정치권에서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인플루엔자(독감) 예방백신 무료접종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반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의료계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백신 수급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독감 무료접종 대상을 확대할 경우 백신 공급 부족으로 우선접종 대상인 고위험군이 제때 접종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9일 4차 추경으로 전 국민에 대한 독감 무료접종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독감 무료 예방접종을 전국민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런 주장이 잇따르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독감 무료접종 대상으로 확대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분위기이다. 

의료계에서는 정치권에서 제기된 '전국민 독감 무료접종' 주장이 의료현장과 공중보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지 않은 채 나온 '표(票)풀리즘'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17일 "국회는 여야가 지난 추경을 편성하면서 난데 없이 의료전문가 단체와 상의 없이 고위험군이 아닌 무료접종 대상자에 62~64세 어른들과 중고생을 대상으로 집어 넣었다"며 "거기에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는 전 지자체 주민을 상대로 독감백신 무료 접종을 하겠다고 했다. 이로 인해 의료현장에서는 극심한 혼란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독감 백신은 우선순위가 있다. 최우선 접종 대상자는 독감에 걸리면 합병증으로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있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어린이, 임산부, 암환자, 심장질환자, 뇌졸중환자, 천식환자, 당뇨병환자, 만성 콩팥병 환자 등"이라며 "독감백신은 공산품과 다르게 올해 같이 시장 수요가 폭증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뚝딱 백신을 더 만들어 낼 수가 있는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독감 무료접종 대상자는 생후 6개월∼중학교 1학년생, 65세 이상 노인, 임신부 등으로 한정돼 있었다. 정부는 올겨울 독감과 코로나19 동시 유행 가능성에 대비하는 취지로 무료접종 대상에 중고생과 62~64세 노인을 포함시켰다. 

이와 관련 임 회장은 "기재부는 의료현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독감백신 가격을 매우 낮게 잡아 예산 편성을 했고, 국회는 여야 없이 서로 경쟁적으로 표퓰리즘을 남발해 지난 추경에서 고위험군이 아닌 중고생과 62~64세 어른을 무료접종 대상에 포함시켰다"며 "그 결과 저가로 국가가 백신회사 생산 물량 대부분을 가져가는 상황을 초래했고, 독감백신 회사들은 정부사업에 참여할 수록 손해가 크게 발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무료접종 대상자 확대로 정부가 독감백신 생산량의 대부분을 가져가면서 고위험군으로 국가필수예방접종 대상자인 만 6개월~12세 무료접종을 위한 독감백신 물량확보와 가격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어린이 독감백신에 기재부가 배정한 예산이 적어 백신사는 이익이 적은 어린이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NIP)에 쓰일 백신을 일선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에 공급하는 대신 보다 이익을 많이 낼 수있는 일반인용 백신(non-NIP)에 집중공급했다"며 "이로 인해 어린이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의 60%를 담당하고 있는 일선 소청과 병의원에서 독감백신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무료접종 대상 확대시 추가로 필요한 독감백신을 확보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독감 유행 기간은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로, 백신 접종 후 항체형성에 2~4주 정도 기간이 필요해 적정 접종시기는 정 접종시기는 9월 말부터 11월 사이에 이뤄져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해 확보한 독감백신 공급 분량은 3,000만명분으로, 전국민 대상으로 접종을 확대할 경우 2,000만명 분량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독감백신을 추가로 생산하는데 4~5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부터 준비하더라도 내년 초에나 공급이 가능하다. 자칫 독감 유행 기간이 지나고 공급되면 엄청난 규모의 백신 재고만 쌓일 수도 있다. 

게다가 무료접종 대상자 확대로 의료기관과 보건소에 많은 접종자가 몰릴 경우 예방접종시 지켜야 할 예진 절차나 사후관찰 등이 부실하게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관련 기사: 노인 독감백신 접종 12일만에 400만명…과연 정상인가?>

임 회장은 "외국에서 백신을 수입하면 된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올해 COVID-19 사태로 자국에서 쓸 수있는 양도 부족할 상황"이라며 "무료접종 대상자를 확대할 때 고위험군인 아이들과 임산부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해서 의료현장 전문가에게 단 한번도 묻지않고 표퓰리즘을 남발한 결과 고위험군이라 접종을 받아야하는 아이들과 임산부들이 접종 자체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우려했다. 

한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7일 오전에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이 제안한 전국민 독감 백신 무료접종 주장이 "의학적으로든, 수치적으로든 논쟁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박 장관은 "수요를 감안해 (전국민의) 60%까지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하면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그 이상은)의학적으로 과도하게 비축한 사례이고, 정말 필요 없다는 것이 의료계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