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베네수엘라 이어 브라질도 의료개혁 추진…'맨발의 의사들'이 일궈낸 기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혁명가'. 체 게바라로부터 시작된 쿠바 의료개혁의 온기가 여전히 라틴아메리카를 덥히고 있다.

앞서 체 게바라에 의한 쿠바의 의료개혁을 시작으로 베네수엘라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대대적인 의료개혁에 착수한데 이어 이번에는 그 열기가 브라질로 옮겨갔다.

의사 출신인 체 게바라는 의료개혁을 통해 쿠바를 전 세계에서 1차 의료체계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로 만들었다.

1959년 혁명에 성공한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대대적인 의료시스템 개혁에 착수했다. 전국민 무상의료를 기치로 내걸고 민간병원과 제약회사를 국유화했다. 특히 ‘1차 가정의, 2차 지역진료소, 3차 종합병원’의 의료전달체계를 구축, 전국의 모든 지역에 의료시스템의 손길이 닿도록 했다. 이런 조치에 반발해 당시 쿠바에 있던 의사 6,000여명 중 절반 가까운 인력이 해외로 빠져 나갔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상교육을 통한 의사인력의 양성이다. '맨 발의 의사들', 혹은 ‘흰 가운을 입은 군대'로 불리는 쿠바 의사들은 자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 40여개 국가로 파견돼 가난한 이들을 상대로 헌신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쿠바가 1990년대 말 아바나에 설립한 ‘라틴아메리카의과대학(ELAM)’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무상 의학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05년 7월에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1기 졸업생 1,610명이 학위를 받았다.

2008년 당시 아바나에 위치한 라틴아메리카 의대와 쿠바의 4개 지역에 흩어져 있는 라틴아메리카 의학교에 등록한 쿠바인은 2만9000명에 달했고, 외국인 학생은 2만4,000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흰 가운을 입은 군대’로 불리며 전 세계 전쟁터나 난민촌, 또는 의료취약지를 찾아가 인술을 베푼다.

쿠바에서 시작된 의료개혁의 불길은 베네수엘라로 번졌다. 지난 3월 사망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Misione Barrio Adentro)’라 불리는 일차의료 프로그램이 바로 베네수엘라 의료개혁의 핵심이다.

스페인어인 ‘바리오 아덴트로’는 우리 말로 직역하면 ‘가난한 주민들이 사는 마을 안으로' 정도로 해석된다. 베네스엘라의 의료개혁 초기에는 쿠바 출신의 의사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000년 10월 쿠바와 베네수엘라간 맺은 포괄적 협력 협정을 기반으로 시작된 바리오 아덴트로에 따라 쿠바의 자원봉사자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베네수엘라에 대규모로 입국한다. 2003년 4월 50여명의 쿠바 출신 의사들이 바리오 아덴트로 진료소에 배치된 이후 6개월 만인 10월에는 그 수가 2,000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이 베네수엘라 전역의 바리오 아덴트로 진료소에 배치돼 가난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적극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최근 발간된 베네수엘라의 의료개혁 과정을 담아낸 '세상을 뒤집는 의사들'이란 책에 따르면 2004년에서 2010년 사이 바리오 아덴트로에서 활동한 쿠바 출신 의사는 1만 명에서 1만 4,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7,000여 곳에 달하는 바리오 아덴트로 진료소와 500곳이 넘는 진단 센터에서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쿠바 출신 의사들은 특히 2005년부터는 베네수엘라의 지역 통합 의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까지 진행하며 의사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브라질, 대대적 공공의사 양성 추진…칠레·멕시코 등은 의료시장주의 받아들여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이어 최근에는 브라질에서도 대대적인 의료개혁이 시작됐다. 브라질 정부는 지난 8일(현지 시각) 영국의 의료정책을 모델로 빈곤 지역의 의료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위해 1만명의 의사를 양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더 많은 의사들'(More Doctors)이란 개혁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브라질 보건부에 따르면 대학의 의학 교과과정을 개편해 오는 2015년부터 의대를 졸업하면 공중보건의사로 2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고용되는 의사들은 월 4,500달러 수준의 급여를 받게 된다. 브라질 정부는 병원 신·증축에도 3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초 브라질 정부는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을 위해 쿠바 출신 의사들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앞서 지난해 1월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쿠바를 방문해 '의사 수입'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판 아메리카보건기구의 협조를 얻어 쿠바 의사 6,000 명과 근로계약 체결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질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이 계획을 취소하고, 자국에서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 계획을 통해 브라질 정부는 인구 1,000명당 평균 1.8명에 불과한 의사 수를 확충하고, 의료진이 전무한 450여개 도시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 브라질과 달리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의 국가에서는 의료개혁의 방향을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추진해 대조를 이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10년 펴낸 '중남미 의료시스템 개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칠레는 민영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고, 아르헨티나는 노동사회보험 내의 경쟁을 도입하고 민간부분의 서비스 제공자로서 참여를 허용했다. 또 멕시코는 아르헨티나와 유사한 정책을 시도했다.

특히 이들 국가 모두 의료서비스의 지방분권화를 실시했다. 칠레의 경우 1979년부터 시정부로 1차 의료서비스를 이전했고, 멕시코는 1983년터 주정부와 협약을 맺어 다양한 의료서비스 기능을 주정부로 이양했다.

아르헨티나 역시 1980년대에 이미 의료서비스를 주정부로 이전했다. 하지만 의료서비스의 지방분권화는 세 국가 모두 의료의 지역불균형과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고서는 "이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민간부분의 확대가 민영의료보험의 도입(칠레)이건 의료시스템 내의 경쟁도입(아르헨티나․멕시코)이건 의료불평등의 심화와 연결되었다는 점"이라며 "특히 국가중심의 공영의료서비스 전통이 강했던 칠레에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민간부분 확장인 민영의료보험의 도입이 가져온 효과에 대한 분석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칠레의 의료민영화가 가져온 다양한 결과물 중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이라며 "즉 공영의료보험과 민영의료보험의 양립으로 민영의료보험으로부터 거부당한 ‘골치 아픈’ 환자들이 끊임없이 공공부문에 밀려드는 현상은 국민의 68%가 혜택을 보고 있는 공영의료보험 체제의 재정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칠레의 의료보험 민영화 사례가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의료인력' 양성 방안 검토한편 국내에서도 공중보건의사 인력이 지속적으로 줄면서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할 공공의료인력 양성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의사인력 적정수급 협의체' 회의를 통해 공공의료인력 양성방안으로 정원 외 입학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복지부가 제시한 공공의료인력 양성방안은 의대 정원 외 입학을 허용해 이들에 대해서는 전액 국비를 지원하고, 전문의 취득 후 일정기간 의료취약지에 근무하거나 특정 지역에서만 의사면허가 유효하도록 해 의료취약지와 공공의료기관 근무 기피를 해소하는 방식이다.

복지부는 지난 3월 대통령 업무보고에 '공공의료인력 양성방안'을 올 하반기까지 도출한다는 계획을 포함시켰다.앞서 공공의료인력 양성 방안으로 지역할당제, 공공의대 신설 등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역할당제란 의대생들이 졸업 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여러 혜택을 주는 방법을 통해 지역 단위 의사를 양성하는 제도다.

민단체에서는 서울시립대 등에 공공의대를 신설해 공공의사 인력을 정기적으로 배출하는 이른바 ‘국공립근무 의료인양성제도’를 제안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런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지금도 의사인력이 부족하지 않은 상태인데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의료취약지의 의료인력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국가가 지원해 의사인력을 양성하더라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근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지방의 의료시설 등 인프라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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