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연재 칼럼
[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⑦]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파도 '의무기록'이 없다(?)문상흠(노동건강연대 회원, 안산시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센터 공인노무사)
[라포르시안]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15살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숨진 산재사망 사건을 돌이켜볼 때,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던진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은 노동환경 개선의 시작을 여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병원을 찾은 노동자에게 주로 하는 업무와 사용하는 물질을 의료인이 묻는다면 보다 적정한 진료를 할 수 있고, 다친 이후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진료실에서 환자의 직업력을 묻는 의료전문가의 질문은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정책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장의 의료전문가가 적합한 치료와 재활 및 예방을 위해 환자의 직업을 묻고, 직업이 건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격주로 연속기고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주>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4일 이상 요양이 필요한 업무상 부상 혹은 질병 때문에 산업재해로 인정된 노동자는 109,242명이고, 그 중 사망자는 2,020명(사고 사망 855명, 질병 사망 1,165명)입니다. 산업재해로 하루 5.53명, 한 달에 166명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산업재해 발생 건수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는 많이 빠져 있습니다.

산재신청은 해고를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저는 공인노무사로 안산에서 노동자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상담은 임금체불, 징계, 산업재해 상담 순서로 많고, 산업재해 관련 상담은 산재가 되는지, 산재신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사가 산재를 안 해 준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자료가 필요한지, 불승인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질문은 다양합니다.

계약직, 파견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금 산재를 신청하면 해고당할 것 같은데 산재신청을 해도 되냐’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사업주 동의가 없어도 산재신청이 가능합니다. 지금 바로 신청하세요.’라는 답변을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시 저에게 묻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중에 산재를 신청해도 되나요?”라고 물으면 “3년 내에 신청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때 신청하면 회사는 회사에서 일하다 다친 적이 없다고 하거나 자료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답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합니다. 아니 아프지 못합니다.  아프다는 것, 산재신청을 한다는 것은 곧 해고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계약직 노동자는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더 이상 근로계약이 연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파견 노동자는 사용회사가 파견회사에 ‘저 사람 말고 다른 사람 보내라.’고 전화할 것이고, 그 파견 노동자는 다른 회사를 소개받을 때까지 쉬어야 합니다. 일용직 노동자는 아프다는 것은 곧 실업입니다. 2019년 산업재해 노동자 수 109,242명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빠져 있는 이유입니다.

의무기록에 꼭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해 주세요

비정규직 노동자가 퇴사를 하고, 산재신청을 하려고 상담을 오면 재해 당시 의무기록을 떼오라고 합니다. 노동자가 가지고 온 의무기록을 보면 언제부터 아프고, 증상이 어떠하다는 것은 적혀 있는데, 그 원인은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원인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는 그나마 낫습니다. 어떤 노동자는 회사에서 다쳐서 병원에 갈 때 회사 관리자가 따라가서 “회사에서 다친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축구하다가 다쳤다.”고 병원에 얘기 하라고 해서 그렇게 얘기하고 의무기록에 “축구하다 허리 다침”이라고 적혀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의무기록에 ‘축구’라고 적혀 있는데 근로복지공단이 일하다 다쳤다고 믿어 줄까요? 믿어주지 않습니다.

의무기록은 산재 승인에 결정적입니다. 객관적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의무기록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다가, 어떻게 다쳤고, 왜 아픈지 적혀있지 않은 경우에 노동자는 ‘일하던 중’ 발생한 재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증거들을 제출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다쳤지만 의무기록에 개인적으로 다쳤다고 적혀있는 경우에는 여러 증거를 더 많이 제출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일수록 의무기록은 더 중요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재를 신청하고 싶지만 해고를 감수해야 하기에, 애초에 진료실에 올 때부터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에게 아프다고만 얘기하고,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노동 현장은 어떻고, 어떤 상황에서 다쳤고, 무엇 때문에 아프다.’고 얘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료실의 의사 선생님이라도 꼭 그 원인을 물어보고, 의무 기록에 적어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그나마 비정규직 노동자가 나중에 산재를 신청했을 때 승인이 될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진료실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2020년 8월 3일 0시 기준,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301명입니다. 작년 산업재해 통계로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추정해보면 하루에 5.5명 씩 계산하면 2020. 7. 31. 산업재해 사망자는 1,180명일 것입니다. 산업재해는 코로나19 보다 훨씬더 심각하고, 무섭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산업재해는 더 심각하고, 더 무섭습니다. 정부는 산업재해 예방 정책을 수립할 때 산업재해 발생 통계를 근거 자료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산재 신청을 할 때마다 해고를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노동자는 그러한 근거 자료에서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진료실에서부터 산재 신청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의무기록에 업무 관련성이 기록되어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산재 승인 건수가 늘어날수록 산업안전 대책은 현실성이 생깁니다.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온 사회가 코로나19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사망자를 줄이는 것과 같이 의료계, 노동계, 사업주, 정부가 산업재해 예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산업재해 줄일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옹호하고 이를 위한 활동을 하는 사회운동단체이다. 계약직, 파견, 외주하청,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조합을 조직하기조차 힘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활동을 펴고 있다.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을 받지 않고, 단체 활동을 지지하는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노동건강연대 바로가기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포르시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