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각국(國)도생과 각자(自)도생은 위험하다

[라포르시안] 2020년 8월 2일 기준으로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1천 8백만 명, 사망자가 70만 명에 가깝다. 국내 뉴스는 ‘성공’을 주장한 나라들이 어떻게 되었고 ‘선진국’이 어떻게 실패하는지 다루느라 바쁘지만, 218개(!) 나라에 각양각색으로 감염병이 유행한다는 현실에는 꽤 무심하다. 엄청난 확진자가 나오는 인디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정은 그야말로 남의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또 말하지만, 팬데믹은 모든 나라에서 끝날 때까지 어떤 나라에서도 정말 끝났다고 하기 어렵다. 세계가 그리고 우리의 삶이 촘촘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는 외국 관광객을 받아야 먹고 살고, 어떤 나라는 휴대 전화기나 옷을 수출해야 경제를 유지하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외국에 간 노동자가 송금하는 돈이 없으면 나라 살림이 어렵다.

그러니 ‘우리’ 나라에 확진자가 줄었다고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건 다들 냉소하기 마련인 ‘인도주의’나 ‘인류애’를 넘는 지극히 현실적 판단이다. 단언하지만, 모든 나라가 스스로 살기 위해서도 남, 그리고 다른 나라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연대가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각 나라가 혼자 살기 바쁘고 이제 긴장은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다들 목을 매는 백신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 아닌가. 미국은 9조 원 이상을 들여 ‘사재기’에 나섰고(관련 기사 바로가기), 유럽과 일본 등 고소득 국가도 제 이익을 챙기는 데만 열심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여기서도 능력주의와 시장 원리가 지배한다.

한국마저 패자가 될 처지다. 급기야 방역 당국이 사태를 비판하면서 국제기구의 조정을 주문하기에 이르렀지만, 이 또한 각국도생의 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국제 공조와 연대에 얼마나 공을 들였나, 백신 확보에 이르러 갑자기 ‘국제’를 강조하는 것이 국내 정치용 아닌가 싶어 영 씁쓸하다.

냉정한 국내 정치의 현실, 그리고 그 압력은 이 아비규환의 경주에 나서서 끝내 이기도록 요구할 터, ‘K-방역’의 성패를 다시 묻게 될 것이며 (국내용) 국제 정치 또한 이를 위해 소비될 것이다. 예의 그 동맹, 혈맹, 형제 국가, 운명 공동체, 파트너 등 모든 정치경제 구조와 작동이 다 동원되지 않을까? 미국과 중국이 가장 먼저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 국가라는 사실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럼에도, 이 현실과 조건을 모르지 않지만, 우리는 인류가 축적해 온 과학의 성과와 이성의 진보에 기대를 건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렇지 않을 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모든 사회가 경험하는 탐욕, 무지와 맹목성, 잔인함과 무감각, 이기심에 맞설 다른 방법이 있는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유엔 체제를 단번에 무너뜨린 자국 이기주의에 어떤 대안이 있을까?

백신의 배분을 둘러싸고 점점 더 분명해진 위기, 팬데믹 대응의 실패를 막기 위해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에 세 가지를 제안한다. 우리는 이것이 과학과 이성에 근거한 당면 과제라고 생각한다.

첫째, 백신과 팬데믹 대응에 대한 국제적 공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이 책임은 정부에 한정되지 않고 백신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행위자가 모든 영역에서 국제 공조의 양과 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공권력과 자원을 독점하다시피 한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지도력과 거버넌스가 붕괴한 유례 없는 공백 상태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재정을 이바지하거나 성명이나 선언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관련 기사 바로가기, 관련 기사 바로가기), 새로운 국제공조체제(거버넌스)를 제안하고 촉구하는, 말하자면 국제적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다들 비현실적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본래 국제 정세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막상 국내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토대가 되는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고 시민사회의 역량은 빈약하다. 자국 중심주의와 ‘경제주의’를 돌파할 정부 내 지도력도 영 의심스럽다.

한국 대통령이 언제 세계보건총회 기존 연설을 한 적이 있나, 위기 국면이니 기회도 있는 것이다. 작은 틈을 찾아 정부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시민사회는 시민 역량을 모아 정치적 압력을 형성하는 일을 해야 한다. 백신을 둘러싼 예정된 논란이 이런 가능성을 내포한 현장이고 현실이다.

둘째, 국제협력과 네트워크를 (다시) 활성화하는 일.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동안 구축한 많은 국제협력과 네트워크는 무력해졌다. 공동의 노력과 협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팬데믹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 저절로 드러난 역량이지만 한편으로 남은 자산이다.

다만, 새로운 원리와 방법, 그리고 상상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저소득국가에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왜 새로운 국제협력 프로그램이 될 수 없는가? 저소득국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유력한 방식 가운데 하나가 현금 급여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지만(관련 기사 바로가기), 정부와 비정부기구를 막론하고 우리는 엄두도 내지 않는다. 왜? 무엇이 겁나서?

새로움으로 말하자면 시민이 더 창조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축적한 경험들은, 예를 들어 민주 시민교육, 여성, 노동, 남북협력, 종교 등에서 모두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코로나19 대응에서 보건의료에 속한 것은 조금, 오히려 사회적인 것이 주류라는 점을 잊지 말자. 그러니 중요한 과제는 익숙한 경계를 넘어 “코로나19 또한 우리의 과제”라고 인식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셋째, 배분의 정의와 우선순위에 관한 대화와 논의를 늘려야 한다. 이는 앞서 제시한 두 가지 과제의 토대를 쌓는 필수 작업이기도 하다. 코로나19의 사회적 특성, 팬데믹 대응에 필요한 자원, 배분과 우선순위의 원리와 윤리, 논의의 민주적, 연대적 과정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특별히 정부와 언론에 부탁한다.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고 논의를 초대하며 촉진하라. 이 시기에 정부와 언론이 촉매 구실을 해야 하는 (건강한) ‘정치화’ 작업의 하나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중계방송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가를 띄우려는 목적만 보이는 “곧 된다” “임상시험 돌입” 식의 보도자료보다 이 논의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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