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재난 사태서 의료인력 부족 여실히 드러나..."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적극 이행해야"

[라포르시안] 의료서비스 분야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부른다. 노동집약적이란 건 그만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국내 의료기관에서는 '노동집약적'이란 말이 다르게 통용된다. 부족한 인력을 갈아넣어 돌아가는 '노동착취' 구조라는 의미로.  

만성적인 인력부족 상태에서 이뤄지는 비정상적인 의료서비스가 정상적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간호사 4~5명이 담당해야 할 일을 한 명이 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효율적인' 구조인 것처럼 호도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적절한 보건의료인력 확충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감염병 진단검사부터 확진 환자 치료 과정에서 가용할 수 있는 의료인력 확보 여부가 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란 점을 분명히 목도했다.

지난 2월 말,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감염 환자가 폭발적으로 발생하던 시기 가장 먼저 이뤄진 것도 현지에서 환자 격리치료와 검사를 도와줄 의료인력 확보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코로나19 유행 장기화와 언제 또다시 대구·경북에서처럼 대규모 유행이 발생할 지 모르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적정 의료인력 확보는 방역대응 체계에서 핵심 과제로 꼽힌다.

적정 의료인력 확보는 개별병원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적정 의료인력 확충을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이어졌고 정치권이 호응에 나서면서 2019년 4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제정돼 같은 해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개별병원의 경영적 판단에 맡겨둔 의료인력 수급과 양성을 국가 책임 아래 그 의무를 명확히 한 게 바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다.

이 법은 보건복지부장관으로 하여금 보건의료기관의 원활한 인력 확보와 근무환경 개선 등을 지원하기 위해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했다.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주요 시책을 심의하기 위해 복지부장관 소속으로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에서 ▲종합계획 및 시행계획 수립·시행에 관한 사항 ▲보건의료인력 양성 및 수급관리에 관한 사항 ▲의료취약지 보건의료인력 배치 지원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조정하는 기능을 부여했다.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수급관리 및 지원업무를 전담하는 '보건의료인력지원전문기관' 설치 조항도 담았다.

그러나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시행에 들어간 지 10개월 가량 지났지만 의료인력 수급과 양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은 여전히 미미하다.

보건의료인력을 대표하는 16개 직능·노동단체로 구성된 보건의료단체협의회(운영위원장 홍명옥)는 정의당 배진교 의원과 함께 지난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제대로 된 이행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단체협의회에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서 ‘보건의료인력’으로 명시된 15개 직종 대표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물리치료사협회,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대한치과기공사협회, 대한치과위생사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영양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가 참여한다. 노동단체인 전국보건의료노조,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도 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단체협의회는 지원법 제정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보건의료현장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고발하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구성 ▲독자적인 보건의료인력지원 전담기구 설립 ▲보건의료인력종합계획·실태조사 계획 수립 등 신속하고 제대로 된 법 이행을 강력히 촉구했다.

협의회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를 현재까지는 보건의료인력의 희생과 헌신으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일상이 될 감염병 사태를 대비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의료체계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관심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며 "이미 마련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의료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를 담아 촉구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제정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정부 차원에서 관련 예산확보와 조직 신설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올해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확인했지만 보건의료인력의 부족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제정된 지 일년이 넘도록 가장 핵심이 되는 정책심의위원회는 구성조차 되지 않았고 종합계획 수립과 실태조사 등 인력지원법의 성실한 이행을 위해 마련해야하는 예산은 제대로 편성조차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작년 하반기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보건의료인력 지원전문기관 운영방안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부터 보건의료인력지원전문기관을 지정·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지연되고 있다.

홍명옥 보건의료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코로나19 때문에 복지부가 여력이 없다고 하지만 감염병 상황에서 우리나라 보건의료인력의 심각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목도하고 있는 만큼 하루라도 앞당겨서 이 법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개인보호구 착탈의 교육을 받고 있는 서울의료원 간호사들.
개인보호구 착탈의 교육을 받고 있는 서울의료원 간호사들.

한편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응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간호사 확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협은 "국가 재난 사태의 핵심 역량은 안정적인 간호사 확보로, 특히 환자 사망률을 낮추려면 중환자실과 응급실 간호사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반 중환자는 2~3명을 간호사 1명이 돌보지만 코로나19 중환자는 환자 1명에 간호사 2명이 요구된다.

코로나 사태로 겪고 있는 간호사 부족은 의료기관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의료기관과 보건소가 코로나 환자 치료와 방역에 매달린 사이  방문간호사 부족으로 만성질환자나 의료취약층 노인 돌봄에 공백이 생기고 있다.

간협은 "코로나 사태는 평상시 간호 인력 배치와는 전혀 다른 격리된 환자를 담당할 숙련된 간호사의 집중 배치와 확보가 시급하며,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도 필요하다"며 "정부는 코로나19 재유행에 대비해 ‘방역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대로 중환자실과 응급실 등에 숙련된 간호사가 배치될 수 있도록 인력을 보강하고, 이곳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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