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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④] 방송노동자가 진료실에 오면 물어봐야 할 질문이상운(노동건강연대 회원, 공인노무사)

[라포르시안]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15살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숨진 산재사망 사건을 돌이켜볼 때,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던진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은 노동환경 개선의 시작을 여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병원을 찾은 노동자에게 주로 하는 업무와 사용하는 물질을 의료인이 묻는다면 보다 적정한 진료를 할 수 있고, 다친 이후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진료실에서 환자의 직업력을 묻는 의료전문가의 질문은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정책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장의 의료전문가가 적합한 치료와 재활 및 예방을 위해 환자의 직업을 묻고, 직업이 건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격주로 연속기고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주>

방송 프로그램은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뉴스, 예능, 드라마 등 화면으로 만나는 이들은 화려하고,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오늘 칼럼은, 의사가 만나는 수많은 노동자들 중 정돈된 화면 뒤에서 그 모든걸 만들어내는 사람들, 방송스태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방송스태프라고 포괄해서 부르지만, 방송이 하나 만들어지기 까지 그 안에는 정말 다양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출, 카메라, 조명, 동시녹음, 의상, 무대설치 등 전혀 다른 업무들이 어우러져서 촬영이 이뤄집니다. 멀리서보면 TV(또는 스크린)에 나오는 신기한 일,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마음껏 볼 수 있는 일로만 보이지만, 사실 촬영장은 전쟁터입니다.

대부분 수십억짜리 프로젝트이다 보니 결과물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변수를 전부 예측하거나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기 어려운 인력중심의 업무여서 문제도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십억이 왔다 갔다 하니 여러 문제가 계속 생겨나는데 TV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문제들은 이미 스태프들의 장시간노동, 고용불안정, 저임금, 불의의 사고 등을 통해서 해결(?)되었으니까요.   

“새벽 4시에 끝내놓고 2시간 동안 자라고 찜질방을 보냈어요. 그런데 다들 찜질방을 가지 않고 현장 버스에 그대로 남아있어요. 쉬러 가면 다시 깨기 어려울 테니까요.”
“코피가 나는 코를 부여잡고 다시 촬영장으로 향하는데, 눈에는 눈물만 흐르네요.”
“사극을 하고 있었는데, 대본에 ‘치열한 전투’라고만 쓰여 있었어요. ‘치열한 전투’라는 다섯 글자가 나오는 순간 ‘아, 오늘 날 다 샜구나’ 했죠.”
“새벽 4시까지 찍고 7시까지 ○○으로 넘어가야 했어요. 우리 팀은 운전기사가 없는 팀이거든요. 아무리 새벽이라도 ○○까지 족히 두 시간은 걸리는데. 결국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크게 났어요.”
-에세이 <가장 보통의 드라마> 중

장시간 노동도 위험하지만, 방송 장비도 보통이 아닙니다. 그 중에 예를 한가지 들면, 카메라는 고가여서 튼튼한 케이스에 보관하다 보니 케이스에 든 카메라, 헤드 그리고 삼각대까지 합치면 50kg가 넘습니다. 옮길 때는 어깨에 얹어서 이동하다 보니 어깨나 허리가 다치는 경우가 많고, 촬영 때도 삼각대를 쓰게 되면 다행이지만 각도에 따라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들고 찍어야 하는 경우에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어깨에 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20~30대 스태프들이 팔이 안 올라가거나 허리가 다쳐서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스를 달고 살고 촬영이 없을 때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버티는데, 산재신청을 하더라도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판단기준이라면 산재 인정이 쉽지 않습니다.

고용이 불안정한 방송스태프에 대해 근로자로 인정한다는 판결도 나오고, 주52시간제도 시행되면서 촬영현장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수십명이 일하는 현장에서 4대보험이 가입된 사람은 한 손으로 셀 수 있고, 한번 시작된 촬영이 12시간을 넘기는 건 기본입니다. 55일 동안 이틀만 쉬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감독이나 주연배우의 한마디면 당장 촬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사고가 나서 다쳐도 평소에 제작사와 관계가 좋아야 겨우 치료비정도만 지원을 받습니다. 지속적인 치료는 당연히 다친 사람의 몫으로 남습니다.

방송스태프 누구를 만나봐도 반드시 본인이나 주변에 일하다가 다친 사람들이 있는데, 산재신청을 권유하면 모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면 앞으로 여기서 일 못해요”라고 합니다. 무거운 물건을 고정적인 자세로 계속 들고 있다 보니 몸이 성한 곳은 없고, 아프다고 쉬면 당장 돈을 못 버는 상황에서 ‘업무상 부상이니 산재신청 통해서 치료비와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현장을 모르는 뻔지르르한 말만 하는 저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 이한빛 PD 유서 중

이한빛 피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방송국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었던 그는, 각종 폭언과 갑질, 작품 촬영기간 중 휴식시간 문제 등 열악한 근무환경과 열정페이 강요를 당하면서, 특히 첫 방송 직전 드라마의 계약직 및 장비팀 다수의 정리해고 업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방송국 PD의 삶이 버거웠던 그는, 2016년 10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저는 그의 죽음을 계기로 방송계 노동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만들어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상담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이 혹시 환자의 직업을 물었는데 방송관련 일을 한다면, 꼭 하는 일과 노동환경을 진료기록지에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치료비는 누가 부담하는지’, ‘현재 하는 일이 이 부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더라도 신청이 가능하단 걸 알고 있는지’ 등에도 관심을 가져주세요. 당사자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나 노동조합을 알려주셔도 좋고요. TV에서는 볼 수없는 카메라 뒤에 있는 방송스태프 분들의 노동환경을 비춰주는 화려한 조명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옹호하고 이를 위한 활동을 하는 사회운동단체이다. 계약직, 파견, 외주하청,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조합을 조직하기조차 힘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활동을 펴고 있다.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을 받지 않고, 단체 활동을 지지하는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노동건강연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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