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원고패소한 2심 판결 파기환송..."여성과 태아, 임신·출산 과정서 충분히 보호받아야"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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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대법원에서 산모의 업무로 인한 태아의 선천적 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10년이 걸렸다.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들이 임신 중 근무 환경과 과중한 업무로 생긴 태아의 선천적 질병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이후에.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간호사 A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2009년과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던 중 임신한 간호사 27명 가운데 9명이 자연유산을 했다.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제주의료원 노동조합의 요구로 2012년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2009년 당시 전국 평균 유산율이 20.3%인데 반해 제주의료원 간호사의 유산율은 40%에 달했다.

제주의료원이 임신한 간호사를 배려해 야간근무 제외 이외에 모성보호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부족했고, 태아 및 임신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품을 취급하게 하면서 이에 대한 고지나 예방 조치도 부족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4명의 제주의료원 간호사가 2012년 12월 "임신중 과중한 업무강도와 고용 불안정으로 인한 스트레스, 임신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품 취급 등으로 태아의 건강손상을 일으켰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요양급여 지급 신청을 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규정을 들어 아이는 산재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요양급여 신청을 거부했다. 4명의 간호사는 2013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재청구했지만 거듭 거부당했다.

이들은 2014년 2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1심은 "임신 중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므로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은 산재보험법상 임신한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봐야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과 달리 2심은 "출산으로 어머니와 아이가 분리되는 이상 선천적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으로 업무상 재해도 아이에 대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재판부는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충분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지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단지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예방의 차원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안전한 일터에서 모성권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큰 발판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제주지역지부는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기형아를 출생할 수 있는 약품을 다루는 등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턱없이 부족한 인력난 속에 임신 상태에서도 장시간 동안 높은 노동 강도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며 "다른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울고법이 태아 산재를 부정한 판결의 근거인 산재보험법의 시급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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