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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감염병이 알려주는 것...의료는 정치적 선택의 산물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20.02.14 10:22
  • 댓글 1

[라포르시안] 매개체와 전파력에 따라 어떤 감염병은 짧은 시간에 불특정 다수에게 빠르게 확산된다. 감염의 전파 경로가 불분명하고 확실한 치료제가 없는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때 느끼는 공포감은 상당하다. 누가 감염됐는지 모르고, 언제 어디에서 자신이 감염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작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감염증-19'(코로나 19) 유행이 길어진다. 중국내 확진자가 6만명을 넘었고, 1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유행이 지속되면서 보건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오늘은 전날보다 확진자가 얼마나 늘었다'는 중계보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감염병은 그 특성상 비감염성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기존 의료시템을 무력하게 만든다. 물론 병원 내에서의 의료관련감염 관리도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비감염성질환의 진단과 치료, 특히 '공장식 박리다매' 진료에 최적화된 지금의 의료시스템으론 전파력이 높은 감염병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다. 감염병 방역을 위해선 그에 맞는 인적·물적자원을 필요로 한다. 중국 우한의 코로나19 유행에서 드러난 것처럼 짧은 시기에 대규모 감염병 환자가 발생하면 기존 의료인프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지역사회 내 의료시스템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도 속출하게 된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급속히 확산되는 감염병의 특성은 한 국가의 의료체계와 의료자원 분배에 내재된 문제와 직면하게 만든다. 메르스 사태 당시 한국 의료시스템이 안고 있는 고질병인 '의료전달체계 부재'가 고스란히 노출된 것처럼. 

감염병 전파를 차단하는 방역의 성패는 한정된 인적·물적 의료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분배하느냐에 달렸다. 보건당국이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진단검사 우선순위를 정하는 사례정의를 통해 의심환자 범위를 제한적으로 규정한 것도 한정된 검사 인프라 때문이었다. 무작정 사례정의를 확대해 검사 대상 범위를 확대하더라도 늘어난 검사수요를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늘면서 격리치료 병상을 확충하려면 기존 환자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입원병상이 축소되는 문제가 생긴다. 일선 의료기관에선 환자 분류를 위한 선별진료소 운영에 따른 의료인력 부족으로 환자 진료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의료자원의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가 실현된 정도는 곧 정치적 선택에 따른 결과이다. 누구 혹은 무엇을 위해서, 어느 지점에 의료자원을 집중할 것인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의학적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 가치체계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 앞으로 발생할 신종 감염병 유행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의료시스템의 인적·물적 자원을 확충하고, 제도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건 국가예산 배분 및 법제도 개정과 직결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진다. 당장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위상제고와 전문성 강화, 역학조사관 인력 충원, 감염병 전문병원과 국가지정격리병상 확충 등은 모두 예산이 확보돼야 가능하다. 관련 예산안이 올라가지만  정치권력이 판단하는 우선순위, 혹은 정략적 선택에 밀려 삭감되거나 사라진다.

고령화로 노인의 만성질환 유병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노인의료에 투입되는 의료자원의 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노인들 병원 뒷바라지에 모든 의료자원을 쏟아붓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의료자원 부족으로 필수의료 공백에 처한 지역의료와 공공의료 인프라 부족은 지역 간·소득 간 의료양극화를 키운다. 의료전달체계 부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타이머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은 그 자체로 감염병 유행시 촘촘한 방역망 구축을 힘들게 만든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의료는 문화이자 정치적 행위의 산물이다. 지금과 같은 감염병 유행 사태가 알려주는 건 '좋은 의료'는 '좋은 정치적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거다.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의료 인프라뿐만 아니라 의료자원의 지역간 수급 불균형과 그로 인한 지역 간·소득 간 의료양극화를 개선하는 데 정치권력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끔 우리 스스로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당장은 4월 총선에서 각 정당과 후보들이 어떤 보건의료 공약을 들고 나올지 지켜보자.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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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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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oonosis 2020-02-17 20:40:58

    신종 감염병의 예를 통해 의료자원 분배정의와 건강형평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 의료인보다 일반인이 많이 봐야할 내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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