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치매국가책임제’ 중간 평가

[라포르시안] 뭐라도 해보려던 스무 살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2011년 일이다. 그 뒤 1인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버지는...알코올성 치매 초기에 진입했다. 발등에 화상을 입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병원에서 ‘보호자’로 불렸다. 공공 기관에서 복지 지원을 받으려 할 때는 ‘대리자’이거나 ‘부양 의무자’였다. 주위에서는 심심찮게 ‘효자’로 부르기도 했다. 어느새 2인분의 삶을 담당하는 ‘가장’이 됐다. 돈, 일, 질병, 돌봄이 자주 나를 압도하거나 초과했다. 고강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고,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느라 안간힘을 다했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뒤따랐다.

‘청년’ 조기현이 쓴 <아빠의 아빠가 됐다>(이매진 펴냄) 중 거의 시작 부분이다. 여기서는 환자도(치매 종류도 포함한다) ‘보호자’도 흔한 사례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써서 알렸다는 것이 무엇보다 다르다.

그렇다고 예외라 할 수도 없는 것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떤 치매라도 겪을 수밖에 없는 공통의 문제를 적어 놓았다. ‘보호자’ ‘대리자’ ‘부양 의무자’ ‘효자’ 노릇이 그렇고, 돈, 일, 질병, 돌봄에 압도당하는 것도 그렇다. 안간힘을 다해야 하고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러 언론이 이 책과 저자를 소개하고 화제로 삼은 상황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지만, 어떤 불쏘시개에도 늘 불붙을 문제여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치매와 그 돌봄 부담은 많은 사람의 중요한 관심사인 것. 어떤 의미에서는 필시 사람들이 의식하는 보편적 문제인 것.

선거 시기와 정부 출범 직후 국가가 치매를 책임지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에게 큰 환영을 받은 이유를 달리 찾을 수 없다. 정확하게는 그보다는 환영받을 정책을 고르고 고른 것이리라. 그러니 정부가 붙인 이름 ‘치매국가책임제’는 사업과 정책이면서 아울러 정치이며, 또한 (더 중요하게는) 국가 통치이기도 하다.

그런 치매국가책임제라면? 마침 이 정부가 막 임기 절반을 지났다고 한다. 개혁이든 또는 그 어떤 이름이든, 출발할 때 거창하게(?) 약속을 했으니 절반의 성과라도 거두어야 마땅하다.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이 남았나. 이제 조기현의 아빠는, 그리고 새로 아빠 노릇을 하는 조기현은 덕분에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달라질 수 있을까.

일차로 집중했고 성과로 강조하는 것은 ‘치매안심센터’이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며칠 전 12월 20일에 전국 256개 보건소에 소속된 센터가 모두 개소했다고 한다(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바로 가기). 일부러 시기를 맞추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올해가 가기 전에 한 가지 사업을 마무리한 셈이다. 적어도 숫자로는 그렇다.

성과이고 달성이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군구마다 하나씩 있는 센터가 ‘국가책임’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가 판단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치매안심센터가 이런 일을 했다고 되어 있다.

치매안심센터는 그간 상담, 치매선별·진단검사 실시, 인지지원프로그램 운영, 쉼터, 치매안심마을 조성, 치매공공후견 사업, 치매노인 지문 사전등록 등 치매환자 및 가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그 결과, 올해 11월 말 기준 전체 치매환자(79만 명)의 57.6%인 45만 5000명을 치매안심센터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심층상담(383만 건), 선별검사(425만 건), 진단검사(33만 건), 사례관리(7만4000건)의 사업운영 성과를 올렸다.

충분히 예상했던 것으로, 단순 숫자로는 성과를 나타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전체 환자의 57.6%를 ‘관리’한다는 것. 짧은 시간에 절반을 넘게 관리하는 것이 대단해 보이지만, 그저 파악하거나 등록하는 비율이 그렇다면 그것만으로 관리라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일과 서비스 내용도 충분치 않아 보인다. 상담, 검사, 진단, 사례관리, 쉼터 같은 업무를 한다면, 대상자와 수혜자는 환자인지 불확실하거나 환자라도 비교적 가벼운 경우일 것이다. 지금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와는 거리가 있다.

아마도 치매안심센터로는 역부족인 일, 치매 때문에 고통을 겪는 돈, 일, 돌봄, 그 모든 ‘부담’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정책 당국은 향후 과제라며 얼버무리지만, 진전이 더디거나 거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증도가 높은 환자에 대해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등급과 본인 일부 부담을 개선했다고 하나, ‘국가책임제’라 하기에는 민망하다.

앞으로는 좀 더 중증도가 높은 환자와 가족의 다양한 수요와 고민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주간보호나 단기보호를 더욱 활성화해야 하며, 집에서 돌볼 수 없는 환자인 경우에는 환자 보호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이 충분해야 할 것이다....일반 요양시설에 치매전담실을 설치하거나 신축 공공 요양시설에 2개 이상의 치매전담실을 두는 ‘치매전담형 시설 확충’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지역의 호응은 크지 않다. (보건복지포럼 '치매국가책임제 성과: 시행 2년을 돌아보며' 바로 가기)

사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다. 치매를 ‘관리’한다는 것, 그것도 국가가 대부분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시설, 인력, 재정, 서비스를 모두 그리고 잘 맞추어 준비하고 늘려야 한다. 당연히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특히 재정(돈) 사정은 핵심 중의 핵심으로, 온 사회가 들썩거릴 중차대한 해결과제가 아닌가.

앞으로 2년 반이 더 지나면 치매국가책임제가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감히 예상하건대, 우리는 부정적 평가가 더 많을 것으로 판단한다. 심하면, 그런 공약이 있었는지 잊거나 관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갖가지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되면 죽은 공약에다 공허한 목표를 벗어나기 어렵다.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다. ‘치매국가책임제’에 동의하고 지지한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했을까? 5년 안에 모든 의료와 돌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적어도 진단은 받을 수 있다? 치료제가 개발되고 치료비가 안 든다? 그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안다.

지금 환자와 보호자인 사람도 있지만, 치매와 돌봄을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 그리고 이들에게서 정책의 동력이 나온다는 점이 ‘돌봄 정치’의 요체다. “머지않은 미래를 안심할 수 있는가”와 “누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면, 치매국가책임제는 오늘의 것이 아니라 내일의 것이어야 한다.

무엇이 먼저인가? 우리는 시작할 때 이렇게 주장했고, 기본 방향은 지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서리풀 논평- 단기성과(실적)에 목매지 말라 – ‘치매국가책임제’의 경우). 이제라도 정부는 심기일전,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오늘과 내일을 사는 사람들의 품위 있는 삶을 위해, 사람들의 안심과 꿈에 조응하는 돌봄의 정치가 긴요하다.

단기성과를 개혁의 동력이나 마중물이라고 강변하지 말라. 돌봄 부담, 건강과 삶의 질, 형평성 같은 것이 진짜 성과라면, 사람들은 곧 저절로 깨닫고 알게 된다. 그런 성과가 나타나서 좋아진 현실이 더 중요하다. 현실이 나아지지 않으면 개혁의 동력도 없다!

지금은 ‘장기’, ‘종합’ 계획과 촘촘한 디자인이 더 급하다. 지역사회와 시설, 의료와 복지, 가족 돌봄과 사회적 돌봄, 예방-치료-재활을 촘촘하게 잊는 연결망. 어떻게 만들고 연결할지, 역할을 어떻게 나누고 합할지, 틀과 내용, 흐름을 정교하게 구성(재구성)해야 한다.    

누가 할 것인지도 소홀할 수 없다. 개혁의 진짜 동력은 시민들의 이해와 정치적 지지가 아닌가? 지금 우리의 정치 수준은 ‘장기’를 바랄 수 없다거나, 그래서 ‘치매국가관리제’의 성과가 나는데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의지만 분명하면, 시민의 정치적 효능감은 장기 구상과 종합 계획을 보고 논의하는 것에서도 충족될 수 있다.    

이해와 동의, 그리고 통로로서의 참여야말로 정치의 본령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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