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김나영·장은선 교수 연구팀 분석...64%서 번아웃 증상
"일과 삶의 불균형 커져...근무 형태 개선· 지원 제도 마련 시급"

사진 왼쪽부터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 장은선 교수.
사진 왼쪽부터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 장은선 교수.

[라포르시안] 사회 전반적으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의사들은 제도와 인력의 문제로 여전히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과 삶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가중되는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번아웃(소진, Burnout) 증후군'에 빠지기 쉽다.

소화기내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번아웃 증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장은선 교수팀은 소화기내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일과 삶의 불균형 정도, 그러한 상황이 의사들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연구결과를 16일 발표했다.

의사들은 진료, 시술, 연구 등 여러 가지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스트레스나 근골격계 질환은 물론 심혈관계 및 소화기계 질환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 직면할 수 있다.

김나영 교수 연구팀은 2018년 4월부터 10월까지 국내 44개 기관에서 내시경 검사 및 진료를 하는 222명의 소화기내과 의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실제 본인의 업무와 일상생활 등 삶의 패턴을 2주 이상 매일 기입하도록 했다.

설문 응답지를 분석한 결과 2차 및 3차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국내 소화기내과 의사들의 평균 업무시간은 주당 71.5시간에 달했다.

업무시간은 남녀 성별로 큰 차이는 없었고, 가사 및 육아 등 가정과 관련된 일에는 주당 16.6시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은 20.7시간, 남성은 14.3시간으로 여성이 가정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많았다.

건강 상태에 대한 조사에서는 대상자 중 89.6%가 근골격계 통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소화기계 증상은 53.6%, 우울과 불안과 같은 정신적 증상은 68.9%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점은 근골격계 통증이 심하거나 내시경 시술을 많이 할수록(주당 60건 이상)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정신적 증상의 유병 비율이 유의하게 높은 연관성을 보였다.

특히 조사 대상 222명의 소화기내과 의사 중 143명(64.4%)에서는 번아웃 증상이 관찰됐다. 여성에서는 70.4%로 남성(59.7%)에 비해 그 비율이 더 높았다. 30대 여성 소화기내과의사의 경우 심한 번아웃 증상인 '이인감(depersonalization)' 증상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이인감은 자기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기로부터 분리·소외된 느낌을 경험하는 것으로 사회생활 또는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증상은 직업만족도의 저하로 이어졌다. 여성 의사들은 다시 직업을 선택한다면 의사가 되겠다고 답한 비율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고, 의사가 되더라도 소화기내과를 택하겠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낮았다.

분당서울대병원 김나영 교수(한국여자의사회 학술이사)는 “우리나라에서 소화기내과 의사, 특히 40대 이하 여의사들의 번아웃 증상이 심각하다는 사회적 문제를 밝혀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의사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문제는 환자들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의사들의 근무 형태를 개선하고 여의사의 지속적인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여성과총에서 연구비 지원 및 한국여자의사회(회장 이향애) 주관으로 진행됐으며,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인 'Digestive Disease and Science' 온라인판에 'Work–Life Conflict and Its Health Effects on Korean Gastroenterologists According to Age and Sex'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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