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와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란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그것도 건강분야 서적에서. 이 두권의 출판물은 같은 저자가 쓴 것이다. 제목에서 풍기듯 이 책들은 기본적으로 현대의학의 성과를 부정한다. 지금까지 건강 상식으로 알려진 것들이 ‘주류의사(?)들’에 의한 조작된 허구라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의학을 ‘신흥 종교’에 비유했다.

의료 전문가도, 과학자도 아닌 저자는 병원에서 하는 의료행위나 의사들의 의술을 향해 의심으로 가득찬 눈초리를 보낸다. 거의 모든 의료행위가 환자의 건강보단 거대 제약사의 이익 창출을 위한 수단이라고 여긴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과잉진료와 무의미한 의약품 처방을 남발하고 있다는 신념이 놀라울 만큼 단단하다. 아플 때는 병원을 찾지 말고, 의사의 말도 믿지 말고 인체의 면역체계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내맡겨두라고 신신당부한다.

이 두 권의 책에 따르면 합성 화합물 덩어리인 의약품은 오히려 병을 악화시킨다. 초음파 검사와 X-선 촬영, CT 촬영 등은 암을 유발하는 위험한 검사행위이다. 간접흡연이 위험하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까운 주장이고, 니코틴은 천연의 약이란 주장마저 서슴지 않는다. 오로지 믿고 따라야 할 것은 천일염, 천연 알코올, 천연의 커피 등 자연 그대로의 날 것들뿐이다. ‘병원에 가지 말아야…’와 ‘의사를 믿지 말아야…’는 당부한다. 건강을 위해 끊어야 할 것은 병원과 의사라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말고, 의사를 믿지 말라고. 

혹 저자가 병원과 의사는 불필요하고, 병원이 오히려 병을 만든다고 주장한 이반 일리치의 '반의학'을 맹신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런 주장이 한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신념에 그친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문제는 이런 유사 과학과 비의학적 주장이 출판물 형태로 한 줌의 신뢰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 시간에 걸쳐 의학자들의 연구와 검증, 그에 따른 합의로 구축된 의학적 성과의 신뢰도를 떨어뜨릴까 적잖이 염려된다. 자칫 그 때문에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고 병을 키우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의학이 최선의 결과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한계만을 부풀리고, 그간의 성과를 전면 부정하는 비과학적 의심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학 논문과 전문서적 등에서 자료의 일부만을 인용하거나 곡해하는 식으로 의학과 반의학(反醫學)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든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의료에 대한 불신이 마치 현대의학적 스펙트럼의 영역 안에서 이뤄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바로 ‘사이비’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겉으로는 그것과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병원과 의사를 향한 ‘반의학’적 저주에 가까운 두 권의 책을 보노라며 ‘합리적 의심’이란 탈을 쓰고 지구온난화와 담배의 유해성에 관한 과학적 연구결과에 흠집을 낸 일군의 과학자들이 떠오른다. 나오미 오레스케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에릭 콘웨이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는  ‘Merchants of Doubt’란 책을 통해 과학의 이름을 빌려 비과학적 의심을 만들어내고 유포한 ‘장사꾼 과학자들’의 실태를 낱낱이 파헤쳤다. 과학사학자와 역사학자인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대중과 언론이 과학자의 명성과 과학적 도구란 프레임에 얼마나 손쉽게 농락당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사실 ‘병원에 가지 말아야…’와 ‘의사를 믿지 말아야…’를 두고서도 합리적 의심에 기반한 의혹을 제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뭐냐 하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자 하는 정부의 음모가 이 두 권의 책이 출판된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인구 고령화로 만성질환자가 급증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건강보험 재정 위기에 직면한 정부가 환자들을 병원과 의사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든다. 뭐 아니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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