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도 암 수술에 첫 활용…"효용 가치 상당히 높아질 것"
오남용 등 의료윤리 문제 초래할 수도

총기 제작 등에 악용돼 세계적으로 논란이 일었던 3D 프린터(3차원 인쇄기)가 머지않아 의료 분야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3D 프린터를 이용한 암 수술이 실시됐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1일 삼성서울병원은 이비인후과 백정환 교수팀이 3D 입체 프린터를 활용해 부비동암 수술을 국내에서 처음 시행했다고 밝혔다.

병원에 따르면 백 교수는 지난 4월과 5월 부비동암이 재발한 40세 여성 환자와 코가 자주 막혀 비중격만곡증으로 알고 내원했다가 부비동암으로 판정받은 46세 남성환자를 3D 프린터를 이용해 성공적으로 수술했다.

백 교수는 치과용 모형물을 만드는 벤처 회사에 의뢰해 수술 부위의 골격 모형물을 3D 프린터로 만들고 이를 통해 수술 중 예상되는 얼굴 골격 절제 범위, 절제 부위의 뼈 두께, 절제 방향의 중요 구조물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수술했다.

백 교수는 “앞으로 인체 조직을 3D 프린터의 원료로 이용하는 바이오프린팅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면 장기나 조직의 3D 프린팅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해외에서는 3D 프린터를 의료분야에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홍콩의 ‘덴탈 임플란트 앤드 악안면 센터’ 구강외과 전문의들은 수술 준비과정에 3D 프린터를 이용해왔다.

이 센터의 전문의들은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턱 복제품을 만들거나 임플란트를 삽입할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환자 구강 내부에 넣을 수술용 템플릿을 복제해 수술에 활용했다.

3D 프린터는 배아줄기세포 복제에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 2월 영국 에든버러 헤리엇와트대학 연구진은 영국 물리학연구소(IPO)에 발표한 논문에서 특수 제작한 밸브 방식 3D 프린터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복사했다고 밝혔다

이 논문에 따르면 3D 프린터로 배아줄기세포 구조물을 찍어내는 과정은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물을 만드는 것처럼 줄기세포 배양액을 섞은 ‘바이오잉크’로 얇고 작은 세포 구조물을 찍어낸다.

연구를 담당한 헤리엇와트대학 월 슈 교수는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장기 기증이 필요 없어질 것이며 면역 부작용이 없는 자기 신체 복제 장기를 만들 수 있다”며 “머지않아 생체 조직검사용 정도의 세포조직은 3D 프린터로 찍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 단계가 되면 신약 개발에 동물실험이 필요 없게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 미국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는 정형외과 환자의 관절 이식 수술에 3D프린터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외과 수술에 3D 프린터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지난 3월 일본 고베 대학병원 외과팀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어른의 간을 어린이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3D 프린터로 기증자의 간 복제품을 출력해 간의 크기를 어린이의 이식 공간에 맞추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시행,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수술을 집도한 고베 대학병원 외과 스기모토 전문의는 “장기적으로 볼 때 경험이 적은 젊은 외과의들이 수술 전에 정확한 복제품으로 연습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3D 프린터 기술이 의료계에 미칠 잠재적인 효과는 유선전화에서 무선전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느낀 파장에 버금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국내 의료계에서는 치과분야에서 임플란트 시술 전 모형물 제작에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정도이다.

의료전문가들은 현재 국내에서 3D 프린터를 의료용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 실험 단계지만 적용 사례가 점차 늘고 있어 곧 상용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 정지훈 소장은 “뼈가 결손·훼손된 부분에 보형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형외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등 이식·재건과 관련한 의료분야는 모두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아직 보편적으로 다뤄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앞으로 의료계에서 3D 프린터의 효용 가치는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소장은 “의료계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용 재료 때문에 이를 연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재료에 대한 기술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여 상상하는 것보다 빠른 시간 내에 상용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3D 프린팅 기술의 발달로 주문형 인공장기 생산 등이 상용화될 경우 의료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높다.

의료윤리연구회 홍성수 회장은 “의료행위에 있어 오남용의 문제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고려돼야 할 부분인 것처럼 3D 프린터를 의료에 활용하는 것 역시 오남용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며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은 상용화 이전에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회장은 “국내에서 미용을 목적으로 한 성형수술의 경우 부작용만 없다면 오남용을 용인하고 있는 추세인 것처럼 3D 프린터를 이용한 의료행위 역시 오남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상용화 이전에 자체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만 한정해서 활용하는 등 오남용을 막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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