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2명중 1명꼴 "중소병원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의료전달체계 확립·퇴출 길 열어줘야

[라포르시안] 300병상 미만 중소병원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동네의원과 대형병원 사이에 끼인 채 환자는 물론 의료인력마저 빼앗기면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

동네의원과 대형병원 사이에서 의료전달체계의 중간 역할을 하는 곳이 중소병원이다. 그러나 국내 의료환경에서 의료전달체계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중소병원이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국가차원의 병상공급과 배치에 관한 기본시책이 부재한 가운데 각 지자체가 의료인프라 확충 차원에서 병원 개설을 촉진해 왔다. 그러다 보니 전국적으로 300병상 미만 중소병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이제는 공급과잉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한다. 

특히 지방에 있는 중소병원은 난리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빠져나가고 의사와 간호사 인력유출도 심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또 환자가 줄고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의료인력과 시설 확충은 더 힘들어지고 의료 질이 저하되는 악순환 구조에서 허덕이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료공급체계에서 그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 11월부터 12월 사이 만 19~6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건의료 정책 수요 웹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미래 보건의료 정책 수요 분석 및 정책 반영 방안' 보고서를 보낸 중소병원이 처한 상황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미지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 보건의료 정책 수요 분석 및 정책 반영 방안' 보고서
이미지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 보건의료 정책 수요 분석 및 정책 반영 방안' 보고서

보고서에 따르면 평상시 동네의원과 대학병원 사이 중간 정도의 중소병원 이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7.4%가 '중소병원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중소병원을 잘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큰 병이면 대학병원을, 일상적인 병이면 동네병원을 가는 게 나아서’ 라는 응답이 54.9%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가까운 거리에 중소 병원이 없어서’(27.0%), '이용한 적이 있으나 치료 효과가 좋지 않아서'(6.4%), 질병 진단을 신뢰할 수 없어서'(3.4%) 순이었다.

소득 수준별로는 소득 최상위 가구에서 ‘큰 병이면 대학병원을, 일상적인 병이면 동네 병원을 가는 게 나아서’라는 응답이 68.8%로 높게 나타났다.

정부가 중소병원 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전문병원제도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는 상당히 낮았다. 보건복지부 지정 전문병원에 대한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1.0%는 지정 전문병원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중소병원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병원의 의료 질이나 신뢰도도 낮고, 동네의원에서 대형병원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에서 뚜렷한 역할이 없다는 인식이 높다.

보고서는 "불필요한 대형병원 진료로 인한 고가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중소병원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 중소병원 경쟁력 제고와 더불어 전문병원제도의 홍보 및 확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동네의원과 대형병원 사이에 낀 채 의료인력과 환자를 모두 빼앗기는 상황에서 중소병원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싶다. 근본적으로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고, 그 속에서 중소병원의 역할이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

의료법인 병원의 퇴출 구조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병원계는 경영이 어려운 지방 중소병원을 정부가 나서 인수한 후 공공병원으로 전환하거나 제한적으로 중소병원 간 인수합병과 청산 절차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대한지역병원협의회는 "정부의 300병상 이하 중소병원 죽이기 정책으로 상급병원 환자 쏠림이 가속화되고, 상급병원의 대형화 경쟁에 따라 의료인력 마저 몰리면서 중소병원은 점차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며 "의료안전망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중소병원의 생존과 존립은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와 국회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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