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의약계·병원
감정노동은 영혼을 잠식한다...마음의 골병든 보건의료노동자실태조사 결과 감정노동 수행정도 89.5% 달해...폭언폭행 경험으로 신체적·정신적 소진 심각
이미지 출처: SBS스페셜에서 방송한 '가면 뒤의 눈물' 속 한 장면.

[라포르시안] 작년 10월부터 보건의료 분야 등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조치를 의무화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감정노동자에게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주로 하여금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의 조치를 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에 들어갔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보건의료 노동자 상당수가 직장 내에서 폭언과 폭행, 갑질과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 10명 중 7명은 지나친 감정노동으로 인해 신체적·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라고 호소했다.    

20일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와 방사선사·임상병리사, 사무행정직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실태 전수조사(3만6447명 참여) 결과에 따르면 69.2%가 폭언을 경험한 사례가 있다고 응답했다. 또 폭행 경험 13%, 성폭력 피해 경험도 11.8%로 나타났다.

직종별로 보면 폭언 피해 경험은 간호사가 79%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간호조무사 61.7%, 사무행정 원무 57%, 방사선사 51.3%, 임상병리사 45.4% 순이었다.

폭행 피해 경험도 간호사가 16.2%로 타직종에 비해 높았고, 이어서 간호조무사 9.5%, 방사선사 6.2%, 사무행정원무 4.5%, 임상병리사 2.1%로 조사됐다. 성폭력 피해 경험은 간호사 직종이 14.5%로 가장 높았으며 방사선사가 4.5%로 가장 낮았다.

폭언·폭력의 주요 가해자를 보면 폭언은 환자가 68%로 가장 높았으며 보호자 53.6%, 의사 32.1%, 상급자 20.6% 순이었다.

폭행의 경우 주된 가해자는 환자가 86.6%에 달했다. 또 보호자가 18.4%, 상급자 3.9%, 동료 2.8%로 집계됐다. 성폭력의 주된 가해자도 환자가 81.2%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보호자 19.2%, 의사 9.7%, 상급자 5.6% 순이다.

병원 안에서 발생한 폭언·폭행·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이 취하는 대응방식은 문제해결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소극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폭언 경험자의 82,3%, 폭행 경험자의 63.8%, 성폭력 경험자 74,3%가 주변 사람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포함해 스스로 참고 넘겼다고 응답했다. 병원내 노동조합이나 고충처리위원회 등을 통해 공식적인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는 응답자는 3%에도 못 미쳤다.

보건의료노동자가 근무 중 겪는 감정노동도 타 산업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였다. 근무 도중 '나의감정을 억제하고 일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89.5%에 달했고, '퇴근 후에도 힘들었던 감정이 남아 있다'는 응답자가 80.2%였다.

특히 '부당하거나 막무가내 요구로 업무수행의 어려움이 있다'는 응답자가 69.1%로 조사됐다. 이렇게 감정노동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공식적인 규정이나 절차가 있다는 응답은 31.4%에 불과했다. 감정노동 대응 매뉴얼이 마련돼 있다는 응답도 30.4%에 그쳤다.

직종별 감정노동 소진도를 보면 타 직종에 비해 환자 및 보호자 대면 업무가 많은 간호사가 더 심하게 감정노동을 겪고 있었다.

직종별 직무스트레스에 관한 조사도 이뤄졌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53.6%만이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신체적·정신적으로 모두 지쳐있다'는 응답이 70.6%로 나타났고, '업무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응답자도 47.5%에 달했다.

병원 내에서 직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외모, 연령, 학력, 지역, 성별, 비정규직 등을 이유로 인격이 비하된 사례가 11.5%이며, 다른 직원들 앞에서 또는 온라인(단체방)등에서 모욕감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도 9.2%로 파악됐다. 

심지어 직원들이 일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감시당한 사례가 있다는 응답도 19.8%나 됐다.

보건의료노조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작년 10월 18일부터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고, 오는 7월 16일부터는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의료기관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있게 작동할지 의문"이라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고 있는 의료기관에 만연한 폭언, 폭행, 직장내 갑질, 괴롭힘 등의 감정노동은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인권이 존중받는 안전한 병원 만들기'를 2019년 산별중앙교섭 주요 의제로 선정하고 노사 교섭을 통해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 ▲직장내 괴롭힘과 인권보호 등에 합의하고 노사 TF팀을 구성해 세부 실행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병원 내 감정노동 실태를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