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인력난 대책 제자리걸음에 갈수록 악화되는 의료현장...간호사 배치기준 강화해야

간호사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포스터. 출처: 보건복지부
간호사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포스터. 출처: 보건복지부

[라포르시안]  "1년차 미만 신규 간호사가 중환자실 간호인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농담으로 ‘환자가 셀프치료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할 정도다" <서울 모 사립대병원 간호사>

병원의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으로 인한 폐해가 크다. 가장 큰 우려는 환자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간호업무가 돌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길 정도인 상황에서 숙련도가 높은 경력직 간호사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견디다 못해 병원을 그만둔다. 

경력직 간호사가 빠져나간 자리는 저연차의 신규 간호사로 대체한다. 간호업무 숙련도가 떨어지는 신규 간호사로 인해 업무부담이 늘어난 선배 간호사들의 '태움'과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신규 간호사 중 상당수는 이런 업무환경을 견디지 못해 병원을 떠나고, 인력난은 더 심해진다. 끝없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요즘은 앞뒤 돌아보지 않고 하루 이틀 만에 퇴사를 통보하고 도망치듯 병원을 그만두는 간호사도 많다고 한다. 이런 걸 두고 현장에서는 '응급사직'이라고 부른다. "사직서를 내는 게 간호사의 꿈이 됐고, 병원에 남는 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생계형 간호사'뿐"이라고 자조한다. 

인력부족으로 인한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노동력 갈아넣기' 식으로 제공되는 간호서비스가 환자에게 양질의 돌봄일 리 없다.

간호인력난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간호사 처우개선과 인력확충이다. 특히 병원이 적정 간호인력을 확충하도록 간호사 배치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앞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고용정책의 일환으로 간호인력의 열악한 근무환경 분석 및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간호인력 근무여건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연구책임자 이상영 보사연 선임연구위원)'를 실시했다.

보사연은 이 연구를 의료기관의 간호사 확보 기준이 되는 의료법 시행규칙상 간호인력 배치 기준 등 법적·제도적 기준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현실성과 간호의 질을 고려한 배치기준을 제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간호인력 배치수준은 환자의 건강결과에 영향을 미치며, 환자안전은 병원에서 일하는 등록간호사의 수와 비례했다. 숙련된 면허 간호사의 배치수준이 높으면 낙상, 감염, 투약오류, 사망 등의 부정적인 환자결과가 감소한다.

간호사 배치기준 관련 국내외 문헌 고찰에서 간호인력 확보수준 및 구성이 병원 내 사망률과 관련이 있으며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증가할수록 병원 내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연구에서는 불충분한 간호인력 배치는 환자사망, 손상, 영구적인 기능손실 등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것에 24% 기여하고 등록간호사는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투약오류의 84%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됨

간호사 1인당 환자 비율이 4.95명 이하일 때 간호사가 환자 대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며, 이를 통해 심부전 재발을 7%까지, 급성 심근경색 재발은 6%까지, 폐렴의 재발은 10%까지 감소시킨다.

환자실의 병상 당 간호사 수가 4~6명 증가할 때 100명의 환자당 약 7명의 생존율 증가가 보고됐으며, 간호사 배치수준이 높을수록 재입원율이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간호인력 확보수준이 환자안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간호사 배치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99년에  간호사(RN)의 최소배치기준을 법으로 정했다. 이 법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책임간호사 및 수간호사를 포함하지 않는 최소인력이다. 2005년 1월에 캘리포니아주의 간호사 최소배치기준은 내외과계의 경우 1대 5이며, 최고배치기준은  1대 1(외상센터)에서 1대8(신생아실)로 제시했다.

이 법을 제정한 이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약 6만명 이상의 간호사면허 취득자가 증가했고, 법 제정 이후 환자 사망률 감소와 간호인력 보유율 증가가 보고됐다.

독일의 경우 간호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2018년 11월에 ‘간호강화법’이 제정됐다. 올해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간호강화법은 병원의 간호인력 최소기준을 제시했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법에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력 배치기준을 두고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전락했다.

보고서는 "현행 의료법상 ‘간호인력 배치 기준’은 의료기관 개설과 운영을 위해서 모든 의료기관이 준수해야만 하는 ‘최소기준’으로 인지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는 이런 규정이 지켜지지 않아 사문화돼 있으며, 간호사 배치기준 미준수에 대한 처벌기준도 미약하다. 실제로는 ‘권장최소기준’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의료법에 명시된 간호인력 배치 최소기준의 타당성이 결여됐다"며 "그간의 환자안전 강화 등 보건의료 환경 변화에 따른 간호사의 역할 확대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정원 기준은 1962년 제정 후 동일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간호사 교대제 개편 및 인력 배치 기준개선 시범사업(안)'을 제시했다.

시범사안 방안을 보면 지역 및 종별 구분 없이 모든 형태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에 포함하고, 간호사 교대제 개편 및 인력 배치기준 조정에 따른 간호인력 확보 여부와 이직률 변화 등 정책 효과를 확인하고 제도 개선점을 도출하는 데 목표를 뒀다.

시범사업 진행은 참여를 희망하는 병원을 모집해 ▲현 교번제 유지, 노동조건 개선 ▲현 교번제 유지, 노동조건 개선, 모성보호제 적용 ▲개조 3교대(노동조건 개선, 모성보호 등 충족) 등 3개 모형 중 하나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시범사업 참여 기관에 대한 간호사 고용비용 지원은 사업 확대 가능성, 건강보험제도와의 정합성 등을 고려할 때 인건비 직접 지원 방식보다는 별도의 수가체계를 개발해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했다.

보고서는 "정부차원에서는 간호인력 충원에 따른 수가체계를 개선하되 반드시 간호수가와 간호사의 고용과 근로여건이 연계돼야 하고, 사후모니터링과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또한 정부차원에서 간호사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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