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42개 병원 의료법 위반 실태조사 결과...29개 병원서 PA간호사 971명 달해
"의사·약사인력 부족 업무공백을 간호사·의료기사 등에 떠넘겨"

병원의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해 PA간호사를 활용한 불법의료행위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병원의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해 PA간호사를 활용한 불법의료행위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라포르시안] '의사업무는 의사가, 약사업무는 약사가, 간호업무는 간호사가 수행한다'는 기본적인 업무원칙이 일선 의료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본적인 원인은 각 전문 직종별로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공립병원과 사립대병원 등 대형병원에서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 간호사가 수술, 시술, 처치, 처방, 진료기록지 작성 등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를 대행하고 있어 각종 의료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가 12일 전국 42개 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법 위반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의료법 위반 실태조사에 참가한 병원은 사립대병원 14곳, 국립대병원 2곳, 특수목적공공병원 5곳, 지방의료원 12곳, 민간중소병원 7곳, 재활병원 2곳 등 모두 42곳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PA간호사는 42개 병원 중 29개 병원(69.04%)에서 운용하고 있었다. PA간호사가 없다고 응답한 곳은 12개 병원(28.57%)에 그쳣고, 무응답이 1개 병원(2,38%)이었다.

PA간호사를 운용한다고 응답한 29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PA간호사수는 총 971명으로 병원 1곳당 평균 33.48명으로 파악됐다.

대형병원인 국립대병원(2곳)과 사립대병원(13곳) 등 15개 병원의 PA간호사수는 총 762명으로 병원 1곳당 평균 50.8명에 달했다. PA간호사가 가장 많은 부산의 A병원은 무려 184명이나 됐다. 인천의 B병원은 124명, 전남의 C병원은 65명의 PA간호사를 두고 있었다.

PA간호사가 수행하는 업무 중에는 수술, 환부 봉합, 시술, 드레싱, 방광세척, 혈액배양검사, 상처부위 세포 채취, 초음파, 방사선 촬영, 진단서 작성, 투약 처치, 주치의 부재시 주치의 업무 대행, 처방, 잘못된 처방 변경, 진료기록지 작성, 제증명서 작성 등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할 업무도 많았다. 이런 행위는 모두 명백한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

실제로 이번 실태조사에서 ▲PA간호사가 환자 수술부위나 상처부위를 봉합하는 사례 ▲PA간호사가 의사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의사 처방을 입력하는 사례 ▲진료기록지, 진단서, 사망진단서, 협진의뢰서, 검사 의뢰서, 시술 동의서 등을 PA간호사가 작성하는 사례 ▲당직인턴이 처방을 내는데 약품 코드를 몰라 간호사가 대리처방하는 사례 ▲공휴일이나 휴일, 명절에 담당의사가 출근하지 않아 간호사가 의사업무를 대행하는 사례 ▲당직 의사가 없어 간호사가 의사 대신 당직근무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PA간호사 운용 과정에서의 여러 문제도 드러났다.

의사업무를 PA간호사에게 전가함으로써 불법의료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비롯해 ▲전문지식이나 자격조건이 없고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의사 업무를 대행하는 점 ▲의사업무를 대행하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간호사를 보호할 법적 장치가 없는 점 ▲업무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의료서비스와 행정업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점 ▲PA간호사에 대한 특정 자격요건이 없어 저연차 간호사가 PA 업무를 수행함으로서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점 ▲경력간호사에게 PA업무를 맡김으로써 병동 내 경력간호사 부족문제가 발생하는 점 등이 지적됐다.

또한 ▲대리처방, 대치처치 등 의사업무를 대행하면서도 환자에 대한 결정권이 없어 환자 및 의료진간의 신뢰가 깨지는 문제 ▲의사들이 의료행위 외에도 개인의 업무를 간호사에게 전가하는 점 ▲교수가 PA간호사를 개인비서처럼 여겨 부당한 업무를 지시하는 점 ▲의사업무를 과도하게 PA간호사에게 전가함으로써 장시간노동과 공짜노동이 발생하는 점 ▲합법적인 제도가 없어 고용불안 상태에 빠지는 문제도 제기됐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경력직 간호사가 PA간호사로 운용되면서 간호인력난을 더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간호인력이 부족한 데 숙련된 경력간호사가 PA로 옮겨가면 저연차 간호사를 중심으로 병원내 간호업무가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간호업무 부담은 더 커지고 근무환경은 더 열악해지면서 이직률이 높아져 인력난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간호사가 아닌 방사선사가 조영제를 투입하는 위법행위도 확인됐다. 방사선 촬영시 조영제를 실제 누가 투입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방사선사가 투입한다고 응답한 병원은 15개에 달했다. 병원 내부 규정에는 조영제 투입 담당자를 의사나 간호사로 명시해놓고 실제로는 간호사는 라인만 잡고 조영제 투입은 방사선사가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밖에 의료법 위반 사례로 ▲약사인력 부족으로 비약사가 약을 조제 ▲응급실약을 간호사가 조제 ▲항암제를 간호사가 조제 ▲간호사가 약사인력을 대체하거나 조제, 투약, 복약설명까지 담당 ▲수술기구 사용시 업체 직원이 수술 과정에 참여 ▲응급구조사가 방사선사 업무를 대행 ▲심혈관센터 심장초음파를 간호사 및 방사선사가 시행 ▲산소마스크나 산소줄을 소독해 재사용 ▲퇴근한 전공의가 퇴근하지 않은 다른 전공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대신 처방 ▲의사는 회진을 돌지 않고 간호사가 일일업무보고를 작성 등이 드러났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 의료현장에 대리수술, 대리시술, 대리처치, 대리처방, 대리진단서 발급, 대리조제, 대리당직 등 의료법을 위반하는 불법의료행위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음이 확인됐다"며 "PA간호사제도는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를 방치할 뿐만 아니라 각종 의료사고 위험 증가, 간호서비스의 질 하락, 이직률 증가와 인력난 가중을 초래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의 의사인력과 약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공백을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에게 떠넘기는 관행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며 "의사업무는 의사가, 약사업무는 약사가, 간호업무는 간호사가 하도록 의료인간 업무범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부족한 의료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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