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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다페스트에서의 한국인의 죽음[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헝가리 사고, 위험의 ‘세계 체제’에 대항하려면

[라포르시안] 이번에는 나라 바깥에서 안타까운, 그러나 황당한 사고가 났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외국 여행이 흔해진 후 여러 사고가 있었지만, 이번 경우처럼 터무니없는 ‘참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먼저,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 국내 여행만큼도 안전을 걱정하지 않았을 여정에, 그야말로 아무런 개인 책임도 없는 사고로 귀중한 목숨을 잃은 분들이다. 사정이 이러니 가족들의 황망함도 오죽할까,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리기도 어렵다.

사고가 나면 으레 뒤따르는 그 숱한 ‘대책’은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당장 할 일도 많지 않다. 피해자가 속한 국가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사고가 났으니, 장관이 직접 가도 지켜보고 당부하며 위로하는 정도를 넘지 못한다. 사고 장소는 온갖 나라에서 관광객이 오는 국제적인 곳에, 사고를 낸 크루즈 선은 스위스 선적에 선장은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미루더라도, 이 시대의 안전 문제만이라도 따져보자. 세계화 시대의 안전과 생명은 흔히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나든다. 원인, 피해, 피해자의 회복, 대책, 예방이 모두 마찬가지다. 국민국가의 질서에 머물면 세계화된 위험은 패배의식과 냉소를 부르기 마련이다. 국경을 넘어 불어오는 먼지나 다른 나라에서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무력감을 넘는 일차 작업으로, 당장 답이 없어 보여도 원인을 찾다 보면 할 일이 드러나는 법이다. 이번 유람선 사고의 전모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우리가 살아낸 참혹한 시절로부터 이미 배운 것도 있다. 으레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이유가 얽히고 만나 불행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리라. 그 유명한 스위스 치즈 모델을 다시 동원해야 한다(서리풀 논평 - 가습기 살균제 사건, 그리고 국가와 기업 ‘연합’).

나라 안에서는 어김없이 저가의 패키지 여행부터 문제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기상이 나쁜데 왜 일정을 강행했는지 묻는 것은 부질없고, 그 유람선에 구명복이 있었는지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쟁에 내몰린 국내 여행사가 무얼 어떻게 해서 돈을 맞추고 조금이라도 남길 수 있겠는가, 물으나 마나 뻔하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국내 여행사의 요구는 헝가리의 조건과 만나야 실현되는 법, 저쪽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사고 유람선이 70년이 된 낡은 배라는 것도 놀랍지만, 헝가리에 노후 선박을 규제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 더 충격이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그 악천후에 운항을 했다니, 아예 그런 규정이 없을 수도 있겠다.

사회주의 국가 시절부터 있던 전통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한 이후에 그렇게 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사실, 후자라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긴 하다. 말하자면,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적 통제가 없는 상태란 소리가 아닌가?

부다페스트의 “관광산업 과열”은 책임이 없을까? 하루 수백 척의 배가 다뉴브강을 오가고 야간에만 70척의 배가 운항한다니, 이 또한 큰 구멍이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그 이유조차 찍어낸 듯 익숙하다. “야간 크루즈 운항을 적절히 규제해야 했으나 당국자들이 지역 경제 부흥을 위해 안전을 도외시했다”.

아귀가 척척 맞는 또 한 가지. 사고를 낸 것과 비슷한 크루즈선의 선원들은 많게는 주당 95시간, 사실상 노예노동을 한다고 한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어느 곳이든 경제를 위해, 최대한 많은 물량에, 노동을 쥐어짜서, 이익을 남긴다.

개인이나 어느 회사가 이렇게 하고 싶다고 될 일이 아니니, 이제 체제를 물을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2010년 집권한 헝가리의 오르반 정권은 이른바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 이념과 그에 기초한 국정 운영으로 이름이 드높다.

헝가리 정부는 올해 1월부터 노동자들의 연장근무 시간을 연간 250시간에서 400시간으로 늘리도록 허용했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3년 동안은 이에 대한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이 법을 두고 오르반 총리는 “바보 같은 행정 규제를 없앤” 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더 오래 일해서 더 많이 벌려는 사람을 규제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 말도 덧붙인다(이 모든 것이 이렇게 비슷할 수가!).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한편으로 저 유명한 헝가리의 문인이자 철학자인 죄르지 루카치의 동상을 철거하고 아카이브를 없애는 것, 또는 소로스가 부다페스트에 개설한 중앙유럽대학을 내쫓는 억압과 함께 간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대학에서 젠더 전공의 석사학위도 없앨 정도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극우 민족주의,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동거는, 그 자유가 단연코 경제적 자유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조합도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최고의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오히려 국가가 개입할 것을 요구하니, 권위주의야말로 효율성이 가장 높을 수도 있다.

한국인의 유람선 참사에서 오르반 체제까지 따지다니, 너무 멀리 간 것 아니냐고? 구조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지나친 해석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의 여러 재난과 사고가 단지 몇몇 사람의 잘못이나 우연이 아니라 명백히 ‘체제’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서리풀 논평 - 이대목동병원 사건이 ‘일벌백계’가 되려면). 체제는 스위스 치즈의 여러 구멍을, 또는 아예 치즈 바깥까지 결정한다.

체제 문제인 한 대안은 아직 미숙하다.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라는 것이 더 어렵지만, 따지고 보면 미세먼지나 기후변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또는 정치든,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는 문제를 어떻게 포착하고 대응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한국인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는 길이 있을까?

세계화 시대에 한 나라의 국가권력이나 정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헝가리의 신자유주의 체제와 그에 바탕을 둔 사회 질서에 대한민국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과관계와 논리가 비교적 분명한 미세먼지 건에서도 그토록 무력한 것이 주권인데.

아마도 유일한 방법은 ‘밑으로부터’ 시민이 연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식이든 이념이든 운동이든, 이 길을 통하지 않는 해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외국 여행만 하더라도, ‘공정여행’과 같은 국제적 시민 연대가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여러 정치적 연대가 작동하는 것도 한 가지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이고 영리 중심의 건강 정책과 제도, 통상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로 ‘민중건강운동(People’s Health Movement, PHM, 홈페이지 바로 가기)’이 있다. 이들은 각 나라 안에서, 때로는 연대하여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규제 완화에 반대한다.

공정여행이나 민중건강운동이 당장 다른 주권국가에, 그것도 체제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역부족이다. 다뉴브 강을 다니는 선박의 안전규정을 강화하는 데도 무력하다. 언젠가 지식이, 그 지향이 힘이 될 것이나 아직은 미약하다.

그래도 한 가지, 시민은 ‘수’가 곧 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사고가 나고 하루 1천 명이 예약을 취소했다고 하지 않는가? 속생각이야 어떻든 다수가 움직이면 그들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모으고 또 모이면, 체제를 움직이는 데도 무력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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