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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톡톡] '한센병 환자' 비유...통각(痛覺)보다 혐오·차별 무감각한 게 더 위중해

[라포르시안] 질병의 역사를 보면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병명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당사자에게는 '주홍글씨'처럼 새겨지고 사회적 편견을 불러온다.

나병, 간질, 정신분열병 등의 병명을 보면 더 그렇다. 이들 질병은 현재 한센병, 뇌전증(腦電症), 조현병(調絃病)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니다. 오랜 시간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쳤고, 또 관련 법개정이란 절차를 거쳐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질병을 부르는 명칭이 달라졌다고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랜 시간 불리면서 각인된 것처럼 또한 그걸 지우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특정 질병을 향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도 그치질 않는다.

한 정치인이 '한센병'을 정치적 논리를 담은 모멸적인 언어로 사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6일 YTN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하던 중 '한센병'을 끌어들였다.

김현아 의원은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고통을 못 느끼는 병도 있다. 한센병이다. 한센병은 상처가 났는데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 방치해서 그것이 더 커지는 것이다. 만약에 (문재인)대통령께서 본인과 생각이 다른 국민을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 국민의 고통을 못 느낀다고 하면 저는 그러한 의학적 용어들 쓸 수 있다고 생각이 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한센병 환자가 통각을 상실하게 되는 질병 특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다. 국민의 혐오를 부추기고, 특히 한센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현아 의원이 우리나라에서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더라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1950∼60년대 소록도에서는 섬을 직원지대와 병사지대(病舍地帶)로 나누고 약 2㎞ 정도의 철조망을 쳐 분리했다. 병사지대 원생에게서 자녀가 태어날 경우 전염을 우려해 직원지대에 있는 '미감아보육소'에 격리시키고, 부모와 자녀들은 이 경계선 도로 양편에 각각 서서 한 달에 한 번만 면회를 허용했다. 면회시 미감아동과 부모는 서로를 만지거나 안아 볼 수가 없었고, 특히 전염을 우려해 자녀들은 바람을 등지고 부모는 바람을 안고 면회를 했다. 이런 면회 장소를 원생들은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愁嘆場)'이라 불렀다. <사진 및 설명 출처 : 국립소록도병원 홈페이지>

1916년 2월 '소록도자혜의원'으로 문을 연 국립소록도병원은 우리나라 한센인들이 겪은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센인에 대한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 등을 실시한 '한센인 격리·폭행 사건'을 비롯해 '84인 학살 사건', '오마도 간척사업 사건' 등 무수히 많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한센인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다.

'한센인 격리·폭행사건'은 국립소록도병원의 한센인 입소자가 1945년 8월 16일부터 1963년 2월 8일까지 수용시설에 격리 수용되어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 등을 당한 사건이다.

'84인 학살사건'은 1945년 8월 20일을 전후해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소록도 갱생원 직원에 의한 폭력으로 한센인이 사망, 행방불명 또는 부상을 당한 사건을 말한다.

'오마도 간척사업사건'은 1962년 7월 10일부터 1964년 7월 25일까지 전남 고흥군 도양면 봉암 반도와 풍양반도를 잇는 간척공사를 위해 한센인이 강제 노역을 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소설가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한센인에 대한 대표적인 인권침해 중 하나인 단종·낙태 강제 수술은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근거로 1990년대 전후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한센인 인권침해 사건은 50년 가까이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이 이뤄지지 않다가 지난 2007년 10월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이듬해인 2008년 10월 시행에 들어가면서 피해구제의 물꼬가 터졌다.

지난 2009년 국무총리소속으로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적으로 피해사건 신고·접수 및 피해자 조사를 시작했다.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의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신고는 2009년 3월부터 2013년 4월 말까지 6차례 연장 접수를 실시해 최종적으로 1만38건이 접수됐고, 이 중 6,462건(신고당시 사망 1,758)이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다.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2011년부터 한센인 539명이 국가를 상대로 강제 단종(斷種)과 낙태에 따른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한센인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한 지 5년여 만인 2017년 2월에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한센인 19명의 국가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의 상고를 기각하고 낙태 피해자 10명에 4,000만원, 단종 피해자 9명에 3,000만원의 배상금과 그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국가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라며 "그에 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지 않았다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에서 보듯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우리 사회의 다수가 소수에게 지속적으로 자행하는 억압과 다를 바 없없다. 어렵게 병명이 바뀐 이후에도 여전히 고약하고 인권침해적인 스티그마((stigma)가 남아 있다. 이번 일처럼 한센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막말은 오랜 시간의 노력을 허무는 악영향을 끼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혐오와 차별에 무감각한 게 더 위중하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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