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의원,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발의...안전한 임신중지 보장 의료체계 개선도 필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낙태죄 폐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낙태죄 폐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라포르시안]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첫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낙태죄 폐지' 1호 법안이 나온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지난 1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낙태죄 폐지 법률안 발의 기자회견을 했다. 

이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국회에 입법 의무가 발생했다"면서 낙태죄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과 모자보건법 개정안 발의 소식을 알렸다. 

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27장 '낙태의 죄'를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바꾸고 기존 자기 낙태죄와 의사의 낙태죄를 삭제했다.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했다. 

특히 '태아를 떨어뜨리다'라는 의미를 갖는 낙태라는 단어는 삭제했다. 

이 의원은 "이 형법 개정안은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한 임부도 시술한 의료인도 죄인이 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경우 헌재 결정의 취지대로 임신 중기인 22주까지는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위해 기존 사유 외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시켜 실질적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도록 했다. 

임신 14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의원은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3개월 내의 임신중절이 94%를 차지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기간 내에 임신의 중단과 지속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 행해지는 인공임신중절은 의료적으로도 매우 안전하다"면서 "이번 헌재 결정에서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3인은 '임신 제1삼분기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개정안이 헌재판결의 취지에 부합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모자보건법상의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인 내용도 변경했다. 

기존에는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했지만 여성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는 낡은 사고의 산물이라고 보고 삭제했다. 

또 기존 법에서는 강간과 준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만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실제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인공임신중절이 불가능해 지는 문제가 있고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이나 위력에 의한 간음 등 다른 성폭력 범죄로 인한 임신은 임신중절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 '성폭력범죄 행위로 인해 임신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이 의원은 "국회는 헌재 결정의 취지와 시대 변화에 부응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입법 조치에 나서야 한다"면서 "이번 법률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이다'라는 판결문의 핵심취지를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과 관련 이 의원은 "낙태죄를 폐지하면 마치 성형수술 하듯 손쉽게 임신중절을 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여성의 삶에 대한 철저한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여성의 자기결정과정의 깊은 고뇌와 판단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임신중절의 선택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 드린다"고 했다. 

낙태죄를 폐지하면 출산율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도 반박했다. 

이 의원은 "유엔경제사회이사회가 2016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임신중지를 법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나라와 합법인 나라의 임신중단율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며 "임신중단율은 낙태죄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내실 있는 피임교육과 육아 복지 정책에 달려다"면서 "국가가 해야 할 일도 그것"이라고 지적했다. 

종교계의 우려에 대해서도 "안전한 임신 중지는 여성의 생명권과 기본권"이라며 "종교계의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현명하게 이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여성과 태아가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아기 아버지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임신과 출산의 공동책임을 받아들이는 의식과 실천이 이루어지도록 합당한 제도를 마련해 주실 것을 당부한 말씀을 잘 새기고 그러한 법과 제도를 함께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안전한 임신중지 위한 의료인 재교육·의료체계 갖춰야"

한편 정부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를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6일 제15회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부는 헌재 결정의 취지, 각계각층의 의견, 해외 입법례 등을 고려하며 국회와 협조해 관련 법령의 개정 등 후속조치를 준비해야겠다"고 당부했다.

이 총리는 "헌재 결정에 대해 여성계·종교계·의료계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의견들이 새로운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합리적으로 수렴되도록 각계가 함께 지혜를 모아주시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되도록 정부도 세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의료전문가들도 낙태죄 폐지 결정에 따라 여성의 임신중지를 보장할 방법을 제공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특히 헌재 결정 이후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가 정착되기 위해 의료체계에 필요한 첫 번째 사항으로 의료인 및 예비의료인에 대한 교육 필요성이 제기됐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의료인 및 예비의료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낙태죄로 인해 한국에서는 오랜 기간 안전한 임신중지의 제공이 어려웠고,  ‘인공임신중절개조’가 의과대학 학습목표에 있음에도 한국 의료진은 임신중지에 대한 최신 지견과 안전한 술기를 배운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인의협은 "한국은 소위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시술할 때조차 임신중지의 최신 지견에 맞지 않아 사용을 권고하지 않고 있는 ‘소파술’의 비중이 높다"며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현재 권고되는 약물과 흡입술 또는 배출술은 합병증이나 다음 임신에 끼칠 수 있는 위해의 위험이 낮다. 따라서 안전한 임신중지의 제공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의료인 재교육 및 의료부문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병원과 공공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를 제공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의협은 "한국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도 않고, 제공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공공의료기관을 통해 교육받은 의료진이 행하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해야 하며, 수련을 담당하는 대학병원에서 임신중지를 다루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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