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재난 대비, 더 잘해야 한다

[라포르시안] 이게 얼마 만인가, 늘 비판과 공격 일색이던 재난 대응에 칭찬이 다 나온다. 개인과 시스템 모두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데 우리도 동의한다. 인명 피해가 적은 것이 무엇보다 다행스럽다. 피해를 본 주민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그리고 산불 진화에 애쓴 모든 이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고생한, 그러면서도 구구절절 사연을 가진 많은 개인을 다시 주목한다. 소방공무원, 산림청의 비정규직 산불진화대, 군 사병이 그들이다. 이번 수고도 수고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이들에게  의지해야 하면, 당연히 그만한 대우를 해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많은 사람과 그들의 노동을 다시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사람값’이 제일 싸다는 소리가 그냥 나올까, 돈과 자본이 사람과 생명 위에 있는 이 지독한 가치의 전도를 조금이라도 흔드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사람이 평소 하던 대로 해도 제 역할을 제대로,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다. 전국의 소방공무원이 각자 의지가 충분해도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그냥 되지 않는다. 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사회적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사후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원봉사나 성금보다 공식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당국은 의료기관이 산불로 없어진 약을 재처방해도 진료비 삭감을 당하지 않는다고 안내했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이만큼이라도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는 정부 조직, 매뉴얼, 훈련, 리더십 등이 모두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각각이 어떻게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결과만 보면 과거와 비교하여 대응 시스템이 한 걸음 진보한 것으로 보인다.

겉보기나 ‘결과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시스템이 차근차근 구축되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우리는 여러 차례 ‘재난대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 9월 경주에 지진이 났을 때 낸 의견에서 일부를 따온다(서리풀 논평 바로 가기).

“제대로 된 대비 시스템을 구축하라. 이번에는 지진이니, ‘지진용’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지 말라. 대규모 화재, 또 다른 감염병, 비행기나 배의 사고, 홍수, 제2의 삼풍이나 성수대교 사건, 그 모든 것이 다음에 닥칠 위험이다. 모든 것에 대한 대비 시스템이어야 한다.

....(중략)...

‘통합형’ 재난 대비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것을 특히 강조한다. 어떤 재난과 사고든, 수많은 정부 부처, 공공과 민간 조직, 여러 이해당사자가 간여한다. 좀 더 일반적으로 표현하면, 재난과 재난 대비에는 개인, 조직, 사회, 거기다가 자연이라는 네 요소가 서로 관계를 맺고 작용하여 결과를 빚어낸다. 그 어떤 대비와 조치도 통합적이지 않으면 ‘무효’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재난 대응을 환호하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그 사이에 통합형 재난대비 시스템은 얼마나 진전되었을까? 앞서 ‘결과적’이라고 했지만, 큰 불행을 피하는 데는 혹시 ‘천우신조(天佑神助)’라도 있지 않았을까? 아직 곳곳에 틈이 있고 영 부실한 구석이 있으니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정보를 얻을 수 없거나 거동하기 불편한 장애인에 대한 어떤 대책도 따로 없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시스템 부실이다. 장애인 언론매체 <비마이너>가 자세하게 전한 실상은 그냥 고통이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란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박 씨는 중증뇌병변장애로 손 사용이 어려워 대부분의 움직임에 발을 사용한다. 어렵게 문자를 확인했더니, 그가 사는 집 근처까지 불길이 확산했다는 내용의 문자가 와있었다....재난문자를 본 그는 더는 집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고무줄로 된 추리닝 반바지만을 간신히 입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을 나왔다.”

“ㄱ 씨는 “상황이 그렇게 심한지 모르고 있다가 활동지원사가 ‘불길이 가까이 왔으니 피해야 한다’고 알려줘서 피할 수 있었다”면서 “옆 아파트까지 불길이 들어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3층에 산다. 중증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그는 엘리베이터 없이 지상으로 내려갈 수 없다. 그러나 그날 밤, 대피하는 사람들로 엘리베이터 이용자가 너무 많아서 3번이나 놓친 후에야 간신히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나 빈곤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픈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같이 있는, 그것도 혼자서는 잘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은? 그래도 인명 피해가 거의 없었으니, 말 그대로 다행이고 천우신조이다. 각자도생 또는 공동체 스스로 위험을 모면한 것일 수도 있다.

<비마이너>의 보도대로면, 현재의 재난대응 체계는 장애인에 대한 관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정상’만을 전제하는지도 모른다(구성되는 것으로서의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구분은 한둘이 아니다).

“장애인 재난 대책 문의에 강원도 화재 사건을 총괄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보건복지부 비상안전기획관에 공을 넘겼고, 복지부 비상안전기획관은 “장애인 재난 대응 메뉴얼이 딱히 있진 않다”면서 “행정안전부에서 마련했다고는 하는데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
속초시 주민생활과 장애인복지담당자는 “장애인에게 따로 적용하는 메뉴얼은 없다. 일반 주민하고 똑같다”면서 “중앙정부로부터도 특별히 전달받은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담당자는 “관내 장애인협회나 센터 통해서 도움받은 것은 있다. 어제 한 시각장애인분이 대피할 때 생활이동지원센터 협조를 받아서 대피시켰다”고 전했다.“

이번 재난대응으로 장애인과 독거노인도 ‘선량한 국가’ 또는 ‘정상국가’를 인식하게 되었을까? 혹자는 이제 기초를 놓는 단계니 너무 채근하지 말라고 할지 모른다.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모든 재난은 인공적이며 인위적이다. 자연재해도 사람을 거치면서 사회적 ‘재난’이 되고,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불평등과 차별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경주에 지진이 났을 때 우리는 재난의 불평등 구조를 절감했다(서리풀 논평 바로 가기).

“재난의 불평등 구조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다음 3단계를 거친다. (1) 불평등한 발생과 노출, (2) 불평등한 대응(대비), (3) 불평등한 결과(피해). 불평등한 노출과 발생은 자연재해보다는 인공재해 쪽이 두드러지지만. 여러 요소가 뒤섞이고 결합할 때 자연과 인공을 나누는 것은 부질없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핵발전소 사고는 결국 하나가 아닌가, 이 지역 농어민에게 불평등하게 실현된 재난이자 재해 피해다.”

이번 기회에 시스템은 더 나아져야 한다. 아니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재난에 대비하는 시스템은 처음부터 불평등의 구조를 전제한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이미 있는 것이든 새로 만드는 것이든 이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수밖에 없다. 익숙한 행정 용어를 쓰자면, 일제 재점검.

모든 영역과 단계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인식하고 그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경주 지진에 이어 이번에도 ‘형평성 주류화’를 주장한다. 

“형평성 주류화는 모든 영역과 모든 수준에서 입법, 정책, 사업을 포함하는 모든 행동 계획이 서로 다른 집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평가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영역의 정책과 사업을 계획, 실행, 모니터링, 평가함에 있어 서로 다른 집단, 계급, 계층의 관심과 경험을 필수적인 차원으로 통합하기 위한 전략이다….이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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