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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버닝썬·김학의·장자연 사건'...젠더 권력의 불평등서 비롯[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성OO’이 아니라 ‘살인’이다

[라포르시안] 일주일 내내 언론을 뒤덮는 이 추악한 사건들을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성폭력, 성접대, 성매매, 성범죄,...각기 다른 시기에 벌어진 일이 마침 한 시기에 모였다. 그나마 한꺼번에 드러나 교훈을 얻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먼저, 이 모든 사건은 ‘생명’과 관련된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사람이 죽고, 다쳤으며, 성폭력에 희생되었다. 마약과 술, 폭력은 그냥 부록처럼 따라붙는다. 불법 촬영의 피해자가 되어 내내 고통을 받는 정도는 오히려 사소한(?) 축에 속하니 현실이 영화보다 더 참혹하다. 단톡방에서 벌어진 언어폭력은 늘 있는 일상사 같은 것이라 그냥 ‘희롱’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더 큰 문제는 어떤 이들은 이를 으레 있는 일로 치부하는 것, 그러니 거리가 화성과 금성처럼 멀다. “이런 식이면 안 걸리는 사람이 없다”라고 불만이라니, 다른 생각, 가치관, 문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만난 꼴이다. 생명에 대한 감각이 다르면 그 차이는 차라리 존재론적이 아닌가.

일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여러 뿌리가 있고 우리 모두 이를 모르지 않는다. 일이 있을 때마다 성의 상품화, 심각한 성차별, 음주와 유흥, 직장 문화가 등장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왜 나아지지 않고 되풀이되는지는 속 시원한 답이 없다.

중언부언, 하지만 반(反) 생명을 부르는 몇 가지 ‘근본’ 원인을 다시 호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당장 당사자의 삶이 나아지는 데는 역부족이겠으나 어느 해결 방법이든 (멀리서라도) 근본 원인과 만나야 결국은 진보한다.

첫째, 개인 문제를 넘어 항상 ‘권력’이 개입한다는 점. 정치, 돈, 상징, 연령, 신체와 체력, 어느 하나도 권력 차이와 불평등에 무관하지 않다. 아, 젠더(성) 권력은 상수다. 모든 권력 불평등의 출발점이자 격차를 더 키우는 강화요인이다.

권력의 차이를 자꾸 개인의 속성으로 돌리려는 것, 이 또한 불평등한 권력이 작동한 결과다. 어느 연예 기획사가 더 나으니, 누가 인성교육에 더 열심이니, 권력 문제를 이렇게 해소하고자 하는 쪽이 바로 권력이다. “그렇지 않은 남성도 많다”거나 “우리 회사와 내 상사는 다르다”고 해야 기득권에 도전하지 않고 개인 ‘윤리’와 ‘교육’에 힘쓰지 않겠는가.

둘째, ‘거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갈 데까지 간 신자유주의적 시장의 힘은 도대체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니 사실 두렵다. 각자 영혼까지 내놓는 극단적 상황이 오지나 않을까?

상품화란, 성을 샀다, 돈벌이가 되면 마약도 서슴지 않는다, 청부업자에게 돈을 주고 사주했다, 돈으로 사건을 막았다, 언론이 스캔들로 먹고산다, 불법 영상을 유료로 판매했다, 케이팝이 위축된다,...이런 차원을 넘는다.

성, 범죄, 법치, 언론 보도의 상품화만 해도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지만, 놀라지 않고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 공감하고 더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상품화를 밀고 가는 ‘체제’가 기대하는 효과다.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장담하건대 이번 일들이 끝이 아닐 것이다. 다르게 또 비슷하게, 돈과 상품이 되는 한, 그리고 우리의 영혼과 가치가 상품화에 굴복하는 한, 사건과 사고는 되풀이될 것이다. 그를 해석하고 대책을 내는 일조차 상품으로 팔릴 것이 뻔하다.

셋째, 모두가 아는 대로 노골적이고 집요한 젠더 차별과 불평등이 근본 원인 중 하나다. 권력 불평등 그 자체가 내장된 데다 권력과 불평등은 상품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성과 돌봄 노동은 상품화되어도 거의 백 퍼센트 여성이 차지한다.

여기에 개인을 가져다 붙이는 것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다른 일자리도 많은데 왜 그런 일을 하느냐” 또는 “싫으면 그만두지 왜 참느냐”고 하는 식의 ‘충고’와 ‘가르침’이야말로 바로 그 젠더 권력이 불평등함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증거다.

마지막으로 개인과 구조를 잇는 문화를 짚는다. 이 문제에서 문화는 저 완강한 구조와 개인 사이에 위치하면서 구조의 힘과 개인의 대응을 변형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완전히 같은 조건에서도 어떤 조직의 문화는 젠더 차별이 더 심하고 어떤 곳은 덜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직장과 조직, 노동, 젠더, 삶의 질, 회식과 음주, 성에 대한 문화가 이런 구실을 한다. 근본적으로 구조에서 연유하는 만큼 현재는 그 제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개인이 문화를 바꾸어내기에는 힘에 부친다.

개인이 노력, 아니 투쟁하면 ‘조금’ 바꿀 수도 있는 점이 문화의 힘이다. 몇 년 사이 들불처럼 번진 젠더 차별의 문제 제기와 요구는 개인과 그 개인들이 모여 문화를 바꾸어내려는 투쟁이다. 민주주의 문제는 훨씬 어렵고 더디다.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돈과 노동에 대한 문화 그리고 그것이 다른 곳에 미친 영향에 이르기는 까마득하다. 그 어떤 대상도 굴복하게 하는 이 권력의 압도적 힘은 앞서 이미 말했다. 문화 ‘운동’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지 단언하기 어려우나, 이번 사건들을 종합하면, 아직 멀었다.

법과 처벌로 어떻게 하는지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 하지만 반대 의견 두 가지는 분명하게 밝혀둔다. 먼저, 우리는 이 문제를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일로 자리매김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

이 땅 모든 여성의 생명이 달렸다는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 피해자 시각에서 보는 사건의 본질이 이를 웅변한다. 그들은 다치거나 죽었고, 건강을 해치고 불안에 떨며 대부분 평생 고통을 겪는다. 이것이 생명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을 생명이라 부를 것인가.

여성을 말했지만 이는 다시 보편적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것이다. 생명을 보자고 하는 말은 단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억압과 고통에 시달리고 생명에 대한 위협과 위험에 노출된 모든 ‘약자’에 대한 요구이자 다짐이다.

일부 개인의 일탈로 보는 시각도 반대한다. 누누이 주장한 대로 이는 권력의 문제며 신자유주의 시장의 횡포가 빚어낸 참사다. 젠더 불평등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으나 많은 사람은 귀 기울일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나마 여지가 있는 문화조차 개인이 어떻게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피해와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는 작은 문제 제기도 하기 어려운 상황,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약자는 훨씬 더 위험하다. 개인은 흔히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언제라도 구조를 바꾸어내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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