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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폭행 근절, 입법만능주의 빠져 '누더기 의료법' 될까 우려[뉴스&뷰] 1~3월에 진료실 안전 법안 20건 넘게 쏟아져...가중처벌 법개정 됐지만 효과 의문
안전한 진료환경 해치는 '저비용 노동착취' 구조적 문제 방치
고신대복음병원은 지난 3월 7일 병동 내 소란과 난동행위 대응체계 구축을 위한 훈련을 실시했다. 병원내 폭행 사건이 잇따르면서 진료 중 위기상황 대처 능력 향상과 환자와 의료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훈련을 실시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라포르시안] 의료법 개정안이 쏟아지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법개정 경쟁을 벌이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입법만능주의'에 빠진게 아닐까 우려가 든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은 총 31건에 달한다. 이 중 1건만 정부입법 발의이고 나머지는 모두 의원입법으로 추진된다.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 중에서 20건 정도가 진료실 안전과 관련된 내용이다.

작년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의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진료실 안전과 병원내 폭력 근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관련 입법이 쏟아진 것이다.

안전한 진료실 환경 조성과 폭력 근절을 목적으로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반의사불벌죄 폐지 ▲진료실 폭력시 처벌 강화(벌금형 삭제·징역형만 규정, 형량하한제 신설) ▲주취자 처벌 강화 ▲진료실 안전 인력·시설 설치 의무화 ▲진료거부권 도입 등이다.

심지어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뿐만 아니라 모욕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가중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지난 19일 폭행·협박뿐만 아니라 의료인 등에 대한 모욕도 금지하고, 의료인을 비롯한 병원 내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모욕·폭행·협박 시 가중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1일에는 환자나 보호자가 위력으로 의료인의 진료행위를 방해할 경우 정당한 진료거부 사용에 해당한다는 의료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2019년 1월부터 3월 사이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 이 중 상당수가 진료실 안전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표 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갈무리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해 꼭 필요한 병원내 인력과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다소 모호한 처벌 규정을 명확하게 하는 법개정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일부 개정안은 오히려 의료인과 환자 간 신뢰를 무너뜨리고, 갈등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반의사불벌죄 폐지와 의료인 폭행시 벌금형을 삭제하고 징역형만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

당초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둔 취지는 의료 관련 분쟁에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를 우선적으로 도모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폐지할 경우 경미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반드시 처벌하도록 하는 건 과하다는 지적이다.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유지하더라도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이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 진료실 안전을 높이는 데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종희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의견을 통해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삭제하면 폐상해·중상해·사망 등과 같이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발생하지 않은 경미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일률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의료인 폭행시 가중처벌토록 의료법이 개정된 상황인데 여기에 더해 처벌 규정만 강화한다고 진료실 안전이 보장될지도 의문이다.

의료인 폭행시 가중처벌하는 법안에 대해 박종희 수석전문위원은 "현행 의료법 은 2016년 5월 개정에 따라 의료인 폭행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어 이미 형법 대비 가중처벌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환자단체에서도 잇따르는 의료법 개정 추진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해 환자가 의료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상대방 의료인이 이 사과를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경찰·검찰의 수사와 판사의 재판을 받아 징역형 이상의 형사처벌까지 받도록 하는 것이 과연 진료실의 안전과 폭력을 근절하는 적절한 방법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환자단체연합은 "벌금형을 삭제하고 오로지 징역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은 과잉입법일 뿐만 아니라 경찰·검찰·판사가 징역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는 것이 과도하다고 판단했을 때 검사는 기소유예를, 판사는 선고유예 또는 무죄판결을 하는 모순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끊이질 않는 의료인 폭행, 처벌이 약해서일까

의료인 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면 진료실 안전과 폭력 근절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이미 응급의료법과 의료법 개정을 통해 병원내 폭력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개정이 수 차례 이뤄졌지만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진료실과 응급실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이 되는 열악한 의료환경을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내에서 의료인 폭행 사건이 끊이질 않는 배경으로 저비용에 기반한 열악한 의료환경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내 의료시스템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과 비교할 때 더 적은 의료인력으로 훨씬 더 많은 병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민 1인당 의사의 외래진료 횟수와 같은 의료이용률은 월등히 높은 편이다. 즉 저비용 기반의 '박리다매' 의료공급시스템이다.

만성적인 인력부족으로 살인적인 업무강도에 시달리며 환자에게 눈길 한번 주기 어려울 만큼 지친 의사와 간호사로부터 환자들은 자신의 질환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보장받지 못한다.

저수가로 인한 박리다매식 의료서비스 고착화로부터 비롯된 의료인과 환자 간 의사소통 부재, 의료진의 설명부족과 불친절 등은 안전한 진료환경을 해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병원이 적정 의료인력을 채용해서 환자에게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영을 유지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할 때 의료인과 환자 모두에게 보다 안전한 진료환경이 구축될 수 있다는 점은 누누이 제기돼 왔다.

이런 근본원인을 방치한 채 의료인 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개정에만 매달리는 건 '입법만능주의'이고, 의원들의 법안발의 실적 경쟁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의료인 폭행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례별로 처벌을 강화하는 과잉 입법이 이뤄진다면 의료법은 형법과의 형평성을 상실하고 '누더기 법'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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