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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 젠더 관점 빠진 한국의 ‘여성 건강지표와 건강정책’[뉴스&뷰] 젠더 관점 결여된 생물학적 특성 위주의 건강지표
"여성 건강문제를 남성 관점서 파악...재생산과 성건강 영역 건강지표 부족”

[라포르시안] 오늘(8일)은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유엔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2월28일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 2만여명이 뉴욕 거리를 행진하며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권과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를 요구한 데서 비롯됐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성평등은 여전히 추구해야 할 중요할 목표 중 하나다. 각종 질환 발생률에 있어서 교육수준과 경제적 수준에 따른 남녀 간 건강불평등 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학력이 낮을수록 여성암 사망률이 높아진다거나 학력과 소득 수준에 따라 남성보다 여성한테서 당뇨병 및 고혈압 유별률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 등이 대표적이다.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2015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연구결과. 표 제작: 라포르시안

건강보험 보장률에서도 성별로 차이가 난다. 지표상으로 보면 현행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주로 고령층과 남성 쪽에 보장성이 더 집중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자료에 따르면 2015년도 기준으로 성별 및 연령별로 모두 따졌을 때 보장률이 가장 높은 85세 이상 남성(72.3%)과 가장 낮은 19~44세 여성(47.5%) 집단간 보장률 격차는 무려 24.8%p에 달했다.19~44세 여성의 보장률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고, 여성질환에 대한 보장성도 낮기 때문이다.

그나마 건강보험 보장률의 성별 차이는 전반적인 보장성 확대로 점차 개선되면서 2017년도 기준으로 19~44세 여성 집단의 보장률이 54.2%로 높아졌다.

중요한 건 건강이나 질병 관리 및 예방 정책에 있어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젠더(Gender, 사회학적 의미의 성)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약품 연구개발 단계부터 여성 차별은 시작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남성과 여성의 건강이나 질병에서의 차이를 고려해 보건의료분야 정책이나 연구에서 젠더적 관점을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여성의 건강문제에 관한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줄 수 있는 '여성 건강지표 및 통계'의 생성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미국에서는 보건부와 보건의료자원 및 서비스국(HRSA) 주관으로 2001년부터 여성 건강통계집인 ‘Women's Health USA’를 매년 출간하고 있다.

캐나다는 여성의 지위를 알아보기 위한 포괄적인 통계로 ‘Women in Canada: A Gender based Statistical Report’를 발간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다루는 내용 중 ‘Women in Health’ 부분에서 여성건강에 대한 분석 결과를 제시한다.

미국과 27개 유럽연합 회원국의 젠더 전문가들과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기초 과학, 공학 및 기술, 환경, 식품과 영양, 건강 및 의학, 운송 및 수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시하고 있는 젠더 혁신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하는 사이트 초기화면 갈무리. http://genderedinnovations.stanford.edu

반면 국내에서는 여성 건강지표나 통계 생성이 크게 미흡해 건강정책에 있어서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과 젠더적 요소에 대한 고려가 크게 미흡한 편이다.

한국에서는 여성에 대한 건강통계 생성이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2003년에 처음 시도된 바 있으며, 이후 여성 건강지표나 통계가 지속으로 산출되지 못한 채 2013년에 한국여성 건강통계를 산출하는 연구가 수행됐다.

이후 2015년에 질병관리본부가 여성건강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한국여성 건강통계에 산출된 주요 여성 건강지표를 중심으로 '수치로 보는 여성건강'을 출간했다.

여성과 남성 간의 건강상태 차이 및 그 원인에 대한 연구나 관련 통계 지표의 부족은 성별 건강에 대한 인식 부족을 낳고, 이는 다시금 정부의 보건의료 예산 및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고려대상에서조차 제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남순 연구위원은 2016년 발간된 <보건복지포럼> 5월호에 기고한 <한국의 여성 건강지표: 수치로 보는 여성건강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통해 "여성의 생애주기에서 아동과 청소년의 건강문제에 대한 지표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으며, 재생산과 성건강 영역에서 유배우자 여성이 아닌 다른 여성에 대한 건강지표가 부족했다"며 "또한 여성건강에 중요한 문제이지만 성형, 성폭력, 배우자 폭력과 관련된 건강문제에 대한 지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여성이 의료이용에 대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지표가 개발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보건의료 분야 연구에서 '젠더 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얻은 결과들을 건강 정책, 사업, 서비스 등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생명의과학센터 심혈관희귀질환과는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백희영 교수와 공동으로 펴낸 <보건의료연구에서의 젠더 혁신>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보건의료 분야 연구에서 선진국의 젠더 혁신 사례와 정책 방향를 짚어보고 국내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그 방안을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미국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연구에 젠더 관점의 적용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론다 쉬빙어(Londa Schiebinger) 교수는 기초 및 응용 연구 분야에 성과 젠더를 고려한 분석 방법을 도입해 '젠더 편견'(bias, 비뚤림)을 제거함으로써 연구의 우수성과 질을 높이는 과정을 개발했다. 쉬빙어 교수는 이를 '젠더 혁신'이라고 정의했다.

미국과 27개 유럽연합 회원국의 젠더 전문가들과 각 분야의 연구자 약 60여명은 젠더 혁신 연구방법을 연구에 적용하기 위해 수년간의 협력 연구인 '젠더 혁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수행된 보건의료 연구에서의 젠더 혁신 방법을 활용한 사례로는 여성 심장질환 연구를 꼽을 수 있다.

여성 심장질환 연구의 경우 여성의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이나 심장병 유병률은 남성 못지않게 높지만 임상연구가 대부분 남성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비롯됐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여성에서 허혈성 심장 질환이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허혈성 심장질환은 남성의 질환으로 인식돼 남성의 병태생리학적 특징과 예후를 기초로 임상에 적용되는 기준이 마련됐다.

미국과 유럽연합 회원국의 젠더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허혈성 심장질환의 진단과 치료에서 간과된 성과 젠더 관점을 고려한 젠더 혁신 방안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허혈성 심장질환의 병태생리학적인 측면을 재정의해 여성의 특징적 증상을 이해하는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진단기술을 개발하고, 남녀 간 증상 차이를 이해하고 심장질환에서 에스트로겐의 역할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자는 게 제안의 핵심이다.

이처럼 여성 건강문제를 파악하고 건강형평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성 건강지표에 관한 연구와 통계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건의료연구에서의 젠더 혁신>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분야에서 연구자들이 젠더 혁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며, 연구에서 젠더 혁신을 적극 활용하고 결과 활용의 적실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며 "모든 보건의료분야 연구에서 젠더의 영향을 고려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이를 연구비 지원 및 결과 발표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정책 수립·집행과정에서 성인지적 제도 개선과 정책 실행을 지원하기작년 12월 '성평등 자문위원회'를 발족했다.

박능후 장관은 "성평등 자문위원회 발족은 복지부가 성평등 관점이 반영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며 "위원회에서 논의된 사항들이 잘 추진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살펴보겠다"고 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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