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김필순·주현칙·이범교 등 다양한 분야서 독립운동 헌신

[라포르시안] 올해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노력과 활동을 재조명하는 일이 적극 펼쳐지고 있다.

앞서 의료계에서도 대한의사협회와 '한국의사100주년기념재단'을 통해 의사출신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사업을 벌였다.

이를 통해 의협은 지난 2016년에 제97주년 삼일절을 맞아 50인의 의사 독립운동가(의학도 포함)를 발굴해 발표한 바 있다.

의협이 발표한 독립운동가는 국가보훈처가 공훈심사를 통해 훈격이 확정된 이들로, 50인 명단에는 서재필 박사처럼 많이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김필순, 주현칙, 이범교 선생 등 활약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한 이들이 다수 포함됐다.

일례로 김필순 선생(1878~1919)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면허의사가 됐다.

도산 안창호와 결의형제를 맺고 1907년 신민회 조직 당시 회원으로 활동하다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해 이동녕, 전병현 등과 함께 서간도 지역의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힘썼다. 이후 내몽고 치치하얼에 수십만 평의 토지를 매입하고 이곳에 100여 호의 한인들을 이주시켜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의 후방 기지를 개척하고자 노력했다. 199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주현칙 선생(1882~1942)은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 결사인 신민회가 창립되자 평안북도 지회에서 활동한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 후에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 평안북도 조사원에 임명되고, 임시정부 재무부 참사와 대한적십자회 회원 등으로 활약했고, 1927년 귀국한 후에는 사재를 털어 대동고아원을 창설했다.

주현칙 선생은 1938년에는 '동우회사건'에 연루돼 약 2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는 미국선교사를 통해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송금한 사실이 탄로나 검거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60세를 일기로 유치장에서 순국했다.

이범교 선생(1888-1951)은 대구에서 동산병원을 개업해 의료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시위에 참가하고 일경의 지명수배를 피해 상해로 망명했다. 1919년 임시정부에서 설립한 '교통부' 위원으로 피선돼 정보의 수집 및 검토, 교환, 연락과 기밀문서 교환 등 통신업무와 함께 독립운동 자금 수집 활동을 했다.

1921년에는 흑해사변으로 이만시를 탈출한 이범석과 함께 약 6개월간 배영학교에서 훈련부장으로 재직하며 2세 교육에 전념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의사100주년기념재단은 지난 2017년에 '열사가 된 의사들-의사독립운동사'를 펴냈다.

이 책에는 한국의사100년기념재단이 발굴한 의사독립운동가 중에서 '독립신문'을 발간한 서재필 박사를 비롯해 ‘몽골의 신의(神醫)’로 알려진 이태준, 온 집안이 독립운동가였던 김필순, 멀리 독일까지 건너가서 '압록강은 흐른다' 등 주목할만한 저서를 남긴 이미륵, 독립운동을 하면서 공중보건의 기틀을 세운 김창세, 의사출신으로서 일제하 여성운동에 앞장섰던 최정숙, 백정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뛰어넘어 의사가 된 뒤 독립운동에 헌신한 박서양 등 의사출신 독립운동가 10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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