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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의료인의 숭고한 희생?...노동력 갈아 넣기는 그만![뉴스&뷰] 퇴근없는 '슈퍼 의사' 아닌 근로기준법 지키는 의료환경 구축에 나서야...적정 의료인력 확충 가능한 수가·의료전달체계 확립 절실

[라포르시안] 최근 2명의 의사가 근무 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생기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재난의료상황실에서 근무를 하던 중 숨진 고 윤현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그리고 당직 근무 중 숨진 채 발견된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현재 명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과로사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고 윤한덕 센터장은 일주일에 5~6일을 귀가하지 않는게 예삿일이 돼 버렸고, 60년이 된 낡은 벽돌건물에 자리한 센터장 집무실의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근무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한 길병원 전공의는 24시간 당직근무에 이어 다시 12시간 추가근무에 들어간지 2시간여 만에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윤한덕 센터장이나 길병원 전공의 사망으로 의료인의 '과로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흔히 의료서비스 분야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기 때문이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의료인력의 노동력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안타깝게도 국내 의료기관에서 '노동집약적'이란 말은 '노동력을 갈아넣는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적정 의료인력을 확보해 전문성이 집약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최소 인원으로 최대한 많은 환자를 말 그대로 '보는(see)' 시스템으로 전락했다.

의사들의 장시간 노동은 고착화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016년 11월 21일부터 2017년 1월 8일까지 의사회원 8,564명 중 환자를 진료하는 7,885명을 상대로 실시한 '2016 전국의사조사' 결과를 보면 진료의사의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50.0시간이고, 연간 근무시간은 평균 2,415.7시간에 달했다. 평균 근무일수는 300.8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평균 근무시간이 가장 긴 편에 속하는 한국 노동자와 비교해도 의사의 근무시간은 압도적이다.

OECD의 '2017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평균(1,764시간)보다 305시간 더 길었다.

그런데 한국 임상의사는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 2,069시간)보다 연간 346시간(약 14.4일) 더 일하는 셈이다. OECD 회원국 평균과 비교하면 연간 노동시간이 651시간(약 27일) 더 길다.

실제로 일주일 내내 병원 문을 열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도 많다. 의료정책연구소 조사 결과를 보면 진료의사 중 주 5일 근무를 하는 비율은 16.1%에 불과했다. 조사에 참여한 의사 중 68.5%가 주 6일 근무를 한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일주일 중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주 7일 근무한다는 응답도 15.4%나 됐다.

전공의들의 장시간 근무는 더 심각하다.

얼마 전까지 전공의들은 주당 평균 10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일주일에 4회 당직근무를 서는 것이 일반적인 근무 형태였다. 전공의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환자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문제인식이 불거지면서 지난 2015년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전공의특별법'이 제정됐다.

전공의특별법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시간은 주당 최대 80시간으로 제한되지만 교육적으로 필요하면 8시간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주당 최대 근무시간을 88시간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전공의 연속근무도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다만 응급상황일 때는 최대 40시간까지 초과근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당초 국회에 제출된 전공의특별법은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최대 80시간으로 규정하고, 연속근무도 20시간(응급상황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지만 병원들의 우려와 반발로 일정 부분 근무시간 규제를 완화했다.

그러나 주당 88시간 근무 상한과 연속근무 최대 40시간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해 9월 2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온라인으로 시행한 ‘2018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 결과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공의 25.2%가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법이 잘 또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전공의 3명 중 1명은 최대 연속 수련시간인 36시간을 초과한 경험이 있었으며, 전공의 3명 중 2명은 오프(off)인 날에도 근무를 지속해야 했다고 응답했다. 이런 근무환경에서 과로사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3교대 근무에 시달리는 간호사 직종 역시 만성적인 인력부족 상태에서 연장근로가 일상화 돼 있다.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2018년 보건의료노동자 정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간호사 등 보건의료노동자의 50.5%가 ‘업무량이 근무시간 내에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다’고 답했다. 야간근무 전담과 기타의 일 평균 연장근무 시간이 각각 97.52분과 95.11분으로 일상적인 장기간 노동에 내몰려 있다.

한국의료, 저비용 구조 속 의료인력 노동력 갈아 넣어 유지

이처럼 의료인력 부족과 노동착취 수준의 근무환경 속에서도 대형병원들은 끊임없이 병상을 확충하면서 몸집을 키워가고 있으며, 국민의 건강수준을 나타내는 기대수명이나 영아사망률 같은 각종 지표는 다른 국가에 비해 높다.

'OECD 보건통계 2018'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3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적었다. 임상간호사 수는 6.8명으로 OECD 평균(9.5명)에 못 미쳤다.

반면 국민 1인당 의사의 외래진료 횟수는 17.0회로 OECD 국가 평균(7.4회)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은 편이다. 병상 수도 인구 1,000명당 12.0병상으로 OECD 평균인 4.7병상보다 2.6배 많고, MRI와 CT 보유대수도 OECD 평균을 웃돌았다.

적은 수의 의료인력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수준의 급성기 병상과 국민 1인당 가장 많은 외래진료 횟수를 기록하면서도 경상의료비 지출 규모는 GDP 대비 7.7%로 OECD 평균(9.0%)보다 낮다.

지난 2012년 6월 14일 국립중앙의료원 대강당에서 열린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 공청회장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응급실 당직전문의를 3년차 이상 전공의로 갈음할 수 있도록 규정한 개정안에 반대하는 침묵 피켓시위를 벌이는 모습. 라포르시안 사진DB.

어떻게 이런 의료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걸까. 저비용 구조에서 의료인력의 엄청난 초과노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의료인의 노동력을 갈아 넣는 식으로 병원이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대형병원은 전공의들의 값싼 노동력과 터무니없이 부족한 간호인력의 노동력을 갈아서 몸집을 키웠고, 의료인력이 늘 부족한 상태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게끔 노동력을 쥐어짜는 '공장식 박리다매' 진료가 고착화됐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는 "언제까지 퇴근도 없이 일하는 슈퍼맨 같은 의료인들의 희생으로 한국의료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등을 보장받으면서 적정 진료가 이뤄질 수 있는 의료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지금처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피로도 증가와 집중력 감소로 환자안전을 위협할 수 있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인의 ‘헌신’이 ‘희생’으로 이어지는 상황 더는 당연시해선 안 돼" 

문제는 이렇게 기형적인 의료인력 구조 속에서 한국의료가 계속 유지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당장 필수의료 영역에서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대형병원으로 의료인력이 쏠리면서 지방 병원의 필수의료 인력 공백이 커지고 있다. 지방의 응급의료체계가 무너지고, 산부인과 분만 취약지는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환자쏠림은 심화되고, 응급실 과밀화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지방과 수도권의 의료자원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의료전달체계는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구조적으로 왜곡되고 망가졌다. 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는 방치된 채 의료인 개개인의 희생에 의해 간신히 지탱하는 수준이다.

당연히 이런 구조가 환자에게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인해 업무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고,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심각한 투약오류 등의 의료과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 2015년 9월 2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전국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주최로 열린 '환자안전 위협하는 병원노동자 장시간노동 근절을 위한 근무시간 실태조사 선포식'을 모습.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과 길병원의 소아과 전공의의 죽음은 이 나라의 의료체계 가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과 이대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며 "지금도 대형병원과 상당수의 종합병원 이상 응급실에는 넘쳐나는 환자들로 인해 의료진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환자도 많고 업무량도 많지만 정작 병원 경영진은 응급의료의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많은 투자를 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병원의사협의회는 "열악한 응급의료 인력과 인프라의 문제는 의료인들로 하여금 응급의료를 기피하게 만들고 있고, 인력들의 지원 기피는 응급의료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며 "이 문제는 지금까지 해온 관행처럼 관련 수가만 약간씩 올린다고 해결될 수 없으며, 의료 전반에 퍼져있는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면서 응급 및 필수의료 관련 수가를 개선해야 하고, 수가 개선과는 별개로 응급 및 필수의료 인력과 인프라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는 고 윤한덕 센터장이나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처럼 자기희생을 감내하며 고군분투하는 의료인에 의해서 유지되는 의료시스템을 방치해선 안 된다. 제도개선과 국가의 지원 확대를 통해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집무실 출입문. 이미지 출처: jtbc 보도화면 갈무리

언론은 고 윤한덕 센터장의 낡은 집무실과 간이침대에 주목했다. 응급의료에 몸담고 있는 의사로서 윤 센터장의 희생정신과 사명감을 보여주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일주일 내내 야근으로 밤새 불이 켜진 낡은 집무실과 간이침대는 국가 공공보건의료 컨트롤타워라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처한 열악한 근무환경을 방증한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안타까운 두 죽음을 애도하며 명심해야 할 것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숱한 평범한 영웅들의 ‘헌신’이 ‘희생’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더 이상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며 "가능하다면 법과 제도적으로 이들의 불가피한 헌신이 희생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보건업에 대한 노동시간 특례제도를 폐지하고 장시간 노동을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보건업에 대한 노동시간 특례 폐지 제외에 대해 항의하며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보건의료 현장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 왔다"며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의사인력의 부족으로 시작되어 병원인력 전반의 인력부족과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는 만큼 이러한 인력문제 해결을 위해 의사인력을 포함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조속히 통과돼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지속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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