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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살아보자" 말한 故 임세원 교수...격리와 배제 경계해야[뉴스&뷰]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요건 완화 목소리 커져..."편견없는 사회 만들어달라" 고인 유지 어긋나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

[라포르시안]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실에서 상담을 받던 30대 조울증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의사를 살해한 피의자는 심한 조울증으로 1년 넘게 입원치료를 받다가 퇴원한 후 외래진료 발길을 끊었던 환자라고 한다. 2018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예약도 없이 내원한 그날의 마지막 환자였다. 숨진 의사가 마지막으로 본 환자이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조울증 등 정신질환 환자에 의한 강력범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신질환자의 비자발적 입원(강제 입원) 요건을 강화한 정신건강증진법 시행 이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조금씩 불거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진료실 내 의료인 안전 강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과 동시에 정신질환 환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쪽으로 풀어나아가야 한다. 

자칫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심화되고 다시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제하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고 임세원 교수는 의사이기 이전에 극심한 우울증을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환자들의 고통을 잘 이해하고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 동반자였다. 

임 교수는 생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힘들어도 오늘을 견디어 보자고, 당신의 삶에 기회를 조금더 주어 보자고,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 함께 살아보자고"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정신질환 환자를 배제하고 격리하는 것을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 짐작할 수 있다. 

임 교수의 유족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통해 전달한 입장을 통해 이번 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생길까 크게 염려했다.

유족 측이 당부한 고인의 유지는 "첫째,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과 둘째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임세원 교수의 여동생 임세희 씨는 지난 2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족의 자랑이었던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오빠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안위도 걱정하지만, 환자들이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질환을 빨리 극복하기를 원해서 힘든 직업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현명한 해법을 내리실 것”이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의협은 "이번 사건이 피의자의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추측성 보도나 잘못된 정보의 무분별한 공유가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면서 "이 때문에 수사당국에 피의자의 범행 동기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정밀한 정신건강의학적 감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자의 의료이용 문턱이 더 낮아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정신과 진료를 받을 경우 국제질병분류 기호에 따라 'F'로 시작되는 병명이 진단서에 기록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 'F코드'(정신 및 행동장애)가 사회적 낙인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낙인효과 때문에 정신건강 질환을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들어서는 정신건강 질환을 바로보는 왜곡된 시선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완치하거나 일상적인 삶을 지속하는 게 가능하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병원을 찾아 진료받는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정신건강 질환 진료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정신건강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수는 2013년 150만 4,000명에서 2017년에는 176만 5,000명으로 연평균 4.1% 증가했다. 정신건강 질환 진료비는 2017년 기준으로 1조4,317억원에 달했다.

의협은 "이번 사건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벌어졌고,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공격성이 원인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면서 "그보다는 정신질환자의 의료이용 문턱이 낮아져야 하며, 정신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에서 사회적 인식과 불합리한 제도 개선이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정신보건법을 전면 개정한 정신건강증진법을 시행한 목표는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배제하기 위한 격리·수용을 통한 입원치료 중심에서 불필요한 입원을 제한하고 지역사회 복귀를 강화하는 '탈원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의 탈원화를 위한 사회복귀시설과 지원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태에서 관련법이 시행돼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가 오히려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정신질환자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탈원화 정책이 추진돼 자칫 준비 없이 퇴원한 정신질환 환자에 의해 사고가 발생하고, 사회적 편견만 심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법하고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고, 정신질환자를 위한 현실성 있는 치료 인프라를 구축할 때 이들이 범죄자의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지난 2017년 5월, 수많은 문제점을 안은 채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됐다. 제대로 된 입원 시스템과 지역사회의 돌봄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환자를 치료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법이었다"며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고 결국 환자 자신과 사회의 안전망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정신과 의사들의 우려는 묵살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나라는 아직도 국가가 아닌 병원과 보호자가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집행하는 기형적인 강제입원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 병원은 환자를 가두는 주체가 되어 치료의 시작부터 신뢰는 깨어지고, 의사는 환자의 적이 된다. 입원치료는 잠재적인 범죄로 치부돼 그 요건이 까다로워지고, 환자는 치료적 도움과 돌봄을 받을 시설과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사회로 내몰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환자가 치료받을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의사도 안전을 위협받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환자와 의사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모두에게 불행하고 슬픈 일"이라며 "작금의 강제입원 제도를 폐지하고, 국가가 치료를 보장하는 사법입원 제도를 도입하고, 지역사회에 환자들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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