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역할 설정 탓 '공공성·수익성' 이중 질곡에 빠져…"제도적 기반 구축·지원 확대해야"

경남도의 진주의료원의 폐업 강행을 계기로 공공병원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현황을 진단하고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건강정책학회와 사회복지학회는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주의료원 사태로 본 공공병원의 현황과 발전방안’을 주제로 긴급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공공병원에 대한 실질적 지원과 체계적 관리체계를 포함한 국가적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상대학교의학전문대학원 정백근 교수<사진>는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는 공공의료라는 사안이 전국적 이슈가 된 보기 드문 사례”라며 “공공의료 강화가 우리나라 보건의료 계혁의 주요한 이슈로 대두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지방의료원의 정상화를 위한 방안으로 지역개발기금으로 인한 부채를 지방정부가 청산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정 교수는 “많은 지방의료원이 지역개발기금으로 인한 부채 및 이자 때문에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중 신축이전 및 증․개축에 따른 부담금은 지방정부가 청산해 줄 필요가 있다”며 “실제 의료원 신축 이전 및 증․개축은 지자체의 예산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방의료원을 정상화한다는 맥락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사항이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지방의료원 재정문제 해결방안으로 ▲공공의료 강화정책의 실질적 작동을 위한 제도적 결함 시정 ▲의료안전망 역할 및 공익적 서비스로 인한 적자 보전방안 마련 ▲국립대병원과의 협력관계 구축 ▲지역 내 공공보건의료전달체계 확립 ▲지방의료원의 위상 정립 및 맞춤형 투자 ▲경험과 능력을 겸비한 원장 선임 및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실현 등을 제시했다.

정부의 정책추진 체계에서 공공병원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팀 문정주 팀장은 “2011년도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정책’은 주로 상급병원과 의원을 대상으로 해 의료전달체계의 1차와 3차 기능 확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지방의료원 등 지역공공병원을 정책 추진에 활용하려는 내용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문 팀장은 “지역공공병원은 지역정신건강정책과 지역재활의료정책도 보건소를 활용할 뿐 지역 공공병원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며 “지방공공병원을 정부 정책 추진의 중심기관으로 활용하고 이를 위한 기반 구축과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의 중장기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건양대학교의과대학 나백주 교수는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전문가 및 시민단체 등의 다양한 참여와 협력으로 상시적인 의료연구와 정책제안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학계와 공공보건의료기관 현장의 인력교류, 연구 및 투자를 강화하기 위한 공공보건대학원이 설립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 교수는 “현재 취약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을 공공의료 활동이라고 보는 것에서 벗어나 한걸음 나아가려면 더 큰 패러다임에서 현재의 공공보건의료체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전체 보건의료체계와 공공병원의 미션과 위상 설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책임성도 강조됐다.

서울대학교의과대학 이진석 교수는 “중앙정부가 공공병원의 역할을 설정하는데 미흡했기 때문에 공공병원이 ‘공공성’과 ‘수익성’의 이중 질곡에 빠지는 결과를 야기했다”며 “대다수의 지방정부 역시 공공병원 관리를 위한 전문역량과 지원 역량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국가보건의료체계의 거시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공공병원의 역할이기 때문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공공병원의 역할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역할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법적․제도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며 “중앙․지방정부의 관리·지원 역량 강화를 위해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확대, 공공보건의료교육훈련센터와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지자체의 적극적 지원이 관건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지정토론에서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연세학교보건대학원 김태현 교수<사진>는 “어떻게 하면 지역주민이 찾는 공공의료기관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특히 지방의 민간의료기관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민간의료기관이라고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 곳은 없다. 민간의료기관 역시 지역사회의 의료서비스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미션으로 두고 있다”며 “진주의료원을 비롯한 지방의료원은 도청, 시청 등의 관계공무원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민간의료기관과 함께 지역사회 친화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의료전문가에게 과감히 책임과 권한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료시스템 확보를 위해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사용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중앙대학교사회복지학과 김연명 교수는 “공공의료시스템 확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기금 400조원 중 연간 5조원에서 10조원 정도를 가져다 쓰는 방안이 좋을 것 같다”며 “현재 우리나라는 노인의료비가 급속하게 증가하는 상황이라 연금의 70% 이상이 병원으로 가게 될 것이므로 지자체에 공공의료 확충 재원을 국민연금기금에서 사용이 가능토록 하는 방안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역의 의료수요량과 욕구를 분석해 특수한 지방의료원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세종대학교정책과학대학원 이수연 교수는 “최근에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자는 논의는 많았지만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접근성 강화 측면뿐 아니라 지역적 특성에 맞는 공공의료기관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역별 의료서비스 필요와 수요에 맞게끔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수요와 욕구조사를 한 후 의료수요량과 욕구, 필요에 의거한 지역별 공공병원의 구축이 필요하다”며 “지방의료원 자체가 갖고 있는 공통적 문제와 함께 입지적 특성, 취약계층의 요구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지역별로 특수한 지방공공병원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산하 시립병원의 사례를 근거로 일방적인 폐업 강행에 앞서 회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이건세 단장은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효율성을 언급하며 지원 재정을 400억원으로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하지만 공공병원 정상화를 위한 개혁방안 마련을 위해 연간 18억원의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또한 서울시는 시립병원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팀을 공식 직제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서울시 의회에서도 건강한 적자, 필연적 적자를 가려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공공병원은 병원경영시스템, 시설장비, 소프트웨어적인 지원이 있지 않으면 획기적인 개선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사진>은 공공병원이 발전하려면 중앙정부를 비롯해 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는 공공의료를 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의료의 근간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공병원이 ‘미운 오리 새끼’처럼 구박 받고 천덕꾸러기로 취급받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병원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중앙정부와 권역정부 및 지역정부가 협력해 공공병원을 키우고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지원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진주의료원 사태 역시 지원이 없어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공공병원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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