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원자력·중앙보훈병원 이어 아주대병원서도 의사노조 출범...고용안정·진료독립권 보장 요구
"다른 병원서도 노조 결성 준비...궁극적으로 미국처럼 산별노조 체제로 가야"

[라포르시안] 수련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노동조합이 출범한지 12년이 지났다. 출범 당시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전공의노조는 이름뿐인 조직으로 남았다. 

수련병원에 소속된 교육생이자 수련기간인 3~4년 동안만 근무하는 계약직 노동자라는 한계에 갇혀 노조로서의 활동력과 틀을 갖추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전공의노조를 넘어 이번엔 병원에 근무하는 봉직의사들 중심의 노동조합 설립이 잇따르고 있어 주목된다.

28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에 따르면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중앙보훈병원에 이어 지난 21일 아주대병원 의사노조가 출범했다. 지나해 9월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처음으로 의사노조가 출범한 이후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벌써 세 번째 의사노조 결성이다.

아주대병원 의사노조는 1년 넘는 기간 동안 조직화르 준비해왔으며, 조합원 수가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병원내 의사들의 참여가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병원 의사노조 위원장을 50대 시니어급 교수가 맡았다.   

병원에 소속돼 '월급쟁이 의사'로 활동하는 봉직의사들 중심의 노동조합이 설립된다는 것은 전공의노조 출범과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의사노조 결성에 많은 관심을 갖고 노조 설립을 지원해 온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의사들이 스스로 노동자성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병의협은 지난 27일 아주대병원 의사노조 출범을 알리는 성명을 내고 "그간 의사노조 설립의 당위성은 널리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의사들도 노동자라는 자각 자체가 희미해서 첫 발자욱을 떼기 어려웠었다"며 "하지만 최근 의사노조 설립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나고, 그 요구가 세 번째 의사노조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급변하는 의료환경에서 의사들 스스로 노동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 잘못된 의료제도를 이대로 방치해선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방증일 것"이라고 했다.

대학병원 소속 교수이든 중소병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페이닥터이든 상관없이 갈수록 열악해지는 병원의 근무환경 속에서 이제는 의사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높아졌고,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병의협은 "그 노동자성이 분명하고 이미 의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병원 의사들이 의사이기 이전에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개개인이 헌법과 근로기준법 상에 보장된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더 나아가 의료 공급자로서 의료 정책의 결정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출범한 의사노조의 최우선 과제는 병원 의사들의 고용 안정과 독립된 진료권 보장이다.  

불합리한 의료수가 체계와 의료제도 속에서 병원이 오로지 경영적인 판단에 매몰돼 무자격자의 의료행위를 조장하고 환자안전에 위해가 될 수 있는 과잉검사과 과잉진료를 의사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고용불안 때문에 이에 적극 항의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한다.

실제로 봉직의들 가운데 상당수는 계약직 형태로 병원에 고용돼 근무하고 있으며, 의료기관은 주당 근로시간 제한 규정에서 제외하는 특례업종에 포함되는 탓에 주당 노동시간도 상당하다. 이런 상태에서 병원의 경영적인 판단에 따라 편법적인 돈벌이 진료에 내몰릴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이 결국 환자안전과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게 된다는 우려가 높다.

의사노조가 병원 의사의 고용 안정과 독립적인 진료권 보장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병의협은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극단적 저수가 체계에서 생존을 위해 의사면허가 없는 이들에게까지 의료 서비스 제공을 강요하는 병원 경영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고용 불안정과 진료권 침해에 고통 받는 의료진,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각종 안전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환자와 의사간의 불신의 골까지 깊어져 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대다수 의사들은 침묵하며 이를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의사노조가 출범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고 했다.

작년에 출범해 병원 내에서 교섭권을 획득한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의사노조는 올해 사 측과의 임단협에서 고용 안정과 진료권 보장을 핵심 요구안으로 제시해 교섭을 벌인 끝에 타결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동남권원자력의학원지부 김재현 분회장(흉부외과 전문의)은 "의사노조 출범 이후 역점을 두고 추진한 건 고용 안정과 독립적인 진료권 보장이었다"며 "올해 임단협에서 이 두가지를 핵심 요구안으로 제시했고 최근 사측과 교섭 타결을 했다"고 말했다.

김 분회장은 "병원의 경영적인 판단에 따라 독립적인 진료권 보장을 위해 병원 내에 노사동수로 '진료권한승인위원회'를 구성하고, 환자안전을 저해하거나 부적절한 진료권 침해 등의 사안을 다루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개별병원의 의사노조 출범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의사노조 출범에 관심을 갖고 조직화를 논의하는 곳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별노조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병원의 의사를 아우르는 산별노조 형태의 '전국의사노조' 결성도 논의되고 있다. 

기업별노조보다는 산별노조 체제로 가야 병원 사용자단체나 정부를 상대로 병원 의사의 노동환경과 환자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각종 보건의료제도의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병의협에서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장'도 맡고 있는 김재현 분회장은 "아주대병원 외에 다른 병원에서도 의사노조 조직화를 위한 관심을 보이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미국의사노조처럼 개별병원 의사노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국의사노조'라는 산별노조 형태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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