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영리병원 개원·의료기기 등 의료산업 규제완화 정책 강행..."박근혜 보건의료 규제완화 정책과 구분 힘들어"

[라포르시안] 보건의료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이 수상하다. 박근혜 정부 때 '창조경제'와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된 각종 의료상업화 정책이 문재인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과 '규제혁신'으로 명칭만 바뀐 채 계속 추진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즌2'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시민사회와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주춤했던 의료상업화를 촉발하는 각종 정책이 문재인 정부에서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했던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이 대표적이다.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은 의료기기 개발 이후 시장 진입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하기 위해 ‘선 진입 - 후 평가’방식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1월 열린 제4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발표된 '바이오헬스산업 규제개혁 및 활성화 방안'을 짜깁기한 수준이다.

당시 복지부는 신의료기술, 첨단재생의료제품, 웰니스 제품의 신속한 시장진입 지원을 명분으로 신의료기술평가 간소화와 신속화를 위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체외진단, 유전자검사 등의 분야는 ‘신속평가’를 도입해 신의료기술평가 기간을 기존의 절반으로 줄이고,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와 복지부의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같은 규제완화 정책을 놓고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시민단체, 의료계 등에서 의료영리화 정책이라면 반발했다. 의료기기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 통합심사에 따른 신의료기기의 신속한 시장진입이 부실한 평가 검증으로 이어질 경우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런데 이런 정책 추진이 문재인 정부에서 더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복지부는 지난 7월 발표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의 후속 대책 추진에 팔을걷었다. 당장 내년부터 인공지능(AI), 3D 프린팅, 로봇 등을 활용한 미래유망 혁신·첨단의료기술은 최소한의 안전성만 확보되면 시장진입을 허용한 후 임상현장에서 3~5년간 사용해 축적된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를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지난 13일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로봇, 3D 프린팅, 인공지능, 나노기술, 이식형 의료기술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의료기술 ▲암, 심·뇌혈관질환, 장애인 재활, 치매 등 사회적 효용가치가 높은 의료기술 ▲환자 만족도 증진이 기대되는 의료기술은 별도의 심의 절차를 거쳐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트랙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별도평가트랙을 통과한 혁신의료기술은 의료현장에서 활용된 결과를 바탕으로 3~5년 후 재평가를 받게끔 했다.

혁신·첨단의료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 신속 승인절차가 환자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정부가 '첨단'으로 분류한 의료기기는 대부분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은 ‘출현단계’의 의료기술로, 오히려 보다 엄격한 검증절차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의료기기나 의약품에 대한 규제는 그 자체로 사전 규제가 아닌 이상 그 의미가 없다"며 "정부가 주장하는 ‘사후 규제’란 이미 누군가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해가 발생한 이후라는 말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가 박근혜가 말하던 '모든 규제를 물에 빠뜨려 필요한 규제만 살리겠다'고 한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난했다.

의료기기뿐만 아니라 유전자 치료·검사 분야의 규제완화도 추진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검사 규제완화는 올해 1월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를 통해 확정한 38건의 포괄적 네거티브 전환과제에 포함된 바 있다.

현재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통해 유전자 치료 대상 연구 질환의 제한을 완화하고 소비자가 직접 의뢰하는 유전자검사(Direct to Consumer, DTC) 인증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DTC 검사는 박근혜 정부 때 민간 유전체 분석 활성화를 이유로 2016년 7월부터 혈당·혈압·피부노화·체질량지수 등 12개 항목을 대상으로 허용한 바 있다. 이후 관련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DTC 검사 항목 확대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유전자 검사의 오·남용 우려가 크고, 정확하지 않은 검사 결과나 분석을 근거로 무분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지난 17일 대통령 주재 확대경제장관회의를 통해 확정한 '2019년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비대면 모니터링과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비대면 모니터링은 환자의 건강·생활을 모니터링해 맞춤형 교육·상담 등 환자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활성화를 위한 전단계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또 비의료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건강관리서비스 제공범위·기준을 마련해 내년부터 건강관리서비스 산업 육성을 모색하기로 했다.

건강관리서비스 산업 육성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대표적인 의료상업화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규제완화를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통해 비의료기관을 통해 건강서비스 산업 육성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발표한 9차 투자활성화대책을 통해 "고령화와 의료비 지출 증가 등으로 ICT·웨어러블기기 등을 활용한 건강관리서비스업이 미래유망산업으로 대두되고 있다"며 "ICT와 웨어러블기기 등을 활용한 건강관리서비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새로운 의료서비스와 제품 개발을 활성화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정책 방향에 맞춰 당시 복지부는 의료기관에서 제공하는 의료행위와 구분해 비의료기관에서 제공할 수 있는 건강관리서비스를 별도로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건강관리서비스 육성 정책을 가장 반기는 곳은 보험업계다. 헬스케어를 접목시킨 새로운 보험상품 시장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는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는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분야를 하나의 시장으로 활성화 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건강관리서비스가 시장에 내맡겨진다면 민간보험사들의 새로운 이윤창출 시장이 열리고, 의료민영화로 가는 중요한 경로가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에서 각종 의료상업화 정책 추진에 탄력이 붙으면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보건의료 관련 정책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구분하기조차 힘들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게다가 '의료공공성 확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가 이뤄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보건의료분야 규제완화 정책이 박근혜가 추진하던 의료민영화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에 분노한다"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경제성장의 도구로 삼겠다는 발상을 버리지 않는 한 문재인 정부 스스로가 머지않아 국민의 혁신 대상이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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