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정보제공 없이 회수조치 발표로 혼란...백신 용해액서 검출된 비소 위험성 지나치게 과장

[라포르시안] 결핵 예방을 위해 영유아에게 접종하는 BCG 백신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일본산 '경피용건조 BCG백신'을 접종할 때 함께 사용하는 첨부용액(생리식염수)에서 발암물질인 비소가 기준을 초과해 검출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7일 해당 백신 제품을 회수조치한다고 발표하면서 BCG 백신 접종을 이미 했거나 앞으로 해야할 영유아를 둔 부모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첨부용제에서 비소가 검출된 경피용 BCG 백신 대신 피내용 BCG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안내하는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는 접속자가 몰리면서 일시적으로 다운됐고, 소아청소년과의원에는 관련 문의 전화로 하루 종일 시달렸다고 한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비소의 위험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과거 임금이 내리는 '사약'의 성분이었다는 점을 언급하거나 “돈 주고 독극물을…아이가 마루타인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기도 했다.

갑작스런 식약처의 회수조치 발표와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가 잇따르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피용 BCG 백신의 안전성 문제를 따져묻는 글도 쇄도하고 있다.

경피용 BCG 백신의 첨부용제에서 비소가 검출된 사안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보일 정도로 위험성이 큰 걸까. 현재 제기되고 있는 경피용 BCG 백신 관련한 우려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봤다.

사진 위 경피용 BCG 백신, 사진 아래 피내용 BCG 백신.
사진 위 경피용 BCG 백신, 사진 아래 피내용 BCG 백신.

피내용 및 경피용 BCG 백신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결핵 예방 백신으로 피내용(주사형)과 경피용(도장형) 두 종류를 사용한다. 이 중에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에 따라 피내접종을 국가예방접종으로 인정하고 있다.

피내용 BCG 백신은 국가예방접종에 포함됐기 때문에 보건소나 의료기관에서 접종시 비용 부담이 없이 무료이다. 반면 경피용 BCG 백신은 접종시 7만~8만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피내용과 경피용 BCG 백신은 접종 방법이 차이가 난다. 피내용은 주사기를 이용해 피부를 통해 백신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경피용은 피부에 주사액을 바른 후 9개 바늘을 가진 주사도구를 이용해 접종부위를 강하게 눌러서 피부를 통해 백신액이 흡수되게끔 해 주입한다.

피내용 BCG 백신의 경우 현재 일본과 덴마크에서 전량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현지 백신 생산공장의 질 관리 등의 사정으로 생산물량 축소-공급부족 등의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국내 수입 차질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작년에도 피내용 BCG 백신 공급 차질이 빚어지면서 질병관리본부는 임시로 경피용 BCG 백신 무료접종을 수 개월 간 실시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문제가 된 경피용 BCG 백신을 접종합 영유아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관련 기사: 결핵 발생률 OECD 1위 한국…BCG 백신 국산화 아직도 멀었다>

왜 백신 첨부용제에서 비소가 추출됐을까?

논란이 되고 있는 백신은 일본에서 생산한 '경피용 건조 BCG 백신'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백신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백신과 함께 용해액으로 제공되는 생리식염수에서 기준을 초과하는 비소가 검출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피용 건조 BCG 백신'은 백신과 생리식염수가 각각 들어있는 앰플 형태의 유리용기와 주사침 등 세 가지 구성품을 담아서 공급한다. 

접종을 위해 사용할 때는 생리식염수를 백신 앰플에 주입해 용해시킨 다음 백신액을 접종부위 피부에 바른다. 그리고 주사침이 달려있는 관침을 백신액을 바른 접종부위에 2회에 걸쳐 강하게 압박해 하는 방식으로 주입한다.

그렇다면 대체 왜 백신을 용해할 때 사용하는 생리식염수에서 비소가 검출될 것일까.

생리식염수를 담은 유리용기인 앰풀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비소산화물 때문이다.

식약처와 '경피용 건조 BCG 백신'을 공급하는 한국백신 측에 따르면 생리식염수를 담은 앰플을 제작할 때 고열을 가하는 밀봉 과정이 있는데, 이 때 유리 재질 속에 함유돼 있는 극미량의 비소가 녹아 나와 생리식염액에 혼입됐다. 

백신 첨부용제에서 추출된 비소는 그렇게 위험한 수준인가?

식약처가 회수 조치를 취한 경피용 BCG 백신의 첨부용제에서 추출된 비소의 최대함유량은 0.039㎍(0.26ppm)이다.

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 가이드라인 'Q3D 금속불순물' 기준에 따르면 주사로 주입하는 비소의 1일 최대 허용량은 1.5㎍이다. 이번에 논란이 경피용 BCG 백신의 첨부용제에서 추출된 비소 최대함유량(0.039㎍)은 ICH Q3D 가이드라인에 따른 1일 최대 허용량의 1/38 수준이다.

그런데 경피용 BCG 백신의 주입 방식을 감안할 때 실제로는 이보다 더 적은 용량이 주입됐을 것으로 보인다.

 경피용 BCG 백신은 주사기를 통해 바로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백신액을 스포이드를 사용해 1~2방울 피부에 떨어뜨려 피부에 펴 바른 후 도장처럼 생긴 주사침으로 찌르면 피부에 발라진 백신액이 이를 통해 흡수되게끔 하는 방식이다. 

이런 주사 방식을 고려하면 건조 백신을 용해시키는 데 사용한 생리식염수 용액 전체가 주사침을 통해 피부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일부만 주입된다.

이 백신 제품을 공급하는 한국백신 측은 "경피용 BCG는 1~2방울의 백신액을 떨어뜨려 접종부위에 펴 바른 후 관침으로 침흔을 내어 피부에 펴발라진 백신액이 자연적으로 흡수되게끔 하는 경피법을 사용한다"며 "스포이드 1방울의 양은 약 0.03mL, 2방울이면 0.06mL 정도인데, 만약 2방울 모두 체내에 들어간다고 가정할 경우 비소량은 0.016㎍이다. 하지만 경피용 BCG는 백신액을 접종부위에 펴 바른 후 다시 미세한 침흔을 통해 흡수시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0.016㎍ 보다 훨씬 더 적은 극미량만이 몸안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경피용 BCG 백신의 첨부용제에서 추출된 비소 양을 감안할 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하정훈 원장은 지난 7일 '경피용 BCG와 비소 위험성'이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비소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정훈 원장은 "경피용 BCG 백신은 주사가 아니고 피부에 바르고 도장으로 찌르기 때문에 실제 들어가는 비소 양은 1/100도 안 될 것"이라며 "워낙 적은 양이라서 일본 보건당국도 안전하다고 판단해 그대로 접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 원장은 "비소가 문제이지만 워낙 극미량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경피용 BCG 백신을 접종한 영유아를 둔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정훈의 육아이야기: 경피용비씨지와 비소 위험성' 동영상 바로 가기>

지난 7~8일 사이에 경피용 BCG 백신 관련해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가 쏟아졌다.
지난 7~8일 사이에 경피용 BCG 백신 관련해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가 쏟아졌다.

 잘못된 정보로 백신 접종률 떨어질까 우려...보건당국 부적절한 대응도 논란 키워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번 논란으로 BCG 백신 접종률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결핵발생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아 결핵관리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여기에 인구 고령화로 인한 노인 결핵 증가와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 결핵환자 증가 등에 대비한 대책도 시급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결핵발생률이 여전히 높은 상황임에도 매년 피내용 BCG 백신 수급이 불안정해 경피용 백신으로 임시예방접종을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작년에도 덴마크산 피내용 BCG 백신 제조사의 현지 사정으로 공급이 중단되면서 생후 4주 이내 영아를 대상으로 경피용 BCG 백신을 임시예방접종했다.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BCG 백신은 평생 1회 접종하기 때문에 이번에 논란이 된 경피용 BCG 백신 첨부용제에서 추출된 비소가 영유아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은 극히 낮다"며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 국가인데 이번 논란으로 인해 자칫  BCG 백신 접종률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실제로 오늘 하루 동안에도 병원으로 전화를 해 경피용 BCG 백신 접종 관련해 항의를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이 문제의 경피용 BCG 백신을 접종한 영유아가 얼마나 되는지, 용해액에서 검출된 비소의 양이 이미 접종한 영유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앞으로 어떤 관리방안을 마련할 지 등의 내용도 없이 덜컥 '비소가 검출됐으니 회수조치한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키운 측면이 크다.

반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생리식염수에서 검출된 비소가 극히 미량으로 건강상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시험결과를 근거로 회수 조치 없이 제조사에서 자발적으로 내부 출하만 정지한다고 공표했다.

기존 출하한 해당 백신 제품은 그대로 사용 중이며, 새로 출하하는 제품은 비소가 검출되지 않는 새 유리용기로 포장한 생리식염수로 교환해 공급할 예정이다.

마 과장은 "보건당국이 초기에 적극적으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지 못해서 우려를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이 과장된 기사로 사람들의 우려를 증폭시킨 책임도 크다"며 "일본의 발표 내용만 보고 무작정 회수조치를 취하기 전에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해서 식약처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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