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 진주시 북부지역의 관문에 해당하는 초전·장재지구는 지난 2004년까지 쓰레기매립장이었다. 그러다 2004년 11월 매립쓰레기 이전공사를 완료하면서 생활체육시설과 공원조성, 대단위 택지개발 사업 등이 속속 추진됐다. 여기에는 진주의료원을 신축·이전하는 사업도 포함됐다. 

지금의 초전동으로 이전하기 전 진주의료원이 위치한 진주시 중안동은 시내 중심가였다. 특히 인구에 구시가지의 일반주택 밀집지역으로 토박이 주민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한다. 당연히 접근성이 좋았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진주의료원이 신축·이전한 초전동은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지역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그런 곳으로 병원을 옮겨가며 환자들이 어떻게 찾아가냐는 불만이 거셌다.  

한 지역민은 "8년전 의료원 처음 지을 때 쓰레기 매립장에 병원을 짓는다고 엄청 시끄러웠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했다. 

우려한 대로 2008년 2월 이전한 이후 작년 5월까지 진주의료원을 경우하는 시내버스 노선은 355번 단 1개 뿐이었다.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으면 방문하기가 힘들었다. 노인이나 만성질환자 등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공공병원으로서 접근성이 급격히 떨어진 셈이다.

진주의료원 관계자는 "당초 신축 이전할 때는 시내버스 노선을 충분히 확보해 주겠다고 했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지켜지지 않았다"며 "그나마 의료원 노조에서 도청을 찾아다니고 지속적으로 요구를 한 결과 시내버스 노선이 증설됐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퇴원·전원을 강요하는 경남도청…민간병원에선 거부 당하고

경남도가 지난 3일 휴업을 발표한지 사흘만인 지난 토요일(6일) 진주의료원을 찾았다. 신규 외래환자 진료는 중단됐고, 입원환자 30여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 도의 휴업 발표 이전부터 외래진료는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환자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하기가 곤란하거나 혹은 전원을 거부당한 경우다. 60대 이상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거나 아예 보호자가 없는 환자도 있었다. 병원비조차 내지 못한 장기 입원환자를 민간의료기관에서 반길 리가 없다.

지난 2월 26일 경남도에서 폐업을 선언할 때만 해도 진주의료원 입원환자 수는 200여명이 넘었다. 하지만 폐업 선언 이후 도에서 공무원을 동원해 환자 및 보호자를 상대로 퇴원과 전원을 종용한 탓에 1개월 사이 80%가 넘는 입원환자가 빠져나갔다.

환자와 보호자를 상대로 한 경남도청의 퇴원·전원 압박은 집요했다. 보호자들의 연락처를 파악해 수차례 전화를 걸었고, 때로는 행정력을 앞세운 압박도 가했다고 한다. 도청 공무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환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보건소장까지 동원했다.

한 입원환자 보호자는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는 도청 공무원으로부터 '병원을 옮기지 않으면 의료급여수급자 판정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압박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 지난 6일 전국보건의료노조 주최로 열린 경남 진주의료원 지킴이 발족식 행사장에 참석한 입원환자들.

환자와 보호자에게 거짓말도 했다.

어느 보호자는 "무릎관절 수술을 받은 환자가 며칠 전 퇴원했는데 도 공무원이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진료를 받는 건 불법'이란 식으로 압박을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8층 노인요양병동에 입원해 있다. 8층에 남아 있는 환자 중 올해 60대의 최모 할머니는 지난해 6월 14일 진주의료원에 입원했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최 할머니는 거의 움직일 수 없었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드문드문 알아들을 정도였다. 보호자가 가끔 찾아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원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진주의료원에서 근무한지 오래된 신경과 전문의 한 명이 아직 남아 있어서 진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신경과 전문의는 경남도에서 계약해지를 통보하며 정한 '4월 21일'까지 근무하겠다며 버티고 있다. 

남아 있는 환자 중에는 경남도에서 지정한 B병원으로 전원을 희망했지만 거절 당했다. 의료급여 1종에 장기 입원환자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남아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B병원에서 환자들을 선별적으로 받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올해 79세의 이모 할아버지는 23년째 진주의료원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각종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그에겐 딸이 하나 있지만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난 후 소식이 끊겼다.

이 할아버지는 "딸이 장례식장에 100만원을 맡겨놓고 갔다. 나 죽으면 초상 치러주라고…. 죽어도 여기서 죽고 싶다"며 말끝을 흐렸다.

올해 91세의 안모 할아버지는 위암수술을 받고 진주의료원에 입원했다. 이 곳에서 여생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안 할아버지는 "아프지 않게 숨을 거둘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다"고 말했다.

▲ 불꺼진 진주의료원 건물. 7층과 8층 일부에만 불이 켜져 있다.

진주의료원 본관 뒤편에는 호스피스병동이 있다. 전국 최초의 독립 시설형 호스피스병동이다. 사실 의료원에서는 호스피스병동을 개설할 경우 적자가 더욱 늘어날 것을 걱정해 개설을 반대했다. 하지만 도에서 밀어붙여 결국 작년 6월 문을 열었다.

현재 호스피스 병동에는 70대 중반의 여성 암환자만 입원해 있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선언하던 지난 2뭘 말까지 6명의 환자가 있었지만 이후 한달 사이 3명이 사망하고, 2명은 경상대병원으로 옮겨 갔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환자는 경상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있다가 진주의료원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환자의 보호자는 "도에서 전화가 와 병원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지만 대부분 여건이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진주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이 기대이상으로 좋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옮기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료원 곳곳을 둘러보는 사이 어두워졌다. 밖에서 보는 병원 건물은 7층과 8층 일부에만 불이 켜졌다. 응급실도 이미 폐쇄됐다.

8시쯤 서울로 다시 올라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의료원을 나서는데 승객을 한 명도 태우지 않은 시내버스가 들어왔다. 의료원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신축 공사가 한창인 곳은 불빛조차 없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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