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한의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며 현재 의료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의료질서를 훼손하는 일이다" 대한의사협회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주장에 반대할 때마다 빼먹지 않고 내세우는 이유다. 의협은 또 대한약사회와 보건복지부가 약국을 통한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도 "약국 자살예방사업은 자살이라는 정신과적 의료전문 분야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비의료인인 약사에게 문진 등의 진료라는 의료행위를 허용하고 상담료를 지급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정부가 방문물리치료사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의료인이 아닌 물리치료사는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의 직접적인 지도 아래에서만 제한적인 물리치료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반대의견을 제시한 것도 의협이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행위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의료전문가 집단으로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황당하고 모순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건강을 위해 비의료인이나 다른 직역의 의료인에게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의사사회가 정작 내부에서 벌어지는 가장 비윤리적인 행위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지시로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이나 간호조무사 등이 무면허 불법시술 하는 문제가 바로 그렇다. 앞서부터 정형외과를 중심으로 의료기기 영업사원이나 간호조무사 등에 의한 무면허 불법시술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 5월 부산 영도구의 한 정형외과에서 원장의 지시로 환자의 어깨부위 수술을 한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과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대리수술을 받은 환자는 이후 심정지 상태에 빠졌고 뇌사판정까지 받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지난 2013년에는 경남 김해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장비를 납품하는 업체의 영업사원이 의사를 대신해 대리수술을 하다가 적발됐다. 2014년에는 경남 김해의 한 병원장이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관절염 환자 등을 상대로 무릎절개, 수술부위 봉합 등의 수술을 하도록 지시한 일이 드러났다. 이 남자 간호조무사가 실시한 불법 수술 횟수는 800회가 넘는 것으로 경찰 조사를 통해 파악됐다. 2015년 5월에도 부산의 한 정형외과 원장이 의료기기 납품업체 직원과 간호조무사, 간호조무사 실습생을 수술에 참여시켰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2016년에는 서울 강남의 한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 판매업체 직원들이 의사를 대신해 불법 무면허 수술을 하다가 적발됐다.

크게 드러난 것만 이 정도이다. 지금도 어느 병원 수술실에서는 의사의 지시로 무자격자의 불법 의료행위가 몰래 이뤄지고 있는지 모른다. 왜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악질적인 범죄행위가 계속되는 걸까. 일차적 원인은 수익만을 쫓아 환자의 안전이나 의료윤리를 내팽개친 일부 비윤리적인 의사들 때문이다. 비의료인의 불법 대리수술을 지시하고 방조한 의사에게 의료윤리란 한낱 거추장스러운 일일 뿐이다.

의료윤리란 전문가로서 직업윤리이자 행동규범이다. 의사의 직업윤리가 중요한 이유는 의료행위 그 자체에 배타적 독점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 면허가 없다면 어떠한 의료행위도 용납되지 않는다. 의사 면허 없이 의료행위를 할 경우 불법으로 간주되고 처벌을 받게 된다. 게다가 다른 어떤 직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한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직 가운데 최고의 프로페셔널리티를 인정받는 직업이 바로 의사다. 의료행위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이 주어졌으니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높은 의료윤리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사회 일반의 요구다. 

전문가 집단의 권위와 신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전문성에 부합하는 직업윤리와 그에 따른 자정능력을 갖췄느냐가 관건이다. 전문가의 전문성은 고도의 지식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만, 내부의 문제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자율적인 정화 능력을 갖췄는가에 의해서도 인정받는다. 의료전문주의의 핵심은 자율성과 자기통제, 이타심이다. 특히 전문가의 자율성과 자기통제는 사회적 신뢰와 권위의 원천이다. 병원 내에서 의사의 지시로 무자격자의 불법 의료행위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는 건 의사사회가 자율성과 자기통제를 상실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게다가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병원내 수술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 관행적으로 벌어졌다는 의료기기업체 관계자의 증언을 들어보면 극히 일부 비윤리적인 의사들만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동안 의료계는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이유로 다른 직역의 면허 범위 외 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병원 안에서 의사가 무자격자의 불법 수술을 지시하거나 방조하고, 환자가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중대한 의료사고 발생이 그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8일 무자격자 대리수술 사건에 대해서 대국민 사과문을 냈다. 의협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국민 여러분 앞에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 숙여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유감을 표명하며 비의료인에게 의료행위를 맡긴 회원을 엄중하게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도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를 한 의사회원을 징계한다고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방송에 출연해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시술방법이나 식품을 추천하는 '쇼닥터'를 징계하는 일도 선언 수준에 그친 것을 보면 불법 대리수술 의사회원 징계 역시 구체적인 행동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의협은 비윤리적인 의사회원을 징계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고작 윤리위에 회부해 회원 권리정지를 주거나 보건복지부에 고발하는 정도이다.

의협은 의료계가 엄격한 자정활동을 통해 의사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근절할 수 있도록 강력하고 실질적인 징계 권한을 부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왜 의협이 강력한 자율징계 권한을 갖지 못했는가는 지난 100년이 넘는 역사에서 의료전문주의 확립을 위해 스스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우선은 자율징계권 타령보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의사회원과 병원에 대해서 면허취소·영업정지 등의 강력한 처벌을 보건당국에 요구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자체적인 진상조사를 통해 병원 내에서 무자격자의 불법 의료행위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도 들춰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다시 어영부영 넘어가면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이나 명찰 의무착용과 같은 더 많은 규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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